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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 {{유적정보 | ||
| 한글표제어=창랑리 고인돌군[和順 滄浪里支石墓群] | |||
| 이칭별칭=화순 창랑리 고인돌군, 동복댐 수몰 지구 지석묘 | | 이칭별칭=화순 창랑리 고인돌군, 동복댐 수몰 지구 지석묘 | ||
| 시대=청동기 시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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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 집필자=이영문 | | 집필자=이영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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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9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화순 창랑리 고인돌군, 동복댐 수몰 지구 지석묘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 19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인돌 |
| 키워드 | 고인돌, 바둑판식 고인돌, 덮개식 고인돌, 장대석, 슴베 간 돌검, 자루 간 돌검, 간 돌살촉, 간 돌검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이영문 |
설명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 19 일원에 위치한다. 창랑 마을 뒤에서 곡류된 강을 향해 뻗은 세장한 구릉에서 구릉 방향에 따라 동서 일렬로 14기가 분포한다. 동복댐 수몰 지역에 포함되어 1981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고인돌 14기 중 7기에서 무덤방(墓室)이 확인되었고 덮개돌(上石) 없는 무덤방 1기가 추가되어 모두 8기가 조사되었다.
고인돌의 형식은 바둑판식이 2기이고 나머지는 덮개식 고인돌이다. 바둑판식은 군집의 중심에 위치하는데, 여타 고인돌의 받침돌(支石)과는 달리 장대석(長大石)을 양쪽에 배치한 점이 특이하며, 덮개식 중 얇은 판돌(板石)로 짜맞춘 무덤방 위에 소형의 덮개돌 규모인 두께 0.3m의 뚜껑돌(蓋石) 1매를 얹고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고인돌도 있다. 무덤방도 덮개돌 배치 방향과 같은 동서 방향으로 열을 지어 나타났다. 무덤방은 형태에 따라 셋으로 나누어지는데, 판돌로 축조한 돌널형(石棺形), 깬돌(割石)을 간단히 쌓은 돌덧널형(石槨形), 깬돌로 정교히 쌓고 주위에 돌을 쌓은 돌덧널형이 있다.
덮개돌의 규모는 1호 길이 2.1m, 너비 1.6m, 두께 0.55m, 2호 길이 2.8m, 너비 1.2m, 두께 0.55m, 3호는 길이 2.4m, 너비 1.2m, 두께 0.55m, 4호 길이 2.3m, 너비 1.1m, 두께 0.45m, 6호 길이 3.7m, 너비 1.4m, 두께 0.6m, 7호 길이 3.5m, 너비 1.7m, 두께 0.4m이다. 고인돌 중 6호와 7호는 군의 중심에 위치하고 덮개돌도 커서 다른 것들과 비교되는데, 두 무덤방 안에서 홈이 있는 슴베 간 돌검(有莖有溝式磨製石劍)이 각각 벽석에 꽂혀진 상태로 출토되었다. 그리고 3호 덮개돌 아래에서는 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1점과 간 돌살촉 2점이 출토되었다.
이들 고인돌군은 당시 이곳에 혈연을 기반으로 하고 살던 족장과 그 가족들이나 이에 버금가는 경제력이 있는 자들의 공동 무덤(共同墓)으로 추정된다. 창랑리를 비롯한 동복댐 수몰 지역의 고인돌들은 각각 군들마다 출토된 유물이 약간의 차이가 있다. 월산리에서는 실생활에 쓰이던 석기류와 토기 편들이, 장학리에서는 가지무늬 토기(彩文土器)와 토기 편들이, 창랑리에서는 간돌검 등 무기류가 부장된 것으로 보아 같은 지역 내에서의 고인돌군들을 비교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이다. 고인돌군은 조사 후, 댐 건설로 수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