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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랴오시 지역의 신석기 문화(中國遼西地域의 新石器文化)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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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랴오시 지역의 신석기 문화(中國遼西地域의 新石器文化)
기본 정보
동의어 중국 요서 지역의 신석기 문화
시대 신석기 시대
관련 정보
유적 뉴허량 유적
키워드 중국의 신석기 문화, 중국 랴오둥 지역의 신석기 문화, 중국 쑹넌-싼장 평원의 신석기 문화, 중국 창장강 유역의 신석기 문화, 중국 황허 중·상류의 신석기 문화, 중국 황허 하류의 신석기 문화, 푸허 문화, 차하이 문화, 상자이 문화, 자오바오거우 문화, 샤오허옌 문화, 훙산 문화, 싱룽와 문화, ‘지(之)’자무늬 토기 문화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24
집필자 김상훈



설명

랴오시(遼西) 지역은 중국 동북부 랴오허(遼河) 서쪽 지역을 의미하며, 현재의 랴오닝성(遼寧省) 진저우(錦洲), 차오양(朝陽), 푸신(阜新)과 네이멍구 자치구(內蒙古自治區) 츠펑(赤峰) 등이 해당한다. 고고학적으로는 허베이(河北) 지역 동쪽이 랴오시 문화권에 포함되기도 한다. 랴오허 상류의 시라무룬강(西拉沐倫河)은 현재의 선양(瀋陽) 북서쪽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흐른다. 이 강 주변과 남쪽 보하이만(渤海灣)으로 흐르는 다링허(大凌河) 유역에서 신석기 시대 유적들이 발견되었는데, 특히 고도의 의례 활동과 옥기 생산이 발달한 훙산(紅山) 문화가 주목받았으며 랴오허 문명의 발상지라 부르기도 하였다.

랴오시 지역의 신석기 문화에 대한 연구는 20세기 초에 시작되었다. 유럽의 고고학자들이 사궈툰(沙鍋屯) 유적에서 채도(彩陶) 조각[片] 등을 발견하면서 이 지역에 신석기 시대가 존재했음을 처음 인지하였다. 1930년대 일본인 학자가 네이멍구 자치구 츠펑에서훙산유적을 발견하였으나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고, 1950년대 중국의 고고학자 인다(尹达)가 이를 ‘훙산 문화’로 명명하면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후 1960년대에는 시라무룬강 북쪽에서 푸허거우먼(富河溝門) 유적이 발견되면서 푸허 문화가 설정되었다. 1970년대에는 다난거우(大南溝) 유적에서 대규모 무덤이 발견되는 등 훙산 문화 이후에 존재하는 샤오허옌(小河沿) 문화의 유적들이 발견되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랴오시 지역에서는 다양한 신석기 시대 유적이 발견되었고, 연구도 큰 진전을 이루었다. 1983년부터 현재까지 발굴하고 있는 뉴허량(牛河梁) 유적은 훙산 문화에 속하는 유적으로 대규모의 제단 시설, 돌무지무덤, 정교하게 흙으로 빚은 여신상과 여신 무덤[女神墓] 등이 발견되어 당시 종교 활동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정교하게 만든 다양한 옥기들이 부장된 무덤이 발견되면서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1983년에 발굴된 싱룽와(興隆窪) 유적은 120여 개의 집자리가 발견된 대규모 마을 유적이다. 이 유적은 토기 양식이나 절대 연대 측정 결과로 볼 때 훙산 문화보다 선행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푸신 차하이(查海) 유적과 허베이성(河北省)의 상자이(上宅) 유적도 이 시기에 발굴되었는데, 여러 논의를 거쳐 지금은 이를 싱룽와 문화의 한 유형으로 보고 있다. 또한 자오바오거우(趙寶溝) 유적에서는 동물 모양의 토기나 기하학적 무늬를 새긴 토기가 다수 발견되었는데, 이 유적은 싱룽와 문화보다는 늦고 훙산 문화보다는 이른 것으로 보고 있다.

1990년대에도 꾸준한 발굴과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2000년대 이후 가장 주목받은 발굴로는 네이멍구 자치구 샤오허시(小河西) 유적이 있다. 이 유적에서는 싱룽와 문화의 통형관(筒型罐)과 유사하나 무늬가 거의 없으면서 소성 온도도 낮은 토기가 발견되었는데, 이를 토대로 가장 이른 ‘샤오허시문화’가 설정되었다.

