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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13:19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장흥 송정리 갈두 고인돌군, 갈두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송정리 산58-1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인돌 |
| 키워드 | 고인돌, 묘역시설, 돌살촉, 간 돌검, 민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옥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김승근 |
설명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송정리 산58-1 일원에 위치한다. 탐진 목적댐 건설 구간에 포함되어 2002~2003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고인돌이 갈두 고인돌 가군에서 61기, 갈두 고인돌 나군 8기, 갈두 고인돌 다군 25기로 총 94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북쪽에 위치한 문바위산과 범바위산에서 흘러내린 토석이 퇴적된 소규모 선상지 지형의 선단부에 해당되며, 탐진강의 본류와 지류인 유치천이 합류하고 있는 지역이다. 거리상으로 송정 고인돌 나군에서 갈두고인돌 다군까지는 480m 정도 떨어져 있다. 갈두 고인돌 가군에서 다군까지 310m 정도 거리인데 전체적으로는 산사면과 충적지의 경계를 따라 동서 방향으로 열을 이루고 있으나 갈두 고인돌 나군은 탐진강과 가까운 하단부에 위치한다. 유적에서 서쪽으로 송정 고인돌 나군, 송정 고인돌 가군 등이 유적이 분포한다.
갈두 고인돌 가군에서는 61기의 고인돌이 조사되었다. 그중 덮개돌(上石)이 확인된 것은 35기, 하부 구조만 확인된 것은 26기이며 덮개돌이 확인된 35기 가운데 덮개돌과 하부 구조가 함께 확인된 경우는 26기이다. 덮개돌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 타원형, 삼각형, 마름모꼴으로 구분되며 장방형과 타원형이 가장 많다. 단면 형태는 괴석형, 장방형, 타원형으로 세분할 수 있다. 괴석형 덮개돌은 외형상 웅장하고 거대한 덮개돌(로 2호 고인돌만 해당하며 덮개돌은 길이 5.44m, 너비 3.52m, 두께 1.58m, 무게 42톤으로 대형이다. 장방형 덮개돌은 38기중 29기이며, 덮개돌은 위아래가 편평하고 측면이 수직인 형태로 조정흔과 채석흔이 관찰된다. 길이 0.86~3.7m, 너비 0.5~2.36m, 두께 0.23~1.1m, 무게 0.3~13톤으로 소형과 중형 정도에 해당한다. 타원형 덮개돌은 38기중 5기로 덮개돌의 위아래가 볼록하고 양 측이 둥글게 다듬어진 형태이다. 길이 2.18~3.85m, 너비 1.73~3.27m, 두께 0.66~1.09m, 무게 5.5~15톤으로 중형 정도이다. 덮개돌을 받치는 받침돌(支石)이 확인된 26기 중 덮개돌이 교란되어 정확한 성격 확인이 어려운 경우는 5기이다. 나머지 21기 중 받침돌이 설치된 것은 14기, 받침돌이 설치되지 않고 덮개돌(蓋石), 돌무지(積石), 벽석(壁石)으로 받친 것이 7기이다. 받침돌은 깬돌(割石)과 강돌(川石), 판돌(板石)이 이용되었는데 주로 깬돌과 강돌이 사용되었다. 덮개돌과 하부 구조가 함께 확인된 26기의 고인돌 중 뚜껑돌이 설치된 것은 12기이며, 뚜껑돌을 설치하지 않고 덮개돌을 덮은 것은 11기이다. 나머지 34·40·57호 고인돌은 교란이 심해 확인할 수 없다. 뚜껑돌은 1단으로 덮는 유형이 3기, 2단으로 덮는 유형이 6기, 3단으로 덮는 유형은 3기이다. 돌무지가 확인된 것은 31기이며, 장방형을 확인 할 수 있는 고인돌은 17·18·25·31·36·46·47·50호로 단독 묘역(墓域)이 확인된다. 묘역을 연접하여 시설한 고인돌은 15~17·56·57호이다. 돌무지는 1단으로 깔아 시설한 유형은 9기, 2단만 시설한 유형은 8기이다. 축조 재료는 판돌을 이용하여 부분적으로는 깬돌을 이용한 것으로 확인된다. 무덤방(墓室)가 확인된 49기의 고인돌 가운데 유실이 심한 9기를 제외하고, 무덤방 유형은 돌돌림형 8기, 돌널형 7기, 돌덧널형 11기, 혼축형 14기로 구분된다. 묘표석의 기능은 2호 고인돌에서 확인되는데 2호 고인돌은 군집 열에서 단독으로 떨어져 최상단 중심에 위치하는 대형 고인돌이다.
