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일본 조몬 농경론(日本繩文農耕論)

한국고고학사전
Admin (토론 | 기여)님의 2026년 1월 20일 (화) 12:38 판 (dkamaster 800-0172 자동 업로드 (entry_type=개념))


일본 조몬 농경론(日本繩文農耕論)
기본 정보
시대 신석기 시대
관련 정보
키워드 생업, 신석기 시대 농경, 재배, 뗀 돌도끼, 식물 유체, 토기 눌림흔적 분석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24
집필자 최종혁



설명

일본 조몬(繩文) 농경론은 일본 조몬 시대에 어떠한 농경 또는 식용 식물의 재배가 있었음을 주장하는 학설이다. 이 학설은 주부(中部)·간토(関東) 지방을 중심으로 연구되어 온 조몬 중기 농경론과 규슈(九州)를 중심으로 연구되어 온 서일본 지역의 조몬 후·만기 농경론으로 나뉜다. 이 밖에 자연환경과 생업 형태를 기준으로 조엽수림 문화(照葉樹林文化)의 농경 방식 발전 단계의 하나로 채집 경제 단계이면서 농경의 예비적 단계에 들어왔다고 하는 반재배 단계설(半栽培段階說) 등이 있다.

조몬 농경론의 원형은 19세기 말, 조몬 시대 중기의 뗀 돌도끼농경구로 추정하면서 시작되었다. 1927년에 간행된 가나가와현(神奈川県) 가쓰사카(勝坂) 유적 발굴 보고서에서는 일본 주부의 조몬 중기 유적에서 대량으로 출토된 뗀 돌도끼를 나무 자르기에 부적절한 굴지구로 고찰하면서 농경의 존재를 상정하였다. 뗀 돌도끼의 날 부위가 광택을 보여 줄 정도로 마멸되어 부드러운 토양을 반복하여 판 굴지구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그 후 1949년 후지모리(藤森栄一)가 발표한 ‘일본 원시 육경의 제문제(日本原始陸耕의 諸問題)’라는 논문으로 본격적인 조몬 농경론이 대두되었다. 후지모리는 나가노현(長野県) 야쓰가타케(八ヶ岳)산의 조몬 중기 유적을 연구해 유물을 기본으로 주거와 집락, 생업 환경, 신앙 등 모든 고고 자료를 종합해 농경론을 제시하였다.

그는 석기 조성에서 수렵구의 비중이 현저히 낮은 반면, 굴지구로서의 뗀 돌도끼는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점을 강조하여 뗀 돌도끼가 화전(火田)을 일구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대규모 마을의 존재, 식료 저장에 사용되었을 대형 토기, 농경 사회의 여신 숭배 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신 모양 흙 인형의 존재 등을 정황적 증거로 제시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조몬 농경은 조몬 중기에 증가한 인구를 부양하기 위하여 시작되었다고 보고, 그 대상으로 잡곡을 상정하였다. 이것이 조몬 중기 농경론이다.

조몬 후·만기 농경론은 1950년대 가가와(賀川光夫)가 규슈를 중심으로 하는 서일본 지역의 조몬 후·만기의 토기와 석기 중 중국·한반도의 농경 문화의 영향을 받은 유물을 지적하면서 조몬 후·만기에 잡곡 농경이 행해졌다고 한 학설이다. 그 후 오이타현(大分県) 오이시(大石) 유적과 더불어 규슈 각지의 후·만기 토기에서 볍씨 자국이, 조몬 만기 유적에서 탄화미가 출토되기도 하였다. 벼는 늦어도 조몬 후기 말엽이나 만기에 한반도로부터 도입되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 역시 조몬 중기와 마찬가지로 농경 사회로의 전환을 야기하지는 않았다.

반재배 단계란 수렵·어로·채집 활동, 즉 획득 경제가 생업의 중심을 이루며, 견과류나 식용 식물을 키워 식료로 이용한 예비적 또는 원초적인 농경 단계(생산 경제)로 정의할 수 있다. 반재배 단계설에서는 조몬 시대 중기의 농경 형태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본다. 이는 1960년대 후반부터 식물학·생태학·민족학의 학제적 연구에서 탄생한 조엽수림 문화론과 결합된다. 나카오(中尾佐助)와 사사키(佐木高明)는 동남아시아의 조엽수림대에서 벼농사 이전에 마·토란 등 근경 작물의 재배와 조·피의 화전이 선행하였다는 가설을 제시하고, 이와 비슷한 형태의 화전 농업이 같은 식생대의 조몬 시대에도 존재하였다고 주장하였다.

1980년대 이후 식물 유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주사 전자 현미경을 통한 과학적 동정이 이루어지면서 조몬 시대 농경이나 재배 식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해졌다. 현재까지 조몬 중기 또는 그 이전부터 재배된 식물로는 박(조기), 들깨·차조기(조기), 피(조기), 대마(조기), 십자화과(조기), 복숭아(전기), 우엉(전기), 콩(중기), 팥(중기) 등이 보고되고 있다. 이 밖에 밤과 가래(야생 호두)의 관리 재배도 이루어졌다는 주장이 있다. 정주 생활을 한 마을의 주위는 인간에 의해 자연 식생이 파괴되고 키 큰 나무들이 연료로 벌채됨에 따라 밤·가래를 포함하는 이차림(二次林)이 성장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밤은 사람이 가지를 치고 다른 나무들을 잘라 주는 등 관리가 이루어지면 수량이 증가하고 크기가 커진다. 최근에는 DNA 분석을 통하여 조몬 중기의 밤이 재배종에 속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아오모리현(青森県) 산나이 마루야마(三內丸山) 유적의 조몬 전·중기 식물 유체 분석으로 당시 주민들이 유적 주변의 밤나무 번식을 의도적으로 활성화하였음이 밝혀졌다. 일본 고고학계에서는 조몬 전기 이후에 어떠한 형태로든 특정 식물의 관리나 재배가 이루어지고 재배종도 존재하였다고 인정하는 추세이다. 그럼에도 조몬 시대는 수렵 채집 사회에 머물러 있었다고 간주한다. 이는 조몬 중기라는 시기의 양상을 조몬 문화 전체 중에 특별히 평가하는 것은 잘못이고, 다소의 계획적인 식물성 식물의 관리나 재배가 있었다고 해서 그것을 농경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조몬 토기의 눌림흔적 분석을 통해 여러 식물의 종자와 바구미 등의 흔적이 확인되어 조몬 농경론이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눌림흔적만으로는 야생종과 재배종의 구별이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다만, 식물 눌림흔적의 다양성은 조몬인들이 식물에 적극성을 보였음을 뒷받침해 준다. 이러한 측면에서, 조몬 농경론 또는 반재배 단계설 등이 주장하는 농경에는 질적, 양적 차이가 있지만 당시에 농경이 시작되었을 가능성은 한층 커지고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