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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신석기 시대 무덤[新石器時代墓]
| 시대=신석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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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24
| 집필자=황철주
}}


==설명==
==설명==

2026년 1월 20일 (화) 12:38 판


신석기 시대 무덤[新石器時代墓]
기본 정보
시대 신석기 시대
지역 한반도 중동부 지역, 남부 지역
관련 정보
유적 춘천 교동 동굴 유적, 울진 후포리 유적, 부산 가덕도 장항 유적
키워드 독무덤, 움무덤, 굽혀묻기, 두벌묻기, 펴묻기, 화장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24
집필자 황철주



설명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 무덤은 조사된 사례도 적을 뿐만 아니라 시기별·지역별로 자료가 편중되어 규명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 대체로 사람 뼈와 함께 신석기 시대 유물이 출토된 집자리구덩이[竪穴]와 같은 유구, 사람 뼈가 없더라도 터진 고리 모양 귀걸이간 돌도끼껴묻거리로 사용되는 유물들이 출토된 장방형 또는 타원형 등의 구덩이, 이러한 구덩이 주변에 위치하고 그와 동일한 구조 및 형태를 보이나 껴묻거리가 없는 유구도 무덤으로서 우선 검토한다. 이러한 무덤은 청동기 시대 무덤보다 구조가 단순하고 다양하지 않으며, 주로 한반도 동해안과 남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한다.

신석기 시대 무덤 유적으로는 대표적으로 고성 문암리 유적, 춘천 교동 동굴 유적, 울진 후포리 유적, 울산 처용리 유적·산하동 유적,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범방 유적·가덕도 장항 유적, 통영 연대도 유적·욕지도 조개더미·산등 조개더미, 여수 안도 조개더미, 진주 상촌리 유적 등이 있다. 이 유적들에서는 신석기 시대 움무덤독무덤, 동굴 무덤 등이 대략 100기 정도 확인된다. 이들은 신석기 시대 조기(기원전 5,000년 전후)에서 후기(기원전 2,500년 전후) 사이에 걸쳐서 만들어졌지만 대부분 신석기 시대 조기에서 전기(기원전 4,000년 전후) 사이에 집중된다. 이 외에도 연구자에 따라 인천 시도 조개더미, 부산 금곡동 율리 조개더미·예안리 유적, 진주 평거동 유적, 의령 마쌍리 유적, 밀양 금천리 유적, 등의 돌더미 유구를 신석기 시대 무덤의 한 형태로 보기도 한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신석기 시대 무덤은 움무덤이며, 고성 문암리 유적, 울진 후포리 유적, 울산 처용리 유적, 부산 범방 유적·가덕도 장항 유적, 통영 욕지도 조개더미·연대도 유적·산등 조개더미, 여수 안도 조개더미에서 확인된다. 다만, 부산 가덕도 장항 유적, 통영 욕지도 유적·연대도 유적의 경우 구덩이를 판 흔적이 분명하지 않아서 지상에 흙이나 돌 등을 덮은 구조로 보기도 한다.

현재까지 가장 대규모로 조성된 부산 가덕도 장항 유적의 사례를 보면, 움무덤은 얕은 구덩이에 주검을 단독으로 안치하고 토기와 간 돌도끼, 조개 팔찌, 옥 장신구 등을 함께 묻는다. 주검 주위나 그 위에 큰 돌을 두거나 작은 자갈, 깨진 토기 조각을 깔아 주검받침[屍床]을 만들기도 한다. 통영 연대도 유적에서는 작은 자갈, 울진 후포리 유적에서는 간 돌도끼를 주검 위에 덮었다. 부산 가덕도 장항 유적의 매장 방식으로는 펴묻기굽혀묻기가 있는데, 장항 유적의 경우 대부분 굽혀묻기 했으나, 신석기 시대에서 보편적인 매장 방법은 펴묻기다. 주검은 1세 전후에서 70대까지 남녀노소 고루 분포하며, 특정 나이나 성별에 치우치지 않는다.

반면, 여러 구의 주검을 같이 묻은 경우도 있는데 40여 명을 두벌묻기 한 울진 후포리 유적이 대표적이다. 부부로 추정되는 남녀가 같이 묻힌 여수 안도 조개더미와 3구의 주검을 안치한 춘천 교동 동굴 유적 역시 이에 해당한다. 두 유적은 러시아 연해주에 위치한 쵸르토비 보로타(Чёртовы ворота) 동굴 유적과 같이 매장용으로 제작된 장대형의 간 돌도끼를 부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외에도 독무덤은 울산 산하동 유적,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가덕도 장항 유적, 진주 상촌리 유적 등에서 7기가 조사되었는데, 이 중 진주 상촌리 유적은 화장 무덤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신석기 시대 무덤 유적은 입지에 따라 크게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째, 춘천 교동 동굴 유적과 진주 상촌리 유적과 같이 생활 공간을 매장 공간으로 활용한 유형이다. 집자리를 무덤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가옥장(家屋葬) 또는 폐옥장(廢屋葬)이라고도 부른다. 둘째, 고성 문암리 유적, 통영 연대도 유적·욕지도 조개더미, 여수 안도 조개더미와 같이 생활 공간 안에 묘역(墓域)을 조성한 유형이다. 이 유형은 마을 안에 조개더미와 같은 생활 공간을 무덤으로 사용하였으나, 일본 조몬(繩文) 시대 유적인 이와테현(岩手県) 니시다(西田) 유적과 같이 마을 안에 무덤 구역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만든 형태는 보이지 않는다. 셋째, 울진 후포리 유적과 울산 처용리 유적, 부산 가덕도 장항 유적과 같이 독립된 공간에 묘역이 조성된 유형이다. 인근에 생활 유적이 위치하거나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대부분 바다에 인접한 곳에 만들어져 있다.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 무덤은 움무덤이 다수를 차지하고, 무덤에 1명만 묻는 단독장(單獨葬)이 보편적이다. 주검을 묻는 방식은 대체로 펴묻기가 주류이지만, 부산 가덕도 장항 유적과 같이 굽혀묻기가 다수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주검의 머리 방향은 대체로 바다를 향하고 있어 당시의 사후 관념을 추정할 수 있다. 주검의 남녀 성비(性比)는 비슷하며, 연령대 또한 유아에서 노인까지 다양하다. 껴묻거리는 토기와 장신구, 생활 용구 및 수렵·어로구 등 생전에 사용했던 도구들이 대다수이며, 특정 개인에게 희귀 물품이나 껴묻거리가 집중되는 현상도 확인되지 않는다. 또한 탁월한 무덤 입지나 공간적 분리 현상도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무덤으로 본 신석기 시대 사회는 남녀노소 간의 차등(差等)이 없었고, 수직적 위계가 아닌 경제·사회·의례적 영역 등에서 수평적인 분화가 진전된 구조인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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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