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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리 어은 유적(晋州 大坪里漁隱遺蹟)

한국고고학사전
(진주대평리어은유적에서 넘어옴)


대평리 어은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진주 대평리 어은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569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돌널무덤, 돌더미, 야외 화덕 자리, 도랑, 경작 유구, 고인돌, 구멍무늬 토기, 미사리 유형, 흔암리, 역삼동 유형, 송국리 유형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송영진



설명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569 일원에 위치한다. 남강댐 보강 공사에 따른 하도 개량 사업으로 1997~1999년까지 2개 지구를 2개 기관이 조사 하였다. 1지구는 경남대학교박물관이 조사하여, 집자리 124기, 구덩이 28기, 돌널무덤(石棺墓) 23기, 돌더미(集石) 27기, 야외 화덕 자리(野外爐址) 34기, 도랑(溝) 1기, 경작 유구(耕作遺構) 12,000㎡ 등을 확인하였다. 2지구는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에서 조사하여, 집자리 50기, 구덩이 32기, 고인돌 2기, 돌널무덤(石棺墓) 9기, 돌더미(集石) 42기, 야외 화덕 자리(野外爐址) 33기 등을 확인하였다. 유적은 동남쪽에서 서북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넓은 충적 대지 위에 입지한다. 1지구 서쪽에 남북 방향의 긴 이 형성되어 있고, 밭의 서쪽에 소규모 마을이 위치한다. 대부분의 마을 유구는 밭의 동쪽에 남북 방향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으며, 남쪽으로 옥방 5지구 유적으로 이어진다.

청동기 시대 가장 이른 시기의 대형 장방형 또는 방형 집자리는 1지구에서만 15기 내외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대부분 동서 방향이지만, 87호는 남북 방향으로 축조되었다. 114호 집자리는 길이 약 20m로 가장 규모가 크며, 돌 깐 돌 두름식 화덕 자리(石床圍石式爐址)와 2열의 기둥 받침돌이 설치되었다. 이 집자리에서는 돋을띠 골무늬 토기(刻目突帶文土器), 꼭지 모양 돋을띠무늬 토기(瘤狀突帶文土器), 겹아가리 토기(二重口緣土器), 겹아가리 톱날 점열무늬 토기(二重口緣鋸齒点列文土器), 장방형 돌칼(長方形石刀) 등이 출토되었다.

다음 시기의 긴 방형 집자리는 1·2지구에서 넓은 간격을 두고 총 10기가 확인되었다. 길이 방향은 대부분 동서 방향이지만, 1지구 80호 집자리만 남북 방향으로 축조되었다. 중앙에 1~3개의 화덕 자리가 배치되었고, 벽면을 따라 기둥 구멍이 설치되었다. 유물은 겹아가리 짧은 빗금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口脣刻目孔列土器), 가지무늬 토기(彩文土器), 긴 목 항아리(長頸壺), 긴 배 모양 돌칼(長舟形石刀), 턱 슴베 간 돌살촉(二段莖式石鏃), 구멍이 뚫린 간 돌검 편, 숫돌(砥石) 등이 출토되었다.

소형의 장방형 집자리는 약 60기 내외로, 길이 방향은 대부분 동서 방향이며, 남북 방향은 소수다. 내부 시설은 바닥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되었으며, 숫돌과 돌부스러기 등이 다량 확인되었다. 구덩이 양 측에는 기둥 구멍이 설치된 경우도 있다. 유물은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 겹아가리 토기, 붉은 간 토기, 납작 슴베 간 돌살촉(平根式石鏃), 기둥 모양 외날 돌자귀(柱狀片刃石斧) 등이 출토되었다. 1지구 54호→55호, 2지구 32호→31호 중복 관계와 출토 유물 등을 통해 볼 때, 소형 장방형 집자리가 방형 집자리보다 이른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방형 집자리는 약 60기가 확인되었는데, 기둥 축 방향은 대부분 남북 방향이다. 바닥에는 불 다짐 처리한 것도 확인되며, 중앙부에는 타원형 구덩이와 양측으로 기둥 구멍이 배치되었다. 기둥 구멍은 타원형 구덩이 바깥에 있는 경우와 안쪽에 있는 경우로 구분된다. 구덩이에서는 숫돌과 돌가루, 돌부스러기 등이 다량 확인되어 작업 공간으로 판단된다. 유물은 민무늬 토기와 붉은 간 토기, 부리 모양 석기(猪形石器), 슴베 간 돌살촉(一段莖式石鏃), 그물추, 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다.

