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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2026년 1월 20일 (화) 13:14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망흔 토기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관련 정보 | |
| 유적 | 춘천 천전리 유적, 연천 삼거리 유적, 광주 신창동 유적, 진주 상촌리 유적, 진주 대평리 옥방 유적, 진주 대평리 어은 유적, 사천 늑도 유적 |
| 키워드 | 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저장 구덩이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배진성 |
설명
그물 흔적 토기(網痕土器)란 끈을 이용하여 토기 표면을 그물망처럼 감싼 흔적이 남아 있는 토기이다. 끈의 흔적이 확인되는 토기의 종류로는 바리 토기(鉢形土器)도 일부 있지만 주로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에서 확인된다. 크기는 높이 60㎝가 넘는 대형부터 20㎝ 이하의 소형까지 다양하며, 끈의 폭은 1㎝ 정도로 식물의 줄기를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 등 생활 관련 유구에서 출토되는데, 주로 집자리 안의 저장 구덩이나 한쪽 모서리 및 벽면 부근에서 확인된다. 출토 유적은 중부 지역의 춘천 천전리와 연천 삼거리, 호남 지역의 광주 신창동, 영남 지역의 진주 상촌리·옥방·어은 지구 유적 등으로 거의 전국적인 분포를 보인다. 남해안의 사천 늑도 유적에서는 독무덤(甕棺墓)으로 사용된 대형의 항아리에 끈 흔적이 있는데, 무덤으로는 유일한 사례이다.
토기에 씌운 그물망의 기능에 대해서는 다른 물체와의 접촉으로부터 토기를 보호하는 완충의 기능, 끈을 막대 등에 걸어 이동을 편리하게 하기 위한 기능 등이 추정된다. 용도에 대해 항아리 모양 토기는 입구가 좁기 때문에 주로 액체를 담는 용기로 생각되어 왔다. 대형의 항아리에 물을 담아 이동하기 위해서는 그물망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유적에서 출토되는 항아리 가운데 끈 흔적이 있는 것은 일부분이기 때문에 그물 흔적 토기는 특수한 용도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는 술을 담는 술 항아리였다는 견해인데, 고대 이집트 및 중국의 회화 자료에 이러한 사례가 있어 흥미롭다. 표면에 그물망을 씌운 용기는 비단 청동기 시대에 한정되지 않고 삼국 시대는 물론 그 이후 시대에도 계속해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