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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화순 대곡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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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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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연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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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자=조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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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 시기=기원전 3세기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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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 312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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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2 판


대곡리 유적(和順 大谷里遺蹟)
기본 정보
동의어 화순 대곡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 312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무덤유적
키워드 돌무지널무덤, 세형동검, 청동 도끼, 청동 지우개, 고운무늬 거울, 팔주령, 쌍두령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조진선



설명

국보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 312 일원에 위치한다. 유적은 1971년 8월에 민가 창고의 배수로를 만들면서 우연히 발견된 청동 유물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전라남도청 문화공보실에 신고되면서 알려졌다. 이때 신고된 청동 유물은 세형동검(細形銅劍) 3점, 청동 도끼(銅斧) 1점, 청동 지우개(銅鍦) 1점, 고운무늬 거울(精文鏡) 2점, 팔주령(八珠鈴) 2점, 쌍두령(雙頭鈴) 2점으로 총 11점이다. 1971년 12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청동 유물 발견 지점을 조사해서 매장 시설(埋葬施設)을 확인하였다. 2008년에는 국립광주박물관이 청동 유물 출토 지점을 재발굴 조사하였다. 그 결과 매장 시설은 무덤 구덩이를 2단으로 파고 통나무관을 안치한 돌무지널무덤(積石木棺墓)으로 확인되었으며, 무덤 구덩이와 널(木棺) 사이에서 세형동검 2점이 추가로 확인되었다.

유적은 비봉산(해발 258.2m) 기슭에서 이어지는 구릉에 위치한다. 산세는 해발 75~50m에서 완만해져서 해발 47m 정도까지 낮아졌다 다시 높아져 해발 49.8m의 구릉 정상부를 이루고 다시 낮아져서 평지로 이어진다. 유구는 구릉 서쪽 사면에서 조사되었는데, 해발 48m 정도인 지점이다. 이 일대에서는 영산강의 지류인 지석천과 그 주변에 형성된 넓은 평지가 한 눈에 조망된다.

대곡리 돌무지널무덤은 풍화된 암반층을 2단으로 파서 축조되었다. 장축 방향은 동북동-서남서로 등고선과 직교한다. 무덤 구덩이 1단부의 평면 형태는 말각 방형이며, 크기는 길이 3.3m, 너비 2.8m, 최대 깊이 0.85m이다. 남쪽 부분에서 길이 2m, 너비 0.75m 범위의 돌무지(積石)가 확인되는데, 원래는 이러한 돌무지가 무덤 구덩이 1단부 전면에 걸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 구덩이 2단부는 1단부 중앙을 말각 사다리꼴로 파서 만들었으며 크기는 길이 2.33m, 너비 0.98m, 깊이 0.6m이다. 무덤 구덩이 바닥에 있는 회백색 점토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세형동검 2점이 출토되었다. 회백색 점토는 피장자(被葬者)를 안치한 나무널이 여러 과정을 통해 점토로 변화된 것인데, 단면 ‘U’자 모양을 이루고 있어 통나무관의 흔적으로 생각된다. 회백색 점토 아랫부분에서 세형동검 2점이 상하로 겹쳐진 채 출토 되었는데, 통나무널 아래쪽에 부장된 것이다. 무덤 구덩이 2단부에는 긴 벽을 따라 작은 깬돌(割石)들이 듬성듬성 놓여 있는데, 통나무관이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무덤 구덩이와 통나무널 윗부분에는 굵은 사립이 많이 섞인 황갈색 흙을 채우고, 무덤 구덩이 1단부에는 전체적으로 돌무지 시설(積石施設)을 하였다. 이를 통해 보면, 무덤은 구덩이 2단부에 피장자가 안치된 통나무널을 놓고 1단부 전면에 돌무지 시설을 부가한 전형적인 돌무지널무덤이다.