10호 고인돌에서 탄화 목재(炭化木材)와 48호 고인돌에서 머리 뼈가 확인되었다. 10호와 48호 고인돌은 모두 돌덧널형(石槨形) 무덤방으로 48호 출토 머리 뼈는 출토시 가루화 되어 분석이 어려웠으나 머리는 서쪽을 향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10호 무덤방의 탄화 목재는 화장(火葬)과 관련된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유물은 10호 돌살촉, 25호 간 돌검, 38호 옥, 48호 붉은 간 토기와 가락바퀴, 36호 간 돌검, 37호 간 돌검, 45호 간 돌검, 50호는 40여 점의 석기 및 토기 편이 출토되었다.
갈두 고인돌 나군은 총 8기의 고인돌이다. 전면적으로 석재가 깔려있고, 그 범위가 가장 큰 5호 고인돌을 중심으로 도드라지는데 서쪽으로 갈수록 경사가 완만해진다. 8기가 동서 방향으로 2열의 군집을 이루며, 2호와 3호는 무덤방 사이에 소형 잡석이 채워져 동일한 군집의 상태로 노출되어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와 같이 갈두 고인돌 나군은 동서 방향으로 정연하게 2열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갈두 고인돌 다군은 25기로 동서 방향으로 3~4열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 열은 하나의 소군집상의 열과 동일하게 형성되어 있다. 덮개돌의 규모는 무게상의 수치로 볼 때 다-13호가 가장 큰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대부분은 2~5톤 내외이다. 하부 구조는 확인되지 않고 덮개돌만 확인된 경우는 나군-6호, 다군-9~12·15·19호로 총 7기이다.
묘역 시설은 나군의 경우, 무덤방이 지상으로 살짝 도드라져 있어 이를 보강하기 위해 깬돌을 주변에 1단 정도 돌려 쌓았다. 다군은 3가지 형태로 구분되는데, 첫 번째는 나지구와 마찬가지로 무덤방을 보강하기 위해 1단 정도 깬돌을 깐 형태이다. 두 번째는 무덤방 주변으로 원형으로 일정 부분 구획을 하고 무덤방과 구획석 사이에 깬돌을 채워 무덤방을 보호한 형태이며, 세 번째는 무덤방 주변으로 강돌(川石)을 사용하여 전체적으로 돌려 깐 이후 점차 돌무지 모양으로 대형 강돌을 쌓아 올린 형태이다.
갈두 고인돌 나·다군에서 확인되는 받침돌(支石)은 모두 소형으로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하며 매장 시설의 일부나 묘역 시설에 올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뚜껑돌은 모두 판돌재 깬돌을 사용하였으며 무덤방의 벽면에 걸쳐지게 이용된 것은 아니며 무덤방 퇴적토상에 떠있는듯한 상태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에 무덤방 내에 별도의 시설물이 있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무덤방의 장축 방향을 따라 2~5매 정도를 깔고 있다. 바닥 시설은 전면에 깬돌이나 강돌을 깔고 소형 잡석을 빈 공간에 채워 시설한 것이 있으며 무덤방의 짧은 벽과 중앙에 3매의 판상석을 깐 경우가 확인되었다. 이 중 독특한 양상을 보이는 것은 다군 17호로 굴광을 한 이후에 잡석을 일정한 두께로 깔고 그 위에 다시 강돌 8매 정도를 다시 깔았다. 또한 그 위에 다시 소형 강돌을 전면에 깔아 바닥을 3중으로 시설한 경우도 확인된다. 출토 유물은 매우 소량인 돌살촉, 붉은 간 토기 편, 돌도끼, 민무늬 토기 편 등이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