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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27 판
| 기본 정보 | |
|---|---|
| 시대 | 신석기 시대 |
| 관련 정보 | |
| 유적 | 제천 점말 동굴 유적 |
| 키워드 | 바위 그늘 유적, 어로 활동, 채집 활동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24 |
| 집필자 | 구자진 |
설명
동굴 유적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공동(空洞) 중 과거에 인간의 행위가 이루어졌던 곳이다. 한반도에는 평남․황해 지역과 강원·충청 지역을 중심으로 석회암 용식 동굴에 많이 분포한다.
공동 중 규모 면에서 깊이가 5m 이상 되고, 입구의 폭은 그보다 작은 것이 동굴로 인정된다. 동굴은 암석 종류나 생성 과정에서의 지질학적 또는 화학적 작용의 차이에 따라 분류되는데, 바위 그늘도 넓은 의미에서 동굴에 포함된다.
동굴의 형성 원인은 다양하다. 지하의 일부분이 함몰되어 생기기도 하고, 석회암 지역에서 석회암의 갈라진 틈이나 층리면에 지하수, 빗물 등이 흘러 내려가면서 통로가 커져서 형성된 경우도 있다. 용암 동굴처럼 화산 작용 시에 용암이 산의 경사면을 흘러내리는 과정에서 형성되기도 한다. 또한 바닷가의 절벽에서는 해식(海蝕) 동굴, 강가에서는 하식(河蝕) 동굴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동굴은 인간이나 동물의 거주지로 이용되다가, 간빙기와 빙기를 거치면서 퇴적 작용이 왕성하게 일어나 내부 공간이 축소되고 입구도 좁아진다. 그 결과 대부분의 동굴 입구에는 사람이나 동물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틈만 남게 된다.
동굴은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일찍부터 주거, 피난 등을 위한 생활 공간으로 활용되었는데, 석회암 동굴의 화학적 특성상 여러 시기의 생활 흔적 가운데 유기질의 유물, 특히 각종 동물 뼈와 뼈 도구가 매우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는 상원 검은모루 동굴 유적과 제천 점말 동굴 유적이 동굴 발굴 조사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신석기 시대 유적으로는 의주 미송리 유적, 평양 만달리 동굴 유적, 상원 용곡동 유적, 춘천 교동 동굴 유적, 영월 연당 쌍굴 유적·공기 2굴 유적, 정선 매둔 동굴 유적, 제천 점말 동굴 유적, 단양 금굴 유적, 제주 신천리 한못궤 유적·월령리 한드르 동굴 유적·고산리 동굴 유적 등지에서 보고되었다. 최근 강원도 일대의 석회암 동굴과 제주도의 용암 동굴에서 나타나는 신석기 시대의 흔적들을 고려한다면 신석기 시대 동굴 유적의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의 신석기 시대 동굴 유적은 신석기 전기부터 말기까지 사용되었으며, 시기에 따라 거주 기간 및 활용 목적은 달랐던 것으로 판단된다. 석회암 동굴 유적은 대부분 해발 고도 약 200~400m 내외의 비교적 높은 산악 지대에 분포한다. 춘천 교동 동굴 유적과 단양 금굴 유적만 해발 고도가 100m 내외인 곳에 위치하는데, 그중 교동 동굴의 경우 화강암반의 지역에 인공적으로 조성된 동굴 유적으로 다른 석회암 동굴 유적과는 구별된다. 고양 고양동 호랑이굴 역시 흑운모 편마암 지역에 형성된 동굴 유적으로, 다른 석회암 동굴 유적에 비해 비교적 낮은 해발 고도 168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주변 지역의 하천이나 평지에서 접근하기 쉬운 동굴을 선택했다. 하천 근처의 동굴을 선택한 점은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생계 활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부분 신석기 시대 동굴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는 어로 활동 관련 석기(그물추)나 뼈뿔연장(낚시) 등이 출토되는데, 이는 안정적인 식량 확보를 위한 매우 중요한 생계 도구이었을 것이다. 또한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햇볕이 잘 들고, 굴 앞쪽이 비교적 넓게 트여 있어 조망이 좋으며, 가까운 곳에는 하천이 흐르는 남향 동굴을 선호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외부에서 동굴 안쪽을 바라보았을 때의 시야를 고려하여 동굴을 선택했을 가능성도 있다.
동굴을 가장 활발하게 거주 공간으로 활용하였던 시기는 신석기 시대 말기로 판단된다. 출토 유물로 보아 이 시기에는 주로 사냥, 채집, 어로로 먹거리를 확보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동굴 유적은 무덤이나 의례 공간으로도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신석기 시대 동굴 유적은 바닷가를 비롯한 주변 지역과의 교류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바다 조개류와 장신구(팔찌), 작살 및 낚시를 통해 먼 거리에 있는 해안 거주 집단과의 교류 및 교역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동굴 유적은 겨울나기에 좋다는 특징이 있으며, 청동기 시대에도 계속 거주지로 사용되었다. 동굴에서 출토된 토기를 통해서도 인류가 긴 시간 동안 동굴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미지
참고문헌
- 구자진. (2023). 신석기시대의 동굴과 바위그늘 유적 연구. 한강고고, 16. 7-44.
- 김주용. (2023). 강원지역 동굴과 정선 매둔 동굴의 형성. 연세대학교 박물관(편저), 정선 매둔 동굴유적의 학술 성과와 문화적 가치: 정선 매둔 동굴유적 문화재 지정을 위한 학술세미나 자료집.
- 문화재청, 한국동굴연구소. (2019). 강원도 동굴 기초조사 보고서Ⅸ. https://www.khs.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nttId=76345&bbsId=BBSMSTR_1021&pageIndex=1&mn=NS_03_08_01
- 신숙정. (2004). 우리나라 신석기·청동기시대 동굴 및 바위그늘 유적 연구. 연세대학교 박물관(편저), 우리나라 선사시대의 동굴유적과 문화: 추계 학술세미나 자료집.
- 홍시환, 석동일. (1997). 한국의 동굴. 대원사. https://www.riss.kr/link?id=M98543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