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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효자동2가 유적(全州 孝子洞2街遺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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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2가 1363·1364·1382 일원
|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2가 1363·1364·1382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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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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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연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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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설명==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2가 1363·1364·1382 일원에 위치한다. 전주 효천지구 택지 조성사업에 앞서 발굴 조사되었다. 이 일대는 삼천산(해발 108.1m)에서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낮은 구릉과 구릉 사이의 곡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적은 동쪽으로 삼천천, 북쪽으로 중복천이 인접하고 삼천천 서변의 중앙에 곡간을 둔 ‘U’자 모양의 구릉지에 자리한다.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는데 청동기 시대 유구는 [[집자리|집자리]] 25기·[[구덩이|구덩이]] 6기·[[굴립주건물|기둥 건물터(掘立柱建物址)]]1기, [[석관묘|돌널무덤(石棺墓)]] 1기· [[석개토광묘|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4기· [[토광묘|움무덤(土壙墓)]] 4기가 있다. 조사 구역은 신주, 함대 지점으로 구분되며 구릉 정상부의 주능선과 경사 변환점에 주로 [[취락|취락]]에서 떨어진 구릉 중턱이나 말단부에는 무덤이 입지한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2가 1363·1364·1382 일원에 위치한다. 전주 효천지구 택지 조성사업에 앞서 발굴 조사되었다. 이 일대는 삼천산(해발 108.1m)에서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낮은 구릉과 구릉 사이의 곡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적은 동쪽으로 삼천천, 북쪽으로 중복천이 인접하고 삼천천 서변의 중앙에 곡간을 둔 ‘U’자 모양의 구릉지에 자리한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는데 청동기 시대 유구는 [[집자리|집자리]] 25기·[[구덩이|구덩이]] 6기·[[굴립주건물|기둥 건물터(掘立柱建物址)]]1기,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1기·[[돌뚜껑움무덤|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4기·[[움무덤|움무덤(土壙墓)]] 4기가 있다. 조사 구역은 신주, 함대 지점으로 구분되며 구릉 정상부의 주능선과 경사 변환점에 주로 취락에서 떨어진 구릉 중턱이나 말단부에는 무덤이 입지한다.


집자리는 총 25기로 대체로 해발 36~65m 사이의 구릉 정상부 및 사면부에 2~6기가 무리를 이루는 작은 규모의 취락으로 볼 수 있다. 조사된 집자리는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으로 평면 형태는 방형 1기를 제외하고 모두 원형이다. 타원형 구덩이 내부 양쪽 가장자리에 기둥 구멍이 있는 형식들이다. 집자리는 신주 Ⅰ지점에서 6기(방형 1기, 원형 5기), 함대 Ⅰ에서 3기, 함대 Ⅲ에서 5기, 함대 Ⅴ에서 5기, 함대 Ⅶ에서 1기, 함대 Ⅷ에서 1기, 함대 Ⅸ에서 4기가 확인되었다. 면적은 24㎡ 내외가 대부분이며 15㎡ 미만의 소형은 3기(신주 Ⅰ-1호, 함대Ⅰ-1호, 함대 Ⅴ-4호), 30㎡를 초과하는 대형은 1기(함대 Ⅲ- 3호)이다. 내부 시설은 타원형 구덩이 이외에 [[기둥구멍|기둥 구멍]], [[주구|벽 도랑(壁溝)]] 등이 확인된다. 취락의 배치 양상은 신주와 함대 지점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신주에서는 구릉의 주능선을 따라 열을 지어 배치된 반면, 함대에서는 구릉 정상부의 [[빈공간|빈 공간(空地)]]을 두고 둥굴게 배치(環狀配置)되어 있다.
집자리는 총 25기로 대체로 해발 36~65m 사이의 구릉 정상부 및 사면부에 2~6기가 무리를 이루는 작은 규모의 취락으로 볼 수 있다. 조사된 집자리는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으로 평면 형태는 방형 1기를 제외하고 모두 원형이다. 타원형 구덩이 내부 양쪽 가장자리에 기둥 구멍이 있는 형식들이다. 집자리는 신주 Ⅰ지점에서 6기(방형 1기, 원형 5기), 함대 Ⅰ에서 3기, 함대 Ⅲ에서 5기, 함대 Ⅴ에서 5기, 함대 Ⅶ에서 1기, 함대 Ⅷ에서 1기, 함대 Ⅸ에서 4기가 확인되었다. 면적은 24㎡ 내외가 대부분이며 15㎡ 미만의 소형은 3기(신주 Ⅰ-1호, 함대Ⅰ-1호, 함대 Ⅴ-4호), 30㎡를 초과하는 대형은 1기(함대 Ⅲ- 3호)이다. 내부 시설은 타원형 구덩이 이외에 [[기둥구멍|기둥 구멍]], 벽 도랑(壁溝) 등이 확인된다. 취락의 배치 양상은 신주와 함대 지점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신주에서는 구릉의 주능선을 따라 열을 지어 배치된 반면, 함대에서는 구릉 정상부의 빈 공간(空地)을 두고 둥굴게 배치(環狀配置)되어 있다.