구덩이는 원형, 타원형, 장방형, 부정형, 도랑형으로 구분된다. 내부에서는 불탄 흙, 목탄, 토기 편, 숫돌 편 등이 출토되었다. 도랑 모양의 구덩이에서는 다량의 목탄, 불탄 흙과 함께 완형의 토기와 석기가 출토되었다. 구덩이는 형태와 내부 양상에 따라 저장용, 토기 가마, 제사 유구, 폐기장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돌더미는 대부분 부정형이다. 단순히 자갈돌을 모아 둔 것과 지름 1m, 깊이 0.2m 내외의 원형의 구덩이를 파고 자갈돌, 숫돌, 토기 등을 모아 둔 것이 있다. 이를 통해 폐기장, 작업장, 의례용 등의 시설로 추정된다. 야외 화덕 자리는 지름 0.5~1m 내외로, 내부에서는 불탄 흙과 목탄, 토기 편 등이 출토되었다. 집자리 근처에 위치하는 경우나 유구 내에서 온전한 형태의 바리와 붉은 간 토기 등이 출토되는 것에서 취사와 관련된 생활 시설로 보기도 한다.

고인돌은 홍수로 유실되어 덮개돌(上石)만 남아 있다. 돌널무덤은 집자리보다 낮은 구릉의 사면과 밭의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남북 방향으로 열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돌널의 길이 방향은 대부분 남북 방향이다. 판돌(板石)과 깬돌(割石)을 이용하여 네 벽과 바닥, 뚜껑돌을 축조하였다. 1지구 9·10·16호 무덤에서는 구멍무늬 토기, 겹아가리 토기, 가지무늬 토기, 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등 이른 시기의 유물이 출토되었고, 1지구 1·5·23호, 2지구 3·4호에서는 이빨과 사람 뼈가 소량 출토되었다.

밭은 1지구 제방 배후면의 경사를 따라 형성되어 있는데, 강의 흐름과 직교되는 방향으로 고랑이 형성되어 있다. 밭의 규모는 남북 약 300m이며, 동서 40m 규모이다. 밭의 너비는 남쪽이 넓고 북쪽으로 가면서 점차 좁아지는데, 고랑의 길이는 일정하지 않다. 고랑 너비 0.35m 내외, 두둑 너비 0.5m 내외, 깊이 0.08~0.1m이다. 밭의 북동쪽 일부 구간에는 지름 0.25m, 깊이 0.05m 내외의 작은 구덩이 수백 개가 확인되었다. 밭 내부에서는 구덩이와 돌더미가 확인되었고, 동쪽 가장자리를 따라서 무덤이 배치되어 있다.

유적의 시기는 미사리 유형 단계, 흔암리·역삼동 유형 단계, 송국리 유형 단계까지 전 시기에 해당하며, 소형의 장방형 집자리와 같이 흔암리·역삼동 유형과 송국리 유형 단계 사이의 시기로 볼 수 있는 자료도 확인되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1지구 104호 집자리 출토 탄화미는 285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02년), 탄화조는 283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979~997년)로 확인되었다. 어은 유적은 주거와 생산 및 무덤 시설 등이 복합되어 있어 당시의 문화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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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1997년 01 월 06일~1998년 07월 29일 진주 대평리 어은2지구 선사유적Ⅰ 2001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
발굴조사 1997년 01 월 06일~1998년 07월 29일 진주 남강 어은2지구 선사유적Ⅱ 2002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
발굴조사 1997년~1999년 진주 대평리 어은1지구 선사유적Ⅰ 2019 경남대학교박물관
발굴조사 1997년~1999년 진주 대평리 어은1지구 선사유적Ⅱ 2019 경남대학교박물관
발굴조사 1997년~1999년 진주 대평리 어은1지구 선사유적Ⅲ 2019 경남대학교 박물관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