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교리 갈동 유적(完州 盤橋里葛洞遺蹟)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완주 반교리 갈동 유적, 완주 갈동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유적은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이서면 반교리 산94-11·산94-14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구덩이, 세형동검, 여러 꼭지 거울, 거푸집, 양익형 청동 살촉, 쇠낫, 유리 고리, 굽다리 항아리, 움무덤, 주조한 쇠도끼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이종철 |
설명
유적은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반교리 산94-11·산94-14에 위치한다. 반교리 일대는 해발 42m 내외의 독립된 구릉으로 유적은 구릉 사면에 분포한다. 주변으로는 낮은 구릉들과 곡간이 형성되어 있고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다. 전주시 관내 국도 대체 우회 도로(이서-용정 간) 건설 공사에 따라 2003년에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초기 철기 시대 움무덤(土壙墓) 4기, 도랑(溝) 1기, 구덩이 2기가 확인되었다. 당시 유적의 중요성이 인정되어 현지 보존이 결정됨에 따라 동편으로 노선을 변경함으로써 2006~2007년에 추가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조사 결과, 초기 철기 시대 움무덤 13기, 도랑 3기가 확인되었다.
움무덤은 구릉의 남사면에 17기가 분포한다. 지형과 움무덤의 분포로 볼 때 3호와 4호가 입지하는 남북 방향의 구릉 지점, 1~17호가 밀집 분포하는 ‘∩’ 모양의 곡부(谷部) 경사면 일원, 그리고 그 동쪽 편 일원의 경사면으로 구분된다. 구릉 일원에 지점을 달리하여 무덤들이 밀집 분포하는 매장 영역을 조성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17기의 움무덤은 모두 등고선에 직교하게 조성되었으며, 굴광은 수직 또는 경사 벽을 이루게 하여 바닥까지 굴착(1·4·5·7·8·10·11·13~17호)하거나 중간에 단을 지게 하여 2단(2·3·6·9·12호)으로 처리하였다. 특히 바닥면은 평평하게 정지한 것도 있지만, 나무관(木棺)을 안치하기 위한 동일 크기의 얕은 장방형 굴광도 확인되었다. 이러한 굴광 흔적과 토층을 통해 나무관을 별도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호에서는 굴착한 무덤 구덩이의 바닥면을 되메우고 상부에 나무 뚜껑(木蓋)을 설치하였으며 무덤에서 파낸 흙을 봉분으로 활용했음이 확인되었다. 또 2호에서는 나무판 형식의 나무널을 사용했던 흔적, 3호에서는 단장의 덧널무덤(單葬木槨墓)의 흔적, 4호와 14호에서는 통나무널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들도 확인된다. 나무널을 사용했던 무덤들은 대부분 굴광 내부를 빈 공간으로 유지하기 위해 상부에 나무 뚜껑을 설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 6호와 7호 등에서는 나무널의 흔적이 전혀 확인되지 않았으며, 15~17호는 아무런 유물도 출토되지 않았다. 나무널로 확인된 흔적(2~4·9·12~14호) 중 4호는 길이 2.7m로 가장 크고, 13호는 길이 2.27m에 너비 0.55~0.79m에 달한다. 가장 작은 나무널은 14호로 길이 1.23m, 너비 0.54m이다. 움무덤 가운데 6호가 규모가 가장 큰데, 길이 3.29m, 너비 1.42~1.66m, 깊이 1.43m이고, 11호는 가장 작아 길이 1.43m, 너비 0.57~0.6m, 깊이 0.2~0.39m이다. 12호는 가장 깊게 굴착한 무덤으로, 최대 깊이는 1.77m에 달한다.
도랑은 등고선에 평행하는 것(1호)과 직교하는 것(2~4호)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길이 13.2m, 너비 1.96m, 깊이 0.64m로, 다른 도랑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굽다리 접시高杯가 출토되어 제의와 연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후자는 길이 3.5~7.5m 사이, 너비 1~1.4m 사이며, 깊이는 얕다.
구덩이는 장방형으로 장축이 등고선에 평행하다. 1호는 심하게 파괴되어 성격이 분명하지 않지만, 집자리였을 것으로 보고되었다. 2호는 길이 3.09m, 너비 1.11m, 깊이 0.32m이다.
움무덤에서는 초기 철기 시대를 대표하는 청동 검(銅劍), 청동 거울(銅鏡), 청동 투겁창(銅鉾), 청동 지우개(銅鉈), 청동 도끼 조각, 주조한 쇠도끼(鑄造鐵斧), 쇠낫(鐵鎌), 쇠지우개(鐵鉈), 유리 고리(琉璃環), 대롱옥(管玉), 둥근 덧띠 토기, 목이 긴 검은 간 토기(黑陶長頸壺), 조합식 손잡이 항아리, 민무늬 토기 긴 목 항아리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1호에서 유일하게 청동기를 제작하는 거푸집이 출토되었고, 2호에서는 유적 내 유일하게 유리 고리(琉璃環)가, 10호는 둥근 덧띠 토기(圓形粘土帶土器)만 단독으로 출토되었다. 그리고 하나의 무덤에서 주요 공반 양상은 쇠낫-유리 고리(2호), 쇠낫-양익형(兩翼形) 청동 살촉-목이 긴 검은 간 토기-둥근 덧띠 토기-쇠도끼-대롱옥(3호), 둥근·세모꼴 덧띠 토기-조합식 손잡이 항아리-쇠도끼-굽다리 항아리(臺附壺)(4호), 조합식 손잡이 항아리-목이 긴 검은 간 토기-쇠도끼-쇠 지우개(6호), 쇠도끼-청동 도끼 조각-청동 지우개 편(9호)을 들 수 있다. 특히 거푸집(1호), 청동 거울(5호·7호), 청동 검(14호)은 다른 유물과 공반되지 않고 단독으로 부장된 것이 특징이다. 다만 5호 출토 청동 거울만 민무늬 토기, 목이 긴 항아리와 함께 출토되었을 뿐이다. 움무덤에서 유물의 출토는 충전토, 나무널 내부와 외부, 나무널 상부와 나무 뚜껑 사이의 함몰토, 봉토로 구분할 수 있다.