유물은 [[항아리|항아리(壺)]],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자루간돌검|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반달돌칼|반달 돌칼]], [[홈자귀|홈자귀(有溝石斧)]], [[갈돌|갈돌(碾石)]], [[간돌살촉|간 돌살촉]], [[돌창|돌창(石槍)]], [[가락바퀴|가락바퀴]], [[합인석부|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미완성 석기, [[숫돌|숫돌(砥石)]], [[부리모양석기|부리 모양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유물은 항아리(壺),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자루간돌검|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반달돌칼|반달 돌칼]], [[홈자귀|홈자귀(有溝石斧)]], [[갈돌|갈돌(碾石)]], [[간돌살촉|간 돌살촉]], [[돌창|돌창(石槍)]], [[가락바퀴|가락바퀴]], [[조갯날돌도끼|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미완성 석기, [[숫돌|숫돌(砥石)]], [[부리모양석기|부리 모양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돌널무덤은 함대 Ⅶ에서 1기(1호)가 조사되었다. 해발 40.9m 내외의 구릉 말단부에서 조성되었으며, 축조 방법은 깬돌(割石)과 판돌(板石)을 섞어서 축조하였다. 동쪽 긴 벽과 북쪽 짧은 벽은 판돌을 이용하여 세로 쌓기하고, 서쪽 긴 벽과 남쪽 짧은 벽은 깬돌로 눕혀 쌓았다. 유물은 서쪽 긴 벽에 인접하여 [[자루간돌검|자루 간 돌검]] 1점이 출토되었다. 돌뚜껑움무덤은 함대 Ⅳ 3기(1~3호)·Ⅶ 1기(2호) 등 4기가 조사되었다. 함대 Ⅳ은 해발 56.8~58.3m의 주능선에 중복 없이 조성된 반면, 함대 Ⅶ은 해발 40.9m 내외의 말단부에 돌널무덤과 연접하여 조성되었다. 돌뚜껑움무덤은 바닥에 민무늬 토기를 깨뜨려(破碎) 깔거나(함대 Ⅶ-2호),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함대 Ⅳ-1~3호)하였다. [[묘광|무덤 구덩이(墓壙)]]는 굴광에 따라 1단 굴광과 2단 굴광으로 구분되며 [[뚜껑돌|뚜껑돌(蓋石)]]은 대부분 석재를 이용하여 덮고 있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돌널무덤은 함대 Ⅶ에서 1기(1호)가 조사되었다. 해발 40.9m 내외의 구릉 말단부에서 조성되었으며, 축조 방법은 깬돌(割石)과 판돌(板石)을 섞어서 축조하였다. 동쪽 긴 벽과 북쪽 짧은 벽은 판돌을 이용하여 세로 쌓기하고, 서쪽 긴 벽과 남쪽 짧은 벽은 깬돌로 눕혀 쌓았다. 유물은 서쪽 긴 벽에 인접하여 자루 간 돌검 1점이 출토되었다. 돌뚜껑움무덤은 함대 Ⅳ 3기(1~3호)·Ⅶ 1기(2호) 등 4기가 조사되었다. 함대 Ⅳ은 해발 56.8~58.3m의 주능선에 중복 없이 조성된 반면, 함대 Ⅶ은 해발 40.9m 내외의 말단부에 돌널무덤과 연접하여 조성되었다. 돌뚜껑움무덤은 바닥에 민무늬 토기를 깨뜨려(破碎) 깔거나(함대 Ⅶ-2호),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함대 Ⅳ-1~3호)하였다. 무덤 구덩이(墓壙)는 굴광에 따라 1단 굴광과 2단 굴광으로 구분되며 [[뚜껑돌|뚜껑돌(蓋石)]]은 대부분 석재를 이용하여 덮고 있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움무덤은 함대 Ⅳ(4·5호) 2기·Ⅴ(1·2호) 2기 등 4기가 조사되었다. 함대 Ⅳ는 등고선과 평행하게 조성된 반면, 함대 Ⅴ는 등고선과 직교하게 조성되었다. 무덤 구덩이는 1단 굴광으로 추정되며, 바닥에는 가장자리를 따라 깬돌이 잔존하는 것으로 보아 [[목관|나무널(木棺)]]을 사용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움무덤은 함대 Ⅳ(4·5호) 2기·Ⅴ(1·2호) 2기 등 4기가 조사되었다. 함대 Ⅳ는 등고선과 평행하게 조성된 반면, 함대 Ⅴ는 등고선과 직교하게 조성되었다. 무덤 구덩이는 1단 굴광으로 추정되며, 바닥에는 가장자리를 따라 깬돌이 잔존하는 것으로 보아 나무널(木棺)을 사용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집자리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2480±40 BP(신주 Ⅰ-3호), 2460±40 BP(함대 Ⅲ-3호), 2550±40 BP(함대 Ⅸ-1호), 2450±40 BP(함대 Ⅸ-3호) 등의 결과가 산출되었다. 연대의 범위는 2550~2450 BP로 판단되는데 이러한 결과는 지금까지 호남 지역 송국리 단계 취락의 절대 연대인 2700~2400 BP에 부합되어 효자동2가 유적은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 단계의 취락으로 추정된다.
집자리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2480±40 BP(신주 Ⅰ-3호), 2460±40 BP(함대 Ⅲ-3호), 2550±40 BP(함대 Ⅸ-1호), 2450±40 BP(함대 Ⅸ-3호) 등의 결과가 산출되었다. 연대의 범위는 2550~2450 BP로 판단되는데 이러한 결과는 지금까지 호남 지역 송국리 단계 취락의 절대 연대인 2700~2400 BP에 부합되어 효자동2가 유적은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 단계의 취락으로 추정된다.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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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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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2017년 || 전주 효자동 복합유적 || 2018 || 전주 효자동 복합유적
|}
==참고문헌==
*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2016). <i>전주효천 도시개발사업 문화재 시굴·정밀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i>.
*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2018). <i>전주 효자동 복합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5077731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7 기준 최신판


