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포리 유적(咸平 草浦里遺蹟)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함평 초포리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라남도 함평군 나산면 초포리 383-11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분 |
| 키워드 | 청동 꺾창, 무덤 구덩이, 돌널무덤, 돌무지돌널무덤, 돌무지널무덤, 천하석제 장식 옥, 숫돌, 세형동검, 청동 투겁창, 중위안식 청동검, 청동 자귀, 청동끌, 청동 지우개, 고운무늬 거울, 간두령, 쌍두령, 병부 동령, 청동 방울, 무구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조진선 |
설명
전라남도 함평군 나산면 초포리 383-11 일원에 위치한다. 유적은 1987년 2월 마을 주민들이 진입로를 포장하기 위해 도로 옆 밭에서 채토 작업을 하다가 청동 꺾창(銅戈)을 비롯한 청동 유물들을 발견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유구는 대부분 파괴되었고, 많은 유물들이 주민들에 의해 꺼내졌지만 신속하게 신고되어 남아있는 유구와 유물을 발굴 조사하게 되었다. 유적은 사촌 마을로 들어가는 너비 5m 가량인 진입로의 나지막한 고갯마루에 있는데, 해발 20~30m 정도인 곳이다. 이곳은 원래 비탈진 구릉이었지만 길을 내면서 절개해 적황색 석비레가 드러나 있다.
무덤 구덩이는 부식 암반을 파 들어가서 만들었는데, 평면 형태는 장방형에 가깝다. 장축 방향은 북동-남서이며, 남아 있는 규모는 길이 2.6m, 너비 0.9m이다. 매장 시설(埋葬施設)은 현 지면에서 0.55m 깊이에 바닥을 구축하였는데, 깬돌(割石)들을 한 겹 내지는 두 겹으로 쌓아 올려 축조하였다. 깬돌은 크기가 일정하지 않아 정연한 느낌이 들지 않으며, 맨 밑바닥 돌들은 일부가 안쪽으로 밀려들어와 있다. 매장 시설의 규모는 길이 1.9m, 너비 0.55m 정도이다. 피장자의 머리 방향은 천하석제 장식 옥(飾玉)의 출토 위치로 보아 남서쪽으로 추정된다. 무덤 구덩이에는 원래 100여 개 이상의 돌들로 채워져 있었다고 하므로 돌무지 시설(積石施設)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무덤 구덩이 바닥에는 목판(木板) 흔적으로 추정되는 흑갈색 부식토가 깔려 있었다. 따라서 무덤의 구조는 돌널무덤(石棺墓) 상부에 돌을 쌓은 돌무지돌널무덤(積石石棺墓)이나 무덤 구덩이와 목관 사이를 깬돌로 메꾸고 널(木棺) 상부에도 돌을 쌓은 돌무지널무덤(積石木棺墓)일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다른 유적들의 사례로 보아 돌무지널무덤일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형식의 무덤들은 예산 동서리, 아산 남성리 유적, 대전 괴정동 유적, 화순 대곡리 유적 등에서도 확인되었다.
부장 유물은 모두 26점이며 천하석제 장식 옥 2점과 숫돌(砥石) 2점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청동기이다. 칼자루 끝 장식(劍把頭飾)이 부착된 세형동검 중 칼자루 끝 장식 1점은 철광석으로 만들어졌다. 주민들에 의해 매장 문화재로 신고된 유물이 16점, 수습 발굴 조사에서 출토된 것이 10점이다. 무기류는 세형동검 4점, 청동 꺾창 3점, 청동 투겁창(銅矛) 2점, 중위안식 청동 검(中原式銅劍) 1점이고, 공구류는 청동 자귀(有肩銅斧) 1점, 청동끌(銅鑿) 2점, 청동 지우개(銅鍦) 1점이며, 의기류(儀器類)는 고운무늬 거울(精文鏡) 3점, 간두령(竿頭鈴) 2점, 조합식 쌍두령(組合式雙頭鈴) 1점, 쌍두령(雙頭鈴) 1점, 병부 동령(柄附銅鈴) 1점이다. 장신구는 천하석제 장식 옥 2점이고, 그밖에 숫돌(砥石) 2점이 더 있다. 수습 발굴 조사에서 출토된 고운무늬 거울과 세형동검, 청동 방울(銅鈴), 천하석제 장식 옥 등을 보면, 부장 유물은 무덤 구덩이의 바닥, 벽과 깬돌 사이, 내부 퇴적토 등에서 출토되었다. 무덤 구덩이 바닥 출토품으로는 천하석제 장식 옥 2점, 세형동검 2점, 고운무늬 거울 3점이 있으며, 무덤 구덩이와 깬돌 사이에서는 병부 동령과 쌍두령이 출토되었고, 내부 퇴적토에서는 세형동검 1점이 출토되었다. 발견 신고품들은 무덤 구덩이와 깬돌 사이에서 꺼낸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무덤 구덩이 위에 덮었던 나무 뚜껑(木蓋)과 돌무지(積石)로 된 봉토(封土) 사이에 매납되었던 것이 흘러 들어갔거나 깬돌로 된 벽석(壁石) 위에 매납된 것으로 생각된다. 부장품들의 위치로 보아 당시 매장에 관한 의례 절차가 간단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초포리 유적에서는 다양한 청동 유물이 출토되었다. 고운무늬 거울은 샤머니즘과 깊게 관련될 뿐 아니라 농경·수렵 의례에도 사용된 샤먼의 무구(巫具)로 추정되며, 많은 무기류는 피장자가 상당한 권력도 함께 지니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한 무덤에서 무기류와 의기류가 다량으로 출토된 것은 청동기 소유자가 이를 바탕으로 주민들에게 강제력을 구사할 수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최고 권력자는 제정(祭政)을 함께 관장하는 신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초포리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 유물들은 모두 한국 청동기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다. 고운무늬 거울들과 청동 방울들은 그 제작 수법이 정교하고 세련되어서 고도의 기술이 없이는 만들기 힘들다. 철기가 출토되지 않았지만 세형동검 문화의 전성기를 이미 벗어난 상태여서 유적의 연대는 기원전 2세기 전엽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국립광주박물관. (1988). 함평 초포리 유적. https://www.riss.kr/link?id=M21318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