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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 | 시대=청동기 시대 | ||
2026년 1월 20일 (화) 13:20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김해 어방동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경상남도 김해시 어방동 986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구덩이, 도랑, 가마, 붉은 간 토기, 토기 가마, 민무늬 토기, 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간 돌검, 간 돌살촉, 반달 돌칼, 돌칼, 조갯날 돌도끼, 돌대팻날, 부리 모양 석기, 대석, 숫돌, 가락바퀴, 그물추, 선돌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배진성 |
설명
경상남도 김해시 어방동 986에 위치한다. 김해 가야 민속촌 조성 지구 주차장 부지 건설로 2003~2004년 조사하여, 집자리 28기, 구덩이 5기, 도랑(溝) 1기, 가마(窯) 1기, 야외 화덕 자리(野外爐址) 1기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분성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가파른 능선에 있는 평탄한 구릉의 정상부와 사면부에 입지한다.
집자리의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평행한다. 형태는 장방형 또는 세장방형이며, 길이 8~11m, 너비 4~6m이다. 화덕 자리는 대부분 구덩식(竪穴式)이며, 한 집자리에 2~3개씩 설치되었다. 38호는 돌 두름식(圍石式) 화덕 자리로, 깬돌(割石)을 장방형으로 돌려 세웠고, 46·49호는 깬돌을 부분적으로만 돌려 만들었다. 바닥은 불로 다져 단단하고 내부는 불탄 점토와 재(灰)로 가득 차 있었다. 기둥 구멍은 집자리 중앙에 등 간격으로 설치되어 중심을 이루는 것과 이것을 보조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벽 도랑(壁溝)은 ‘ㅡ’, ‘ㄱ’자 모양이 있다. 벽은 점토를 바르고 판자를 덧댄 벽으로 추정되는데, 13호에서는 불탄 판자편이 확인되었다. 46호에서는 판자를 덧대고 벽 도랑 안에 통나무를 놓은 것이 확인되었다. 37·49호에서는 한쪽 모서리에 지름 0.8m 내외의 작은 구덩이를 판 저장 시설이 확인되며, 84호에서는 중앙부에 파인 작은 구덩이에서 그물추가 쌓여진 채로 출토되었다. 4호에는 집자리 밖으로 돌출된 기둥 구멍이 있고 바닥면도 그쪽으로 볼록하여 출입구로 추정된다. 화재로 폐기된 것은 7기로, 이 가운데 13호의 바닥면에서는 맞배 지붕으로 보이는 불탄 구조물이 확인되었다.
구덩이는 집자리 주변에 위치하여 관련된 부속 시설로 추정된다. 원형, 타원형, 말각 방형 등 다양하며, 5호 내부에는 의도적으로 폐기된 것처럼 보이는 깬돌이 다량 확인되었다. 102호에서는 바닥 중앙부에 지름 0.3m의 불탄 자리가 확인되었다. 70호 도랑은 서쪽 구릉의 남동쪽 경사면으로 뻗어 내린 능선의 아랫자락에 위치하는데, 이곳은 집자리가 분포하지 않는 곳이다. 형태는 부정형이며 내부에 작은 구덩이가 파여져 있다. 출토 유물로는 붉은 간 토기 항아리 1점만 출토되어, 의례와 관련된 시설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토기 가마로 추정되는 95호는 46호 집자리를 일부 파괴하고 설치되었으며, 벽의 가장자리를 따라 목탄과 불탄 흙(燒土)이 ‘C’자 모양으로 확인되었다. 전체 형태는 지름 3.9m의 타원형이며, 내부에 재와 불탄 흙이 있었고 바닥에는 불탄 점토 덩어리가 노출되었으며 바닥면은 불을 맞아서 단단해진 상태였다. 벽면에는 수직으로 파여진 기둥 구멍들이 있어 상부 구조물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96호 야외 화덕 자리는 지름 1.6m 규모의 원형이며, 내부에 재와 목탄 및 불탄 흙이 가득 채워진 채로 노출되었고, 불을 맞아 붉게 변한 작은 깬돌들도 다량 출토되었으며 그 사이에서 민무늬 토기 편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바리 토기(鉢形土器),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바닥 편, 붉은 간 토기 항아리, 간 돌검, 간 돌살촉, 반달 돌칼, 돌칼(石刀),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부리 모양 석기, 대석(臺石), 숫돌(砥石), 석구(石球), 미완성 석기, 용도 불명 석기, 토제 가락바퀴, 토제 그물추 등이 있다. 토기의 무늬는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二重口緣短斜線文), 골아가리 무늬(口脣刻目文), 골아가리 구멍무늬(口脣刻目孔列文), 구멍무늬(孔列文), 항아리모양 토기(壺形土器)의 목 부분에 3조(條)의 새김 줄무늬(沈線文) 등이 있어,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에 속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간 돌검은 홈 자루식(二段柄式)이며 피 홈(血溝)이 있고 칼자루 끝 장식(劍把頭飾)이 달렸다. 간 돌검이나 간 돌살촉과 같은 무기류보다 돌대팻날의 출토 비율이 높은 편이다. 84호 집자리에서는 그물추가 76점 출토된 점에서 비록 산지(山地)의 마을이지만 고기잡이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화재로 폐기된 집자리에서의 유물 출토량이 많은 편이며, 화덕 자리 내에서 출토된 바리 토기는 취사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는 크게 다섯 무리(群)로 구분된다. 1무리는 서쪽 구릉의 정상부와 남서쪽 경사면에 있는 9기(37·38·50·51·53·66·84·94·101호)이며, 여기서 가장 큰 37호 앞쪽에 광장으로 추정되는 공터가 있다. 2무리는 서쪽 구릉의 동남쪽 경사면에 있는 4기(1·4·13·71호)이며, 가장 큰 1호가 높은 곳에 위치한다. 3무리는 서쪽 구릉의 북쪽 경사면에 있는 3기(43·61·85호)이다. 4무리는 동쪽 구릉의 남쪽 경사면에 있는 9기로 대형 1기(83호)과 중·소형 8기(35·46·48·49·52·65·87·92호)로 이루어졌으며, 다른 무리에 비해 집자리의 밀집도가 가장 높다. 이 무리에 속한 집자리에서만 간 돌검이 출토된 점에서 이 유적에서 가장 중심적인 무리로 판단된다. 5무리는 동쪽 구릉의 동남쪽 경사면에 있는 2기(76·82호)로 조사 구간 밖으로 이어진다. 구릉 정상부의 중앙에는 높이 0.7m 정도의 자연 암석이 세워져 있고 그 주위는 공터(空地)이다. 이는 의도적으로 세워진 선돌(立石)로 판단되며, 이를 둘러싼 공터는 마을 내의 공공 장소 등과 같은 의미가 부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성 반제리 유적의 환호로 둘러싸인 공간에 노출된 자연 암반도 이와 유사한 성격의 것이며, 하남 덕풍골 유적의 큰 자연 암석 역시 신성한 대상으로 판단되고 있다. 유적은 해발 280m의 산지에 입지한 이른바 고지성 취락(高地性聚落)이며, 김해 지역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前期)의 대규모 마을 유적으로 중요성이 인정된다.
조사정보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 발굴조사 | 2003년 12월 27일~2004년 7월 26일 | 김해 어방동 무문시대 고지성 취락유적 | 2006 | 경남고고학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