출토 유물 가운데 거푸집은 매납 시 거푸집 주입구가 위로 가게 해서 1쌍을 세워 부장하였다. 하나는 세형동검과 청동 꺾창(銅戈)을 각각 새겼는데 길이 32㎝, 너비 8.1㎝, 두께 3.2㎝, 무게 173g이다. 다른 하나는 세형동검만 한쪽 면에 새겼는데 길이 33.1㎝, 너비 7.4㎝, 두께 3.2㎝, 무게 182g이다. 청동 검을 제작하기 위한 주입구에 탄착 흔이 남아 있어 실제로 청동 검을 제작했던 거푸집을 부장한 것으로 판단된다. 보고자는 형태상 傳 영암 거푸집보다 약간 늦은 시기의 것으로, 직인화(直刃化)된 양상은 장천리와 유사하고 제작된 세형동검은 장수 남양리 4호나 김해 내동 출토품과 유사한 것으로 보았다. 청동 거울은 2점 모두 여러 꼭지 거울(多鈕細文鏡)로 외구·중구·내구로 구분된다. 출토 위치는 시신의 머리 쪽이며, 바닥면에 인접하여 거울 면이 위를 향하도록 놓았다. 5호 출토품은 지름 14.6㎝, 무게 447g이며, 함평 초포리와 일본 와카야마若山 유적의 출토품과 유사하다. 7호 출토품은 지름 9.1㎝, 무게 141g이며, 꼭지鈕가 3개로서 구성상 논산 원북리 나지역 1호 움무덤 출토품과 매우 흡사하다. 청동 살촉은 한 점에서 화살대가 꽂힌 상태로 출토되었으며, 함函 같은 상자에 넣어서 부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 살촉은 양익형(兩翼形)으로 정백동 1호와 토성동 4호 출토품과 매우 유사한 것으로 보았다.
움무덤에서 청동기와 더불어 출토된 철기류 가운데 주조된 쇠도끼는 모두 7점으로, 대부분 1기의 움무덤에서 2점씩 출토되었다(4호·6호·9호). 이 가운데 9호 출토품에는 유적에서 가장 길고 큰 쇠도끼가 존재하며, 작은 것은 3호 출토품과 같이 신부(身部) 중앙에 구멍이 뚫려 있다. 이러한 구멍은 자루를 고정하기 위한 것으로, 장수 남양리와 논산 원북리 출토품과 동일한 성격을 갖는다. 쇠지우개는 유일하게 1점이 출토되었는데, 단조품으로 추정되며 익산 신동리, 장수 남양리 출토품과 비교해 볼 수 있다.
도랑에서는 둥근 덧띠 토기 편, 굽다리 토기 편, 작은 토기, 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다. 2차 조사에서 확인된 3기(2~4호)에서는 소량인데 비해, 1차 때 조사된 1기(1호)에서는 굽다리 접시 조각이 다량으로 출토됨에 따라 제의와 관련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구덩에서는 둥근 덧띠 토기 편, 굽다리 접시 조각, 긴 목 항아리 조각, 민무늬 토기 편 등이 출토되었다.
보고자는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 검 거푸집, 청동 살촉 등을 통해 기원전 2세기 후엽~기원전 1세기 말경으로 추정하였다. 특히, 거푸집은 기원전 2세기 후반 이전으로 올라갈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일부 연구에 따르면, 갈동 유적은 완주 신풍, 전주 만성동 및 효자동, 장수 남양리와 같이 초기 철기 문화 융성기인 기원전 2세기 전엽~2세기 말엽으로 보기도 한다.
갈동 유적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정식 발굴 조사를 통해 세형동검의 거푸집이 초기 철기 시대 움무덤에서 출토된 사례라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또한, 서북한 지역과 유사한 양익형 청동 살촉의 출토, 전국계 유물로 보이는 쇠낫과 유리 고리의 출토, 굽다리 항아리와 같은 새로운 양식의 토기 출현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과학적인 분석 방법을 통해 거푸집은 조립질의 각섬석으로서 장수군 번암면 교동리 일원의 각섬석과 성인적으로 동일한 종류로 파악됨으로써 산지 추정이 가능해졌다. 또한 2점의 유리 고리는 납·바륨 유리이지만 SiO2(실리카), PbO(산화납), BaO(산화바륨) 등 주성분의 함량 차이가 확인되어 서로 다른 조성임이 드러났다. 조사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출토 예가 없는 특이한 유리 고리로서 우리나라 고대 유리의 발생과 유입, 그리고 변천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된다.
완주 갈동 유적에서 출토된 거푸집 2점과 5호, 7호 토광묘에서 출토된 여러 꼭지 거울 2점은 보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