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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치레걸이는 개인의 몸이나 의복을 꾸미기 위해서 만들거나 사용한 물품으로, [[지닐예술품|지닐 예술품]]의 한 종류다. 가장 오래된 치레걸이의 시기는 14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모로코 비즈문(Bizmoune) 유적], 대부분 [[후기구석기시대|후기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다.
구석기 시대에는 다양한 소재로 치레걸이를 만들었는데, 동물의 이빨, 뿔, 뼈, 상아, 조가비 또는 다양한 종류의 돌을 사용하였다. 동물의 이빨에 구멍을 뚫어서 여러 개를 연결한 목걸이나 팔찌, 뼈나 상아를 갈아서 만든 구슬 등도 발견되었다. 뼈나 돌 등의 재료로 만든 조각에 구멍을 뚫어 치레걸이로 만들기도 했다. 치레걸이는 화석화된 사람의 뼈 옆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불 땐 자리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한국의 구석기 유적에서는 아직까지 발견된 사례가 없다.
치레걸이가 구석기 시대의 사회 구성이나 상징 체계를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임은 분명하나, 그 용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이것이 [[구석기시대|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상징이자 소통 수단이라는 점에는 많은 연구자가 동의하고 있다. 치레걸이가 집단 내 개인의 지위를 나타내는 위세품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구석기 시대에 역사 시대와 같은 해석을 적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모나코의 카비용(Cavillon) 동굴에서 발견된 ‘카비용 부인(Dame de Cavillon)’이나 러시아의 순기리(Sungir) 유적처럼 많은 치레걸이를 지닌 채 매장된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성(性)이나 나이에 따른 차별성이 잘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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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Chiotti, L. et al. (2008). Art et parure aurignaciens de l’abri Pataud (les Eyzies-de-Tayac, Dordogne, France) dans le contexte aurignacien du Périgord. In H. Floss, N. Rouquerol(Eds.), <i>Les chemins de l’art aurignacien en Europe</i>(pp. 171-186). Musée-forum Aurignac. https://search.worldcat.org/ko/title/316004932
* Delluc, B., Delluc, G. (2012). <i>La vie des hommes de la Prehistoire</i>(2nd ed.). Ouest France. https://search.worldcat.org/ko/title/801042370
* Kuhn, S. L., Stiner, M. C. (2006). Les parures au paléolithique: Enjeux cognitifs, démographiques et identitaires. <i>Diogène, 214</i>(2), 47-58. https://doi.org/10.3917/dio.214.0047
* Vanhaeren, M., d’Errico, F. (2001). La parure de l’enfant de la Madeleine (fouilles Peyrony). Un nouveau regard sur l’enfance au Paléolithique supérieur. <i>PALEO, 13</i>, 201-240. https://doi.org/10.4000/paleo.1058
* d’Errico, F. et al. (2005). Nassarius kraussianus shell beads from Blombos Cave: Evidence for symbolic behaviour in the Middle Stone Age. <i>Journal of Human Evolution, 48</i>(1), 3-24. https://doi.org/10.1016/j.jhevol.2004.09.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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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25 판


치레걸이[裝身具]
기본 정보
동의어 장신구
시대 구석기 시대
관련 정보
키워드 지닐 예술품, 불 땐 자리, 화석, 매장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구석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23
집필자 공수진



설명

치레걸이는 개인의 몸이나 의복을 꾸미기 위해서 만들거나 사용한 물품으로, 지닐 예술품의 한 종류다. 가장 오래된 치레걸이의 시기는 14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모로코 비즈문(Bizmoune) 유적], 대부분 후기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다.

구석기 시대에는 다양한 소재로 치레걸이를 만들었는데, 동물의 이빨, 뿔, 뼈, 상아, 조가비 또는 다양한 종류의 돌을 사용하였다. 동물의 이빨에 구멍을 뚫어서 여러 개를 연결한 목걸이나 팔찌, 뼈나 상아를 갈아서 만든 구슬 등도 발견되었다. 뼈나 돌 등의 재료로 만든 조각에 구멍을 뚫어 치레걸이로 만들기도 했다. 치레걸이는 화석화된 사람의 뼈 옆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불 땐 자리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한국의 구석기 유적에서는 아직까지 발견된 사례가 없다.

치레걸이가 구석기 시대의 사회 구성이나 상징 체계를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임은 분명하나, 그 용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이것이 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상징이자 소통 수단이라는 점에는 많은 연구자가 동의하고 있다. 치레걸이가 집단 내 개인의 지위를 나타내는 위세품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구석기 시대에 역사 시대와 같은 해석을 적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모나코의 카비용(Cavillon) 동굴에서 발견된 ‘카비용 부인(Dame de Cavillon)’이나 러시아의 순기리(Sungir) 유적처럼 많은 치레걸이를 지닌 채 매장된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성(性)이나 나이에 따른 차별성이 잘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지

참고문헌

  • Chiotti, L. et al. (2008). Art et parure aurignaciens de l’abri Pataud (les Eyzies-de-Tayac, Dordogne, France) dans le contexte aurignacien du Périgord. In H. Floss, N. Rouquerol(Eds.), Les chemins de l’art aurignacien en Europe(pp. 171-186). Musée-forum Aurignac. https://search.worldcat.org/ko/title/316004932
  • Delluc, B., Delluc, G. (2012). La vie des hommes de la Prehistoire(2nd ed.). Ouest France. https://search.worldcat.org/ko/title/801042370
  • Kuhn, S. L., Stiner, M. C. (2006). Les parures au paléolithique: Enjeux cognitifs, démographiques et identitaires. Diogène, 214(2), 47-58. https://doi.org/10.3917/dio.214.0047
  • Vanhaeren, M., d’Errico, F. (2001). La parure de l’enfant de la Madeleine (fouilles Peyrony). Un nouveau regard sur l’enfance au Paléolithique supérieur. PALEO, 13, 201-240. https://doi.org/10.4000/paleo.1058
  • d’Errico, F. et al. (2005). Nassarius kraussianus shell beads from Blombos Cave: Evidence for symbolic behaviour in the Middle Stone Age. Journal of Human Evolution, 48(1), 3-24. https://doi.org/10.1016/j.jhevol.2004.09.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