효자동2가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전주 효자동2가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2가 1363·1364·1382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돌널무덤, 돌뚜껑움무덤, 움무덤, 송국리식 집자리, 붉은 간 토기, 민무늬 토기, 자루 간 돌검, 반달 돌칼, 홈자귀, 갈돌, 간 돌살촉, 가락바퀴, 조갯날 돌도끼, 숫돌, 부리 모양 석기, 송국리 문화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양영주



설명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2가 1363·1364·1382 일원에 위치한다. 전주 효천지구 택지 조성사업에 앞서 발굴 조사되었다. 이 일대는 삼천산(해발 108.1m)에서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낮은 구릉과 구릉 사이의 곡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적은 동쪽으로 삼천천, 북쪽으로 중복천이 인접하고 삼천천 서변의 중앙에 곡간을 둔 ‘U’자 모양의 구릉지에 자리한다.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는데 청동기 시대 유구는 집자리 25기·구덩이 6기·기둥 건물터(掘立柱建物址)1기, 돌널무덤(石棺墓) 1기·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4기·움무덤(土壙墓) 4기가 있다. 조사 구역은 신주, 함대 지점으로 구분되며 구릉 정상부의 주능선과 경사 변환점에 주로 취락에서 떨어진 구릉 중턱이나 말단부에는 무덤이 입지한다.