한편, 가장 최근에 주목받는 유적으로는 랴오시 동쪽 퉁랴오(通遼) 부근 커얼친(科爾沁) 초원(혹은 사막) 지대에서 발견된 난바오리가오투(南寶力皋吐) 유적하민(哈民) 유적이 있다. 2006년부터 난바오리가오투 유적에서는 대규모 무덤이 발굴되었는데, 이는 랴오시와 랴오둥(遼東) 지역의 교류 양상을 잘 보여 준다. 또한 2010년부터 발굴된 하민 유적은 훙산 문화와 연관성이 깊은 마을 유적이다. 이 유적에서 조사된 한 집자리에서는 불에 탄 나무 구조물 아래 90여 구의 인골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전염병 등 훙산 문화의 소멸 과정을 알려 주는 단서로 주목된다.

현재 랴오시 지역의 신석기 시대는 샤오허시 문화(기원전 7,000~6,000년)-싱룽와 문화(기원전 6,000~5,000년)-자오바오거우문화(기원전 5,000~4,500년)-훙산 문화(기원전 4,500~3,000년)-샤오허옌 문화(기원전 3,000~2,500년)로 이어진다고 본다. 이 외에 시량(西梁) 문화, 차하이 문화, 푸허 문화 등 기존에 제시되었던 문화는 대체로 하나의 지역 유형으로 보기도 한다.

고고학 자료로 볼 때 샤오허시 문화에서 싱룽와 문화를 거쳐 훙산 문화로 이어지는 고고 문화에서는 모두 ‘지(之)’자무늬, 길쭉한 통형관 형태의 토기를 공통적으로 사용하였다. 또한 기원전 6,000년부터 큰 규모의 마을을 꾸리고 조·기장 등의 잡곡 농사를 활발하게 짓는 등 유사한 생업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농사를 위해 땅을 파는 돌삽 등은 랴오시 문화의 대표적인 생산 도구이며, 전통성이 강하게 유지된 석기이기도 하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싱룽와 문화의 경우, 토기의 아가리 아래에 두껍게 띠를 덧대는 특징을 보인다. 또한 옥과 뼈·뿔 등으로 만든 장신구가 이 시기부터 다수 확인된다. 이 문화에 속하는 차하이 유적에서는 용의 형상을 한 돌무더기가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이미 종교-의례 행위가 크게 발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자오바오거우 문화에서는 토기가 크게 변화한다. 큰 술잔을 뜻하는 준(尊)이나 토기 바닥을 올리는 권족기(圈足器) 등은 중국 중원 양식에 가까우며, ‘지(之)’자무늬가 과하게 표현되거나 기하학적 무늬, 혹은 동물을 연상하는 무늬가 등장한다.

훙산 문화에서도 ‘지(之)’자무늬 토기가 꾸준히 사용되지만 무덤을 중심으로 채도와 몸체가 길쭉한 항아리 등의 토기들이 등장한다. 이는 중원 지역 양샤오(仰韶) 문화와 빈번한 접촉이 있었음을 알려 준다. 이 시기에는 농사가 더욱 발달하여 돌삽이나 반달돌칼 등이 자주 출토된다. 또한 특유의 발달된 옥기는 돌무덤에 부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원·산둥 반도에서도 발견된다.

기원전 3,000년에 훙산 문화가 서서히 소멸하며 양샤오 문화의 한 갈래인 먀오쯔거우(廟子溝) 문화의 영향을 받는 샤오허옌 문화가 점차 확산된다. 이 단계에는 대규모 무덤 유적이 주를 이루며, 수렵 활동이 활발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대략 기원전 2,000년부터는 샤자뎬(夏家店) 하층 문화가 시작되면서 청동기 시대로 진입하게 된다.

랴오시 지역의 신석기 문화는 중국 북방 지역의 초기 농경과 대규모 마을 형성 등을 통해 중국 문명의 기원을 밝히는 중요한 고고학적 증거이다. 특히 훙산 문화의 정교한 옥기, 대규모 무덤, 제단 유적 등은 고도로 발달한 사회 구조와 종교 행위를 보여 주며, 이는 이후 중국 문명의 발전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이러한 문화는 중국 문명이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발달했음을 시사하며, 중국 북방 지역의 문명 형성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학술적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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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