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괴전동 유적(大邱 槐田洞遺蹟)

한국고고학사전


괴전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대구 괴전동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대구광역시 동구 괴전동 125, 540-5 일대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도랑, 화덕 자리, 붉은 간 토기, 아가리무늬 토기, 구멍무늬 토기, 간 돌검, 돌칼, 그물추, 돌살촉, 돌도끼, 돌끌, 부리 모양 석기, 숫돌, 가락바퀴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유병록



설명

대구광역시 동구 괴전동 125, 540-5 일대에 위치한다. 공동 주택 건설, 도로 개설에 앞서 2016년 발굴 조사하였다. 괴전동 125에서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 27기, 구덩이 2기, 도랑(溝) 3기 등 다양한 시대의 유구 총 42기가 확인되었고, 괴전동 540-5에서는 집자리와 구덩이, 기둥 구멍이 각각 1기씩 확인되었다. 유적은 팔공산의 남쪽으로 이어지는 얕은 구릉 사이에 형성된 선상지성 충적지로, 해발 46.5m의 평탄면에 입지한다.

집자리는 세장방형 3기, 장방형 16기, 방형 5기로 분류할 수 있다. 세장방형의 주축 방향은 동서 방향 2기, 남북 방향 1기이며, 11호는 길이 11.5m, 너비 약 4m로 가장 규모가 크다. 내부에는 화덕 자리가 동일한 간격으로 최대 3개까지 확인되며, 21호는 3개 중 1개가 돌 두름식(圍石式)이다. 11호는 바닥에 불다짐한 흔적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붉은 간 토기를 비롯하여 아가리무늬 토기(口脣刻目土器),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와 같은 무늬있는 토기류와 간 돌검, 돌칼(石刀), 기둥 모양 외날 돌자귀(柱狀片刃石斧) 외에 많은 미완성의 석기를 비롯하여 흙으로 만든 그물추 등이 확인되었다.

장방형 집자리의 주축 방향은 동서 방향 8기, 남북 방향 8기이다. 24호는 길이 약 8.6m로 가장 크며, 대부분 길이 5~7m이다. 화덕 자리는 6기만 확인되었으며, 집자리 가운데 또는 한 쪽으로 치우쳐 설치하였다. 출토 유물 중 무늬가 있는 토기가 다수 확인되었으며, 두가지 이상의 무늬가 섞인 것도 있다.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 골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口脣刻目短斜線文土器), 짧은 빗금 구멍무늬 토기(短斜線孔列土器)와 같은 두 가지 무늬와 아가리무늬 토기, 구멍무늬 토기와 같은 한 가지 무늬의 토기의 토기와 네 가지 이상이 확인되는 겹아가리 짧은 빗금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口脣刻目孔列土器)도 출토되었다. 석기류는 돌살촉, 간 돌검, 돌도끼(石斧), 돌끌(石鑿), 부리 모양 석기, 숫돌(砥石), 가락바퀴를 비롯하여 미완성 석기 다수가 출토되었다. 흙으로 빚은 그물추도 같이 출토되었는데, 특히 24호 집자리에서는 58점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방형은 22호가 길이 5.1m로 가장 크며 대부분 4m를 넘지 못한다. 내부 시설은 22호에서만 화덕 자리 1개가 확인되었다. 출토 토기는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文土器),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 외에 손잡이 달린 토기(把手附土器)가 출토되었고 22호에서는 겹아가리 짧은 빗금 골아가리 토기가 확인되었다. 석기류는 돌살촉을 비롯하여 가락바퀴와 미완성 석기와 함께 흙으로 만든 그물추 역시 출토되었다.

원형 면적은 10㎡ 내외로 다른 집자리보다 작은 편이다. 집자리 중앙에 화덕 자리가 있으며, 무늬있는 토기는 골아가리 토기 편이 출토되었다. 집자리 외에 움이나 도랑은 특별한 점이 없다.

유적의 연대는 집자리 내 방사성 연대 측정을 통해 11호 2700±30 BP(보정 연대 기원전 905~805년), 12호 263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900~760년), 24호 2670±30 BP(보정 연대 기원전 895~795년), 26호 261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850~740년)라는 결과를 확인하였다. 집자리는 장방형에서 방형, 원형으로 변화하며, 방형에서 손잡이 달린 토기가 출토되어 원형과 일부는 시기를 같이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모든 형태의 집자리에서 다량의 그물추와 가락바퀴가 확인되어 특징적이다. 이는 농경 및 집자리 주변 환경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어로·수렵 활동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미지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