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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구석기 문화(中國의 舊石器時代)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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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구석기 문화
기본 정보
시대 구석기 시대
관련 정보
키워드 인류 진화, 베이징인, 란톈인, 진뉴산인, 위안머우인, 다리인, 류장인, 다지역 진화설, 모비우스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구석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23
집필자 홍현선



설명

중국의 구석기 문화 연구는 1920년 리상(Licent, É.)이 간쑤성(甘肅省) 웨자펀(越家岔), 신자궈(辛家溝) 등에서 뗀석기를 발견하고, 1921년 앤더슨(Andersson, J. G.)이 저우커우뎬 유적을 찾으면서 시작되었다. 신중국 건립 이후에는 중국 지질 조사소, 중국 과학원 고척추동물여고인류연구소(中國科學院古脊椎動物與古人類硏究所)가 구석기 연구의 중심이 되어 중국의 학자들에 의해 지금까지 2,000여 곳 이상의 유적이 조사, 발굴, 연구되었다.

중국 지역의 인류 진화 흔적 중에서 원인 단계로는 카이위안(開遠) 고원과 루펑(祿豊) 고원이 있다. 호모 에렉투스란톈, 저우커우뎬, 진뉴산, 위안머우(元謀), 화셴(華縣), 윈셴(隕縣) 등의 유적에서 나왔으며, 고형 호모 사피엔스다리(大荔), 쉬자야오(許家窯), 딩춘, 마바, 장양(長陽)과 커쭤(喀左), 호모 사피엔스류장, 허타오(河套), 산딩(山頂) 동굴, 쯔양 유적 등에서 확인되었다. 이러한 발견으로 중국 학자들은 인류가 중국 내에서 연속적으로 진화했으며 중국이 인류 기원지의 하나일 가능성이 있다는 다지역 진화설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베이징인이 현대 아시아인의 조상이라고 여기고, 아시아의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와 유라시아 등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집단과 섞여 현대 동아시아인이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연속성 모델은 중국인 유전자의 구성은 97.4%가 아프리카 조상의 현생 인류이고 나머지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데니소바인과 같은 멸종된 형태에서 비롯되었다는 유전자 분석 결과로 반박되기도 한다.

중국의 구석기 시대 석기 문화 연구는 모비우스(Movius, H. L.)가 주장한 ‘서구의 주먹 도끼 문화 전통과 동아시아의 찍개 문화 전통’에 큰 영향을 받았다. 한편, 중국 학자들은 새롭게 남쪽 지역을 중심으로 커허(匼河)-딩춘 계열로 큰 찍개와 삼각형 찌르개 등의 대형 석기 전통을, 북쪽 지역을 중심으로 저우커우뎬 1 지점-스위 계열로 긁개, 새기개 등의 작은 격지 석기 전통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러한 전통이 구석기 시대, 심지어 신석기 시대까지 이어진다고 본다. 그러나 딩춘 등 대부분의 큰 석기 전통의 유적에서도 작은 격지 석기가 많이 나타나며, 서로 다른 문화적 전통이 약 100만 년 동안 같은 지역에 나란히 존재할 수 있다고 상상하기도 어렵다.

전기 구석기 시대 시허우두 유적에서는 망치 떼기, 모루 망치 떼기, 모루떼기 방법으로 격지를 만들었으며, 그 크기가 비교적 작고 몸돌과 대면의 능선을 타격점으로 격지를 만든 것도 있어 격지 기술이 일정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 준다. 출토 석기로는 간단히 손질된 밀개와 찍개, 세능선 찌르개 등이 있다. 또한 일부 학자는 불 탄 뼈의 출토로 인류의 불 쓴 흔적도 확인된다고 추정한다. 둥구퉈(東谷咜)와 샤오장량(小長梁) 유적에서는 망치 떼기와 모루 망치 떼기 방식으로 격지를 만들었다. 망치로 뗀 격지 중에는 길고 얇은 것도 있어 숙련된 격지떼기 기술을 보여 준다. 출토 석기는 밀개, 찌르개, 뚜르개 등으로 크기가 아주 작다. 석기 제작 기술이 뛰어나 두 유적의 연대에 의문을 보이는 학자도 있다.

