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일본의 신석기 문화(日本의 新石器文化)

한국고고학사전
Admin (토론 | 기여)님의 2026년 1월 20일 (화) 12:38 판 (dkamaster 800-0173 자동 업로드 (entry_type=개념))


일본의 신석기 문화(日本의 新石器文化)
기본 정보
시대 신석기 시대
관련 정보
키워드 굴려찍은 무늬 토기, 융기선문계 토기, 조흔무늬 토기, 콩알무늬 토기, 패각조흔문계 토기, 원공문 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24
집필자 이상균, 최종혁



설명

일본에서는 신석기 시대에 해당하는 시대를 조몬(繩文) 시대로 부른다. 유럽에서는 신석기 시대를 생산 경제(농경·목축 등) 여부로 구분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생업에서 생산 경제가 미비해 이 시기에 사용한 토기(특히 무늬)를 문화의 상징으로 삼아 시대를 구분하였다. ‘조몬’이란 새끼줄 무늬라는 뜻으로 토기에 꼰 새끼줄을 누르거나 굴려서 무늬를 표현한 것을 말한다. 즉, 토기 무늬의 시문 방법이 시대 명칭이 된 것이다. 이 명칭은 모스(Morse, E. S.)가 도쿄(東京) 오모리(大森) 조개더미에서 발굴한 토기를 ‘cord marked pottery’로 보고한 것에서 유래한다.

조몬 시대의 시작 연대는 13,000년 전까지 올라가며, 그 마지막은 논농사가 본격화되는 약 2,300년 전까지로 설정되어 있다. 그리고 토기 형식을 기준으로 초창기(13,000~10,000년 전)·조기(10,000~6,000년 전)·전기(6,000~5,000년 전)·중기(5,000~4,000년 전)·후기(4,000~3,000년 전)·만기(3,000~2,300년 전) 총 6시기로 구분한다. 조몬 시대는 토기 형식과 생업 형태 등으로 지역을 설정하고 있는데, 시기마다 다양한 양상을 보이지만 크게 규슈(九州)·서일본·동일본으로 구분된다.

조몬 시대의 자연환경과 시기별 변천을 보면 초창기는 기후의 조건이 플라이스토세에서 홀로세로 이행하는 과도기적인 단계로, 해수면도 점차 상승하여 일본 열도가 대륙으로부터 분리된다. 조몬 시대 조기 말에서 전기에는 후빙기의 온난화 현상이 최고조에 달하며, 해수면 상승으로 조몬 해진(海進)이 진행된다. 수림대도 서일본은 조엽수림, 동일본은 낙엽광엽수림으로 식생 분포가 정착하게 된다. 약 4,000년 전의 중기에는 기후가 선선해지고, 만기에는 약간의 한랭기가 있었다. 이처럼 약 10,000년에 걸친 기후 변동과 남북으로 길게 뻗은 일본 열도의 자연환경 속에서 각 지역의 조몬 문화가 성장하였다. 조몬 문화의 생업은 식물성 식량의 채집 단계가 주류를 이루며, 내만외양에서 어로수렵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생업 활동은 수렵·채집·어로 활동과 그와 관련된 도구와 기술의 변혁 과정에서 밝힐 수 있다.

각 시기의 문화상을 보면, 초창기 단계에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조개류나 어류가 새로운 식량 자원이 되었으며, 수렵은 대형 포유동물에서 사슴, 멧돼지 등의 중소형 동물로 바뀌었다. 가고시마현(鹿児島県) 소지야마(掃除山) 유적집자리에서 갈판과 토기가 출토되어 초창기부터 정주 생활이 시작되었음을 알려 준다. 이 시기의 토기는 나가사키현(長崎県) 센부쿠지(泉福寺)·후쿠이(福井) 동굴 유적에서 콩알무늬[豆粒文]·조형문(爪形文)·융기선문(隆起線文) 토기가 있으며, 이 토기들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로 알려져 있다. 석기의 경우 돌창·슴베 있는 첨두기[有莖尖頭器]·날 간 돌도끼·좀돌날후기 구석기 시대의 전통이 남아 있다. 최근에는 후기 구석기 종말기의 석기 요소를 가진 석기군과 동반하는 민무늬 토기아오모리현(青森県) 오다이 야마모토(大平山元)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가속 질량 분석기(accelerator mass spectrometry, AMS)를 통한 연대 측정 결과 그 연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16,000년 전으로, 콩알무늬·융기선문 토기보다 오래된 토기임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일본 조몬 시대의 시작 연대는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조기 단계에는 정주 마을이 등장하기 시작하며, 도토리나 호두 등의 견과류를 채집하거나 일부 재배하여 식량 자원이 풍성해졌다. 어로구로는 결합식 낚시가 등장하며, 수렵구인 활과 화살이 급속히 보급되었다. 토기는 연사문(撚糸文)·굴려찍은 무늬[押型文]·새김 줄무늬[沈線文]·조흔무늬[條痕文]·융기대문(隆起帶文) 토기 등이 주류를 이루며, 조몬 토기의 큰 특징의 하나인 파상 구연(波狀口緣) 토기가 나타난다. 석기는 수렵 용구가 점차 감소하며, 역기(礫器)·갈돌·갈판과 같은 생활 용구나 그물추·작살과 같은 어로구가 출토된다. 이 시기에는 나쓰시마(夏島) 조개더미에서 보이듯이 조개더미가 형성되며, 어로 활동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무덤에서는 굽혀묻기가 행해지며, 개와 사람을 같이 매장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흙 인형도 만들어진다.

