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600-3606: 두 판 사이의 차이

한국고고학사전
dkamaster 600-3606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dkamaster 600-3606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2번째 줄: 2번째 줄:


{{유적정보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둥량강 유적(永吉 東梁崗遺蹟)
| 한글표제어=둥량강 유적
| 이칭별칭=융지 둥량강 유적, 영길 동량강 유적
| 이칭별칭=융지 둥량강 유적, 영길 동량강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시대=청동기 시대

2026년 1월 20일 (화) 13:25 판


둥량강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융지 둥량강 유적, 영길 동량강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중국
소재지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린시(吉林市) 융지현(永吉縣) 커우첸진(口前鎭) 훙치촌(紅旗村)에서 동쪽으로 500m 떨어진 둥량강(東梁崗) 산 사면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돌널무덤, 집자리, 석부, 석촉, 반월형 석도, 방추차, 시퇀산 문화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정현승



설명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린시(吉林市) 융지현(永吉縣) 커우첸진(口前鎭) 훙치촌(紅旗村)에서 동쪽으로 500m 떨어진 둥량강(東梁崗) 산 사면에 위치한다. 유적의 서쪽으로 2.5㎞ 거리에 우리강(五里河)이 흐르며, 북쪽으로 란기(藍旗) 샤오퇀산 유적(小團山遗址)과 마주한다. 유적의 면적은 약 5,000㎡이다.

1982년 마을 주민이 채토 과정에서 돌널무덤(石棺墓)을 발견하여 수습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둥량강 유적에서 돌널무덤 7기, 샤오퇀산 유적에서 돌널무덤 5기 등 총 12기가 발굴되었다. 이후 2002년 둥량강 유적 주변에서 건설 공사 중 유구가 확인되어 2차례 수습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다수의 집자리와 무덤이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주로 하천 주변에 밀집하며, 무덤은 유적의 북쪽 구릉에 입지한다.

집자리는 모두 반지하식으로 내부 중앙에는 돌로 만든 화덕 자리가 설치되었다. 바닥에는 불탄 흔적이 남아 있고, 집자리의 양쪽에 출입 시설이 길게 나 있다. 출토 유물은 대부분 굵은 모래가 혼입된 무문 토기정(鼎), 격(鬲), 분(盆), 관(罐), 발(鉢), 완(碗) 등이 있다.

무덤은 모두 돌널무덤으로 양 벽과 바닥 모두 판돌(板石)을 사용하였으며, 무덤칸과 부장칸은 격벽(隔壁)을 두어 구분하였다. 매장 방법은 대부분 단인장이며(單人葬), 합장묘(合葬墓)도 일부 확인된다. 주검은 대부분 바로 펴묻기(仰身直肢)하였고, 일부 화장(火葬)한 예도 확인된다. 출토 유물은 대부분 피장자의 허리와 대퇴부 주변에 놓여 있다. 토기는 장경호, 관, 발, 완이 조합을 이룬다. 석기는 석도, 석부, 분(錛), 석촉 등이 있다. 청동기는 자루에 삼각 거치문(三角鋸齒文)이 새겨진 선형 동부(扇形銅斧)동환식(銅環飾) 등이 출토되었다. 일반적으로 여성 무덤에는 반월형 석도방추차가 남성 무덤에는 석부와 석촉 등이 부장되었다.

유적은 선형 동부와 장경호의 형식을 통해 볼 때, 시퇀산 문화(西團山文化)에 속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연대는 시퇀산 문화 중기 단계로 춘추 후기에서 전국 전기인 기원전 6~5세기경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