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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 {{유적정보 | ||
| 한글표제어=다레야나기 유적(南津軽 垂柳遺跡) | |||
| 시대=청동기 시대 | |||
| 위치=일본 | |||
| 소재지=일본 아오모리현(靑森県) 미나미쓰가루군(南津軽郡) 이나카다테촌(田舎館村) 다레야나기(垂柳) | |||
| 성격=복합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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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 집필자=김도영 | | 집필자=김도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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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41 판
| 기본 정보 | |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일본 |
| 소재지 | 일본 아오모리현(靑森県) 미나미쓰가루군(南津軽郡) 이나카다테촌(田舎館村) 다레야나기(垂柳)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수전 유구, 야요이 문화, 야요이 토기, 이나카다테식 토기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김도영 |
설명
국가 사적. 일본 아오모리현(靑森県) 미나미쓰가루군(南津軽郡) 이나카다테촌(田舎館村) 다레야나기(垂柳)에 위치한다. 1958·1959년 도호쿠대학(東北大学)이 다레야나기 지구의 경지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야요이 토기가 발견되어 알려졌다. 1981년 시굴 조사에서 이나카다테식 토기(田舎館式土器)와 수전 흔적이 확인되었다. 이를 통해 아오모리현에서 야요이 시대 중기 후반에 이미 쌀을 재배하였으며, 그 위치가 일본 열도의 최북단에 해당하여 주목을 받았다. 이후 1982·1983년 아오모리현교육위원회(青森県教育委員会), 아오모리현매장문화조사센터(青森県埋蔵文化調査センター)가 조사하였다. 유적은 아세이시강(浅瀬石川)에 의해 형성된 선상지성 충적지에 입지한다.
유적의 층위는 총 Ⅰ~Ⅷ층이며, 이 가운데 Ⅵ층에서 야요이 시대의 토기와 석기, 수전 유구가 확인되었다. 수전 유구는 자연 제방 위 저습지에 위치한다. 조사 결과, 656면으로 구획된 흔적이 확인되었으며 총 면적은 3,967㎡이다. 이 가운데 당시 원형을 그대로 복원할 수 있는 것은 전체의 약 1/3인 224면이다. 수전 지역은 3개의 블록으로 나누어진다. 수전은 규모에 따라 대(11㎡ 전 후), 중(9㎡ 전 후), 소(4㎡ 전 후)로 분류되며 평균 면적은 약 8㎡이다. 형태는 방형에 가까운 장방형이 많으며 규모와 형태에서 특별한 상관 관계는 찾을 수 없었다. 또한 수전에서 어린이부터 성인으로 추정되는 발자국이 발견되었으며, 분석 결과 성인의 키는 130~160㎝ 전후로 비교적 왜소한 체형임이 밝혀졌다. 한편, 이 유적에서는 야요이 시대의 토기, 석기, 쌀, 부식된 목재 이외에도 조몬 시대의 토기와 석기, 나라·헤이안 시대의 하지키(土師器), 스에키(須惠器), 긴 목 항아리(長頸壺), 가락바퀴, 숫돌(砥石) 등도 함께 확인되었다.
야요이 시대 토기는 교란층에서 출토된 것을 제외하면 모두 Ⅵ층에서 총 159개체 출토되었다. 대부분 Ⅵa층에서 출토되었으며 기종의 형태와 표면에 새겨진 문양에 따라 독 모양 토기(甕形土器), 긴 목 독 모양 토기(長頸甕形土器),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굽다리 바리 토기(臺附鉢形土器), 굽다리 접시 모양 토기(高杯形土器), 뚜껑 모양 토기(蓋形土器)로 분류할 수 있다. 석기는 간 돌살촉 14점, 돌송곳(石錐) 3점, 간 돌도끼 4점, 홈돌(凹石) 19점, 숫돌(磨石) 1점, 몸돌(石核) 3점이 출토되었다. 또한, 이 지역에서는 출토 예가 적은 목제 괭이도 확인되었다.
이 유적이 발견되기까지 도호쿠 지역의 북부에 수전은 없고 야요이 문화는 이 지역까지는 미치지 않았다고 인식되었다. 그러나 야요이 토기와 함께 수전 흔적의 발견으로 도호쿠 지역에도 야요이 문화가 존재한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2000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