남아 있는 목관재(木棺材)는 길이 0.85m, 너비 0.32m, 두께 0.04m의 크기로 1971년에 청동 유물 발견자가 유구를 훼손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다. 이 목관재는 통나무관의 뚜껑으로 장변 측면에는 하단의 나무널(木棺)과 맞추기 위한 계단상의 턱이 만들어져 있다. 통나무관의 뚜껑은 양쪽 가장자리가 뚫려 있는 형태여서 양쪽 가장자리가 막혀 있는 창원 다호리 유적의 구유형 통나무관 뚜껑과는 다르게 제작되었다. 무덤 구덩이의 규모로 보아 대곡리 나무널의 크기는 길이 1.8m, 지름 0.6m정도로 추정된다. 수종은 굴피나무로 밝혀졌다.

출토 유물은 1971년에 수습된 11점과 2008년에 발굴된 2점을 합하여 모두 6종 13점으로 세형동검 5점, 청동 자귀 1점, 청동 지우개 1점, 고운무늬 거울 2점, 팔주령 2점, 쌍두령 2점이다. 세형동검 5점 가운데 1점은 연마되지 않은 것이고, 3점은 등날이 제2절대까지만 형성된 것이며, 1점은 등날이 제3절대까지 형성되어 있다. 청동 자귀는 어깨가 발달한 것인데, 傳 영암 거푸집 일괄 유물에 비슷한 형태의 자귀 거푸집(鑄型)이 있다. 고운무늬 거울은 2점인데, 큰 것은 거울면이 평면이지만 작은 것은 약간 오목하다. 2점 모두 뒷면에는 해를 형상화한 기하학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대형 거울은 1㎝의 너비에 27줄, 소형 거울은 24줄 정도의 선이 그어져 있어 고운무늬 거울의 우수한 제작 기술을 잘 보여준다. 구리와 주석, 납의 비율은 각각 65.76%, 28.57%, 5.43%와 65.3%, 28.8%, 5.7%여서 서로 유사하다. 세형동검과 비교해 보면, 주석 함량이 상당히 높다. 이와 같이 주석 함량이 높은 것은 고운무늬 거울에서 흔히 보이는 현상으로 거울의 색상을 은색으로 만들어서 사물을 잘 비추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팔주령은 2점이 1조를 이루고 있다. 현재까지 화순 대곡리를 비롯해서 傳 논산, 傳 덕산, 傳 상주 등 4곳에서만 출토 되었다. 이 가운데 대곡리 출토품은 유일하게 출토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쌍두령은 2점이 1조를 이루고 있는데, 화순 대곡리, 傳 논산, 傳 덕산, 傳 상주 출토품은 2점이 1조를 이루고 있지만 함평 초포리 유적에서는 1점만 출토되었다.

대곡리 유적은 통나무관을 사용한 돌무지널무덤의 구조가 처음으로 명확하게 밝혀진 유적이다. 무덤에서는 모두 13점의 청동 유물이 수습되었고 그중 고운무늬 거울 2점은 극히 세밀한 기하학무늬가 새겨져 있어 당시의 우수한 청동기 주조 기술을 잘 보여준다. 팔주령은 우리나라 청동 유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곡리 돌무지널무덤과 출토 유물은 우리나라 청동기 문화가 절정에 달했을 때의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낸다.

대곡리 유적의 연대는 출토 유물로 보아 기원전 3세기로 추정되지만 여러 차례에 걸쳐 측정된 방사성 탄소 연대는 보다 넓게 나타나고 있다. 1972년 한국원자력연구소의 측정 결과는 2560±60 BP, 1989년 일본 나고야 대학의 측정 결과는 2200±90 BP, 2008년 서울대학교 기초과학공동기기원의 측정 결과는 2170±50 BP, 2012년 서울대학교 기초과학공동기기원의 측정 결과는 240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465년)와 247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590년)로 나왔다.

지정정보

구분 지정 종목 지정 명칭 자세히 보기
국가유산 국보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 (和順 大谷里 靑銅器 一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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