베이징인은 약 4~50만 년의 시간을 대표하여 여러 종류의 도구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불을 다루고 사슴, 말 등 큰 짐승을 사냥하였다. 석기 기술은 비교적 성숙한 단계로 돌의 성질을 이해하고 알맞은 제작 수법을 사용하였다. 또 저우커우뎬 근처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정교하게 깨지는 맥석영을 활용하여 모루 망치 떼기 기술로 석기를 만들었다. 출토 석기로는 세능선 큰 찌르개, 주먹 도끼, 사냥돌, 밀개와 찌르개 등이 있다. 전기 구석기 시대 유적은 지리적으로 황허(黃河) 중류의 지류인 웨이허(渭河), 펀허(汾河) 유역에 있다.

중기 구석기 유적의 분포는 앞 시기와 비슷하며, 화베이(華北) 지방은 마란 황토의 자갈층 또는 후기 갱신세 초기 지층에 해당한다. 석기 기술은 전기 구석기와 비슷하고 몸돌 다듬는 기술은 발달하지 않았다. 딩춘 유적에서는 석기를 떼어 내기 위한 때림면을 다듬는 기술이 앞 시기보다 많이 쓰인다. 후기 구석기 시대 수이둥거우에서는 이것이 주된 격지 제작 기술이 되었다. 스위, 샤촨(下川) 유적에서는 간접 타법으로 만든 좀돌날눌러떼기잔손질잔석기가 나타났다.

후기 구석기 시대에는 다양한 밀개, 찌르개, 새기개, 망치, 톱날 등이 쓰였다. 화베이 지방은 석기가 소형화되는 추세를 보여, 싸라우쑤, 샤오난하이(小南海) 유적 등에서는 석기가 모두 작다. 그중 싸라우쑤가 제일 두드러져 이곳의 석기는 2~3cm 길이에 1~2g 정도이다. 화난(華南) 지방은 푸린(富林) 등에서는 작은 석기가 존재하지만 화베이 지방과는 차이가 난다. 스자탄(石子灘)에서는 정교한 세석기와 뼈 연모가 나왔다. 그리고 샤오구산, 산딩 동굴, 쯔양, 수이둥거우, 먀오먀오 동굴 등 유적에서 뼈바늘과 낚싯바늘, 뼈뚜르개, 뼈칼과 뿔삽 등이 나왔다. 또한 산딩 동굴, 샤오구산에서는 이빨, 새 다리뼈, 조가비, 잔자갈 등으로 만든 장식품이, 닝샤성(寧夏省) 후이족자치구(回族自治區) 허란산(賀蘭山)에서는 바위그림이 발견되어 뛰어난 예술 공예 수준을 보여 준다. 산딩 동굴에서는 적철광(赤鐵鑛)과, 장신구로 꾸민 매장 의식을 엿볼 수 있는 흔적도 나타난다.

후기 구석기 시대는 점차 지역적으로 넓어져 황토고원, 몽골고원과 화베이평야 등에서도 유적이 발견된다. 동베이(東北) 지방에는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의 뭐허(漠河), 쓰바잔(十八站), 앙앙시 유적 등이 있으며, 시베이(西北) 지방에는 칭장(靑藏)고원, 신장위구르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 호쉬톨가이(和什託洛蓋) 뤄터스(駱駝石) 언덕 등이 있다. 광시좡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 야화이(婭懷) 동굴에서는 야생 벼 화석과 2~5cm의 작은 석기 등이 나왔다. 이처럼 시난(西南)과 화난 지방 등지로 분포 범위가 넓어지고, 타이완(臺灣)에서도 인류와 유물이 발견되어 인류가 섬 지방으로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