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봉동 유적(大邱 大鳳洞遺蹟)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대구 대봉동 유적 |
| 시대 | 신석기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60-10, 21-7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구덩이, 도랑, 송국리식 집자리, 화덕 자리, 골아가리 토기, 구멍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슴베 없는 돌살촉, 기둥 모양 돌자귀, 돌칼, 부리 모양 석기, 손잡이 달린 토기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유병록 |
설명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60-10, 21-7에 위치한다. 대봉동 마을 유적(대봉동 60-10)은 2003~2004년까지 주상 복합 건물 신축 과정에서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조사하여 청동기 시대 집자리 35기, 구덩이 34기, 도랑(溝) 4기를 확인하였다. 대봉동 21-7 유적은 2014년 근린 생활시설 건립으로 삼한문화재연구원이 집자리 2기와 구덩이 3기를 조사하였다. 두 조사 지역은 약 40m 떨어져 있으며, 다른 시대의 유구가 없어 단일 유적으로 판단된다. 유적은 신천(新川) 하류에서 서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충적지에 입지한다.
대봉동 마을 유적의 집자리는 세장방형(細長方形), 장방형 33기, 원형이 3기로 구분된다. 원형 중 2기는 집자리 가운데가 확인되고, 1기(27호)는 송국리식이다. 유적의 중앙부에 너비 15m 내외의 하천을 기준으로 동·서로 구분된다. 서쪽의 집자리는 원형 1기와 장방형 4기로, 후대에 훼손된 부분이 있어 다수 파괴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동쪽 집자리는 서쪽 집자리에서 약 40m 떨어져 확인되며, 장방형 집자리가 밀집 분포한다. 17호는 길이 17.5m, 너비 4.6m로 가운데 길이 방향으로 4개의 화덕 자리가 약 2.5m 간격으로 위치한다. 3개는 돌 두름식(圍石式)이고, 나머지는 구덩식(竪穴式)이다. 벽면에는 50~80㎝간격으로 기둥 구멍 총 44개가 확인되었고, 화덕 자리 사이에도 5개의 기둥 구멍이 있어 지붕의 형태는 맞배 혹은 우진각으로 추정된다. 돌 두름꼴 화덕 자리는 장방형 집자리에서도 1~2개씩 확인되는데 구덩식으로 만들어진 경우는 17호와 12호 이외에는 없다.
대봉동 21-7 유적의 집자리는 장방형이며, 1호는 가운데에 지름 0.51m, 깊이 0.13m의 구덩이 1개와 기둥 구멍으로 추정되는 구멍이 2개 확인되었다. 2호는 돌 두름식 화덕 자리가 확인되었다.
구덩이는 집자리와 섞여서 확인되며, 방형 구덩이의 일부는 규모가 큰 집자리 인근에 위치하여 집자리의 부속 시설일 가능성도 있다. 또한, 유구 간 겹친 상태로 보아 방형 집자리보다 일찍 만들어졌거나 원형 집자리보다는 늦게 만들어진 것도 있는 구덩이도 있어 시간적 차이가 큰 것으로 판단된다.
출토 유물은 장방형 집자리에서 겹아가리 짧은 빗금 골아가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口脣刻目土器), 겹아가리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二重口緣口脣刻目孔列土器),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등의 무늬가 섞인 토기가 다수 확인되었다. 이 외에도 문살무늬 항아리(格子文壺)와 붉은 간 토기를 비롯하여 가지무늬 항아리(彩文壺)도 한 점이 출토되었다. 석기류는 슴베 없는 돌살촉(無莖式石鏃), 기둥 모양 돌자귀(柱狀石斧) 여러 점과 돌칼(石刀), 부리 모양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원형 집자리(27호)에서는 대구 지역에서 늦은 시기에 확인되는 손잡이 달린 토기(把手附土器)가 출토되었다. 특히 26호에서는 신석기 시대에 해당하는 짧은 빗금무늬의 바리(鉢), 사격자무늬(斜格子紋) 독(甕) 등이 출토되었다. 이를 통해 신석기 시대 생활 유적이 청동기 시대 유구가 조성되면서 유실되고, 토기 편이 청동기 시대 집자리 폐기 시 내부에 같이 매몰된 것으로 판단된다.
연대는 대봉동 21-7 유적의 탄소 연대 측정 결과를 통해 1호는 293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1260~1,010년), 2호 290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1220~970년)로 확인되었다. 유적은 신석기 시대 늦은 시기부터 인간이 정주하기 시작하여, 청동기 시대까지 장기간 형성된 유적이다. 이를 통해 선사 시대 신천 주변의 문화 복원에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