전기 단계에는 기온의 온난화 때문에 해수면이 4∼5m 상승하여 내륙부에도 조개더미가 형성되며, 호수와 습지가 발달하여 통나무배가 제작되었다. 집자리 내부에는 화덕 자리가 설치되고, 광장을 둘러싼 마을 형태가 이루어졌다. 이 시기에는 토기의 형식과 수량이 증가하고 편평한 바닥 토기가 일반화되며, 세키야마식(閑山式)·구로하마식(黑浜式) 토기 등 익상조몬(翼狀繩文)·붓두껍무늬[竹管文] 등을 시문한 섬유(纖維) 토기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한반도의 교류와 관련하여 규슈 지역에는 도도로키식(轟式)·소바타식(曾畑式) 토기 등이 확인된다. 또한 목기·빗 등에 옻칠이 시작되며, 환상열석(環狀列石)이 등장한다.

중기 단계에는 해안선이 현재와 비슷해지며, 대형의 조개더미가 형성되었다. 이 단계는 조몬 문화가 가장 성행한 시기로, 조몬 토기의 형식이 다양화되고 화염(火焰) 토기 등 입체적이고 호화로운 장식 문양의 토기가 제작되었다. 이와 함께 입체적이고 화려한 흙 인형도 출토된다. 이러한 토기와 흙 인형은 주로 동일본에서 유행하였으며, 간토(關東)·주부(中部) 지방에서는 고료가다이(五領ヶ臺式)·가소리식(加曾利式)·가소리E식(加曾利E式) 토기 등이, 도호쿠(東北) 지방에서는 원통형(圓筒形) 토기, 규슈에서는 아타카식(阿高式) 토기가 유행하였다. 지역적으로는 계획적인 의도에 의해 마을이 만들어져, 아오모리현(青森県) 산나이 마루야마(三內丸山) 유적에서는 500기가 넘는 집자리가 조사되었다. 이 시기에는 동일본을 중심으로 갈돌·흙 인형 등 주술구가 유행하였고, 돌기둥의 제단이나 출토된 인골에서 이를 뽑는 풍습[拔齒]을 엿볼 수 있다.

후기 단계에는 기후 한랭화로 인한 환경의 악화, 식물 생산성의 저하 등으로 대규모의 정주 생활이 쇠퇴하였다. 이에 따라 중기의 호화롭게 장식된 토기가 아닌 마소승문(磨消繩文)의 토기가 유행하였다. 마소승문은 기면(器面) 전체에 꼰무늬[繩文]를 회전하며 눌러 찍은 후, 일정 구획을 가진 새김 줄무늬를 새기고, 그 바깥은 지운 무늬를 말한다. 서일본의 나카쓰식(中津式) 토기를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제염(製鹽) 토기가 만들어졌으며, 교역 목적의 제염 전업 집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도호쿠 지방을 중심으로 환상열석이 만들어졌고, 이 지역에서는 거대한 목주(木柱) 유적, 깐돌 집자리[敷石住居址]가 조사되었다.

만기 단계에는 기온과 해수면이 저하해 어로 활동에 많은 지장이 초래되었다. 도호쿠 지방의 태평양 연안에서는 작살 어업이 성행하였으며, 규슈·긴키(近畿) 지방에서는 벼농사가 시작되었다. 동일본에서는 가메가오카식(龜ヶ岡式) 토기와 같은 우아한 운형문(雲形文)이 보이며, 기종도 항아리[壺]·얕은 바리[淺鉢]·귀때 토기 등으로 다양해졌다. 서일본에서는 돋을띠무늬 토기가 유행하였다. 또 규슈에서는 구로카와식(黑川式) 토기가 유행하였는데, 이는 한반도의 구멍무늬 토기와도 관련된다. 이 단계에 잡곡 농경이 한반도로부터 전해지며, 규슈와 서일본 지역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만기는 한반도 청동기 시대와 병행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