집자리는 총 25기로 대체로 해발 36~65m 사이의 구릉 정상부 및 사면부에 2~6기가 무리를 이루는 작은 규모의 취락으로 볼 수 있다. 조사된 집자리는 송국리식으로 평면 형태는 방형 1기를 제외하고 모두 원형이다. 타원형 구덩이 내부 양쪽 가장자리에 기둥 구멍이 있는 형식들이다. 집자리는 신주 Ⅰ지점에서 6기(방형 1기, 원형 5기), 함대 Ⅰ에서 3기, 함대 Ⅲ에서 5기, 함대 Ⅴ에서 5기, 함대 Ⅶ에서 1기, 함대 Ⅷ에서 1기, 함대 Ⅸ에서 4기가 확인되었다. 면적은 24㎡ 내외가 대부분이며 15㎡ 미만의 소형은 3기(신주 Ⅰ-1호, 함대Ⅰ-1호, 함대 Ⅴ-4호), 30㎡를 초과하는 대형은 1기(함대 Ⅲ- 3호)이다. 내부 시설은 타원형 구덩이 이외에 기둥 구멍, 벽 도랑(壁溝) 등이 확인된다. 취락의 배치 양상은 신주와 함대 지점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신주에서는 구릉의 주능선을 따라 열을 지어 배치된 반면, 함대에서는 구릉 정상부의 빈 공간(空地)을 두고 둥굴게 배치(環狀配置)되어 있다.

유물은 항아리(壺), 붉은 간 토기, 민무늬 토기, 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반달 돌칼, 홈자귀(有溝石斧), 갈돌(碾石), 간 돌살촉, 돌창(石槍), 가락바퀴,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미완성 석기, 숫돌(砥石), 부리 모양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돌널무덤은 함대 Ⅶ에서 1기(1호)가 조사되었다. 해발 40.9m 내외의 구릉 말단부에서 조성되었으며, 축조 방법은 깬돌(割石)과 판돌(板石)을 섞어서 축조하였다. 동쪽 긴 벽과 북쪽 짧은 벽은 판돌을 이용하여 세로 쌓기하고, 서쪽 긴 벽과 남쪽 짧은 벽은 깬돌로 눕혀 쌓았다. 유물은 서쪽 긴 벽에 인접하여 자루 간 돌검 1점이 출토되었다. 돌뚜껑움무덤은 함대 Ⅳ 3기(1~3호)·Ⅶ 1기(2호) 등 4기가 조사되었다. 함대 Ⅳ은 해발 56.8~58.3m의 주능선에 중복 없이 조성된 반면, 함대 Ⅶ은 해발 40.9m 내외의 말단부에 돌널무덤과 연접하여 조성되었다. 돌뚜껑움무덤은 바닥에 민무늬 토기를 깨뜨려(破碎) 깔거나(함대 Ⅶ-2호),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함대 Ⅳ-1~3호)하였다. 무덤 구덩이(墓壙)는 굴광에 따라 1단 굴광과 2단 굴광으로 구분되며 뚜껑돌(蓋石)은 대부분 석재를 이용하여 덮고 있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움무덤은 함대 Ⅳ(4·5호) 2기·Ⅴ(1·2호) 2기 등 4기가 조사되었다. 함대 Ⅳ는 등고선과 평행하게 조성된 반면, 함대 Ⅴ는 등고선과 직교하게 조성되었다. 무덤 구덩이는 1단 굴광으로 추정되며, 바닥에는 가장자리를 따라 깬돌이 잔존하는 것으로 보아 나무널(木棺)을 사용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집자리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2480±40 BP(신주 Ⅰ-3호), 2460±40 BP(함대 Ⅲ-3호), 2550±40 BP(함대 Ⅸ-1호), 2450±40 BP(함대 Ⅸ-3호) 등의 결과가 산출되었다. 연대의 범위는 2550~2450 BP로 판단되는데 이러한 결과는 지금까지 호남 지역 송국리 단계 취락의 절대 연대인 2700~2400 BP에 부합되어 효자동2가 유적은 송국리 문화 단계의 취락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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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17년 전주 효자동 복합유적 2018 전주 효자동 복합유적

참고문헌

  •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2016). 전주효천 도시개발사업 문화재 시굴·정밀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
  •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2018). 전주 효자동 복합유적. https://www.riss.kr/link?id=M15077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