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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4일 (월) 11:05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인천 당하동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인천광역시 서구 당하동 산31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환구, 집자리, 구덩이, 겹아가리 토기, 구멍무늬 토기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구준모 |
설명
인천광역시 서구 당하동 산31 일원에 위치한다. 2014~2016년 인천 검단 택지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발굴 조사하여 환구(環溝) 1기, 집자리 163기, 구덩이 7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동서로 뻗은 계목산 구릉 일대에 위치하며 주변으로 계양천과 매천, 신기천에 둘러싸여 있다. 북서편 1.3km 지점에 인천 원당동 유적이 있다.
집자리는 주로 능선의 정상부(해발 30~65m)에 조성되어 있으며 평면 형태가 확인 가능한 것을 중심으로 방형 13기, 장방형 90기, 세장방형 14기로 구분된다. 유물 양상으로 볼 때 겹아가리 토기(二重口緣土器)와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관련 유구로 구분된다. 겹아가리 토기 관련 유구는 2-2지점에서 집자리만 5기가 확인되었다. 길이 7.2m 이상, 너비 4~6m로 장단비 1.5:1 이하의 장방형에 방형도 1기가 있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가 집자리 당 1기씩 단독으로 시설되어 있으며 이외에 저장 구덩이도 있다. 유물은 겹아가리 토기, 겹아가리에 짧은 빗금무늬(短斜線)나 톱니무늬(鋸齒文)가 시문된 토기, 석기는 갈판 등이 출토되었다.
나머지 대부분의 유구는 구멍무늬 토기 관련 집자리와 구덩이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 장방형, 방형으로 구분되는데 주로 장방형이 다수이며 나머지 형태는 10기 정도로 소수이다. 세장방형 집자리는 길이 12~20m, 너비 3.2~5.1m이며 주로 유적의 북동편인 4-3~5지점에 밀집 분포한다. 기둥 구멍은 중앙 기둥 구멍 열에 벽 기둥 구멍 열로 이루어져 있고,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가 집자리의 길이에 따라 3~7기, 벽 도랑(壁溝), 저장 구덩이 등이 시설되어 있다. 장방형 집자리는 길이 5~10m, 너비 3~4.5m로 세장방형과 내부 시설은 유사하나 화덕 자리의 수는 1~4기 정도로 줄어든다. 방형 집자리는 길이 3.5m, 너비 2m 이하의 소형으로 기둥은 중앙 1기둥이 있거나 없으며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가 1기 있거나 없고, 원형 구덩이 등이 확인된다. 이들 중 화덕 자리가 없는 집자리는 공방이나 저장 공간 등 기능상 성격이 구분되는 것도 일부 확인되었다.
유물은 3가지 집자리 형태에서 모두 비슷한 양상이다. 구멍무늬 토기,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 반 관통 구멍무늬 토기(半貫通孔列土器), 간 도끼(조갯날(蛤刃)·대팻날(片刃)·기둥 모양 외날(柱狀片刃)·톱니날(星形)·바퀴날(環狀)), 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 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통슴베 돌살촉(一段莖式磨製石鏃), 버들잎 모양 간 돌살촉(柳葉式磨製石鏃), 돌창(石槍), 돌칼(長柱形石刀, 半月形石刀), 숫돌(砥石) 등이 출토되었다.
환구는 구릉 정상부 해발 61~63m에 위치한다. 잔존 형태가 반원형(半圓形)이지만 북동편 급경사 구간이 후대 삭평으로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크기는 지름 24.2m, 구 너비 0.9~1.6m 정도이다. 구조적으로 원형 공간 내부와 외부를 구분한 점, 주거군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정상부에 독립적으로 조성되어 있는 점 등으로 보았을 때 제의(祭儀)를 위한 시설로 판단된다. 유물은 민무늬 토기 편 1점이 출토되었다. 유적 북편 약 1.1km 지점 가마산 정상부에 중앙문화재연구원에서 조사한 인천 검단신도시 Ⅳ지점 내 유적 환구와 부천 고강동, 화성 쌍송리 등 중서부 지역에서 확인되는 환구 마을 유적들과 입지와 형태, 주변 유구 등에서 유사하여 관련성이 추정된다.
구덩이는 평면 타원형과 방형에 길이 2.5m, 너비 1.8m 이하의 크기로 내부 시설은 없으며, 유물은 구멍무늬 토기 편, 돌끌(石鑿), 슴베 간 돌검 등이 출토되어 집자리 관련 부속 시설로 판단된다.
방사성 탄소 연대는 38기의 집자리에서 검출되었다. 보정 결과, 3개 군으로 구분되며 각각 기원전 1220~1030년, 기원전 930~810년, 기원전 800~640년이 제시되었다. 이 중 앞선 1군은 겹아가리 토기 관련, 2~3군은 구멍무늬 토기 관련 유구이며, 유적은 2군인 기원전 10세기 전·중반에서 8세기 전반까지가 가장 성행하였으며, 3군에서 점차 소멸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당하동 유적은 단일 구릉에서 환구와 집자리가 함께 확인된 대규모 복합 마을 유적이다. 인접한 김포 양촌 유적과 더불어 중서부 지역 청동기 시대 마을의 다양성과 환구를 중심으로 한 복합 사회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으로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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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충청문화재연구원. (2018). 인천 검단 당하동 유적. https://www.riss.kr/link?id=M149409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