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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야요이 시대 초기의 철기(弥生時代初期의 鉄器)
| 이칭별칭=미생 시대 초기의 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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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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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위치=일본
|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김상민
| 집필자=김상민
| 관련 시기=야요이 시대
| 관련 유적=마가리타 유적, 사이토야마 유적, 히에 유적
| 성격=유물 | 무기 | 이기
| 관련 개념=야요이문화 | 철기 | 야요이 시대 | 대륙계 간석기 | 단조 | 주조 | 판상 철기 | 주조 철부 | 쇠끌 | 쇠 새기개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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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42 판


야요이 시대 초기의 철기(弥生時代初期의 鉄器)
기본 정보
동의어 미생 시대 초기의 철기
시대 청동기 시대
관련 정보
유적 히에 유적
키워드 야요이 문화, 철기, 대륙계 간석기, 주조 철기 재가공, 주조 철부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상민



설명

야요이 문화야요이 토기, 수도작, 금속기의 출현이라는 3가지 요소를 특징으로 한다. 과거 금속기 중 철기야요이 시대의 개시와 함께 등장하는 것으로 보았다. 일본 열도에서는 야요이 시대 조기부터 철기가 출토되기 시작하는데, 후기가 되면 이기(利器)는 완전히 석기에서 철기로 전환된다. 야요이 시대 초기의 철기는 주로 다음의 특징이 논의되었다.

야요이 시대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철기의 연속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후쿠오카현 마가리타 유적에서 출토된 단조판상 철기(板狀鐵器)와 구마모토현 사이토야마 유적주조 철부는 일본 내 생산품이 아닌 한반도를 거쳐 넘어온 대륙 계통의 박재품(舶載品)으로 본다. 두 유적의 철기는 유우스식 토기(夜臼式土器)~이타즈케식 토기(板付式土器) 야요이 토기와 공반되므로 야요이 시대 조기로 비정된다. 이로 인해 대륙계 간석기가 일본 열도 각지에서 정착되는 시기에 철기도 출현한다고 추정한다. 그럼에도 전기에서 중기 전반까지 철기의 출토량은 안정적이지 않다. 이는 철기가 석기와 달리 소재의 특수성으로 열도 내 연속적으로 출토되지 않을 수 있다는 해석으로 이어졌다.

야요이 시대 초기의 철기에서 주목되는 특징은 파손된 주조 철기를 재가공하는 점이다. 주조 철기의 재가공품은 야요이 시대 중기 이전부터 등장하는데, 판상 철부나 쇠끌(鐵鑿), 쇠 새기개(鐵鉈) 등 날을 가진 여러 기종이 확인된다. 주조 철기의 재가공품은 야요이 시대 후기에 북부 규슈에 보급되는 철기와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주조 철부의 파편을 마연, 가공하여 제작한 도구이다. 주조 철부의 파편이 원래 완전한 형태의 주조 철부가 박재되어 반입된 후 일본 열도 내에서 파손된 것인지, 파손된 상태로 박재되어 들어온 것인지를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야요이 시대 후기에 단야 공정이 보급되기 이전까지 석기 제작과 동일한 기술로 전혀 다른 철기를 만들어내었다는 점은 야요이 시대 초기의 주요한 특징으로 평가된다.

야요이 시대 초기의 철기 연구는 후쿠오카현 히에 유적에서 주조 철부(중기 후반)가 발견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주조 철부는 대부분 완전한 형태로 발견되었는데, 자루 부분(銎部)에 두 줄의 돌대(二組突帶)가 남아 있는 중국 전국 시대의 연나라 주조 철부로 판단된다. 즉, 전국 시대 연나라의 영역에서 제작된 주조 철기가 박재품으로 반입되었다는 것이다. 히에 유적의 주조 철부는 자루에서 날의 방향으로 절단하여 그 단면을 관찰하였는데, 날 부분의 단면에 회백색의 주철(銑鐵)이 남아있었고, 주철의 가장자리는 강철화된 상태였다. 이러한 현상은 오오사와 마사미(大澤正己)의 금속학적 분석을 통해 탈탄(脫炭)층으로 확인되었다. 주조 제품은 이기로서 기능을 높이기 위해 별도의 장치와 기술로 주철 표면의 탄소를 낮춰 연성을 높여 주여야 한다. 또한 히에 유적 주조 철부의 금속학적 분석은 주조품의 열처리 기술의 존재를 알려주는 직접적인 근거가 되어 철기의 제작 기술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기 동북아시아 제철 기술의 일면이 제시된 사례로써 주목된다.

한편 2003년 AMS를 이용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야요이 시대 개시 연대가 발표되면서 500년 정도 상향된 연대관은 야요이 시대 초기의 철기가 중국 대륙의 철기보다 이른 시점에 등장하게 된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후 야요이 시대 조기로 비정되었던 철기의 출현 연대가 재검토되었다. 하루나리 히데지(春成秀爾)는 사이토야마 유적의 초기 철기는 재퇴적층에서 출토되었기 때문에 조노코시식 토기(城ノ越式土器) 단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이후 초기의 철기에 대한 출토 상황이 재검토되면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졌으며, 초기 철기와 야요이 시대 조기의 토기에 대한 공반 관계를 부정하는 입장과 새로운 출현 연대가 제시되었다. 야요이 시대 철기의 출현 시점을 전기 말~중기 초두로 조정하며, 야요이 시대의 전반부는 석기 시대, 후반부는 철기 시대라는 개념으로 정리하기도 한다. 이는 야요이 시대의 개시와 철기의 출현이 동시적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 견해이다. 이처럼 야요이 시대의 신연대가 제시된 이후 야요이 시대 조기에 출현하는 초기의 철기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아직까지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