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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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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리 유형 분포권은 앞선 단계의 [[흔암리유형|흔암리 유형]]의 전통이 강하게 이어지며 충적지가 발달하지 않은 지형적인 특징으로 인해, 수렵과 어로의 비중이 송국리 문화 분포권에 비해 높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검단리 유형 분포권은 앞선 단계의 [[흔암리유형|흔암리 유형]]의 전통이 강하게 이어지며 충적지가 발달하지 않은 지형적인 특징으로 인해, 수렵과 어로의 비중이 송국리 문화 분포권에 비해 높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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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이수홍. (2012). <i>청동기시대 검단리유형의 고고학적 연구</i>. (박사 학위 논문). 부산대학교.  https://www.riss.kr/link?id=T12668828


[[분류: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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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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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16 기준 최신판


검단리 유형
기본 정보
시대 청동기 시대
지역 한반도 동남해안 지역
관련 정보
유적 울주 검단리 유적
키워드 검단리식 집자리, 검단리식 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수홍



설명

검단리 유형은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에 송국리 유형이 분포하지 않는 울산, 경주, 포항 등 동남해안 지역에 분포한 문화 유형이다. 발굴 자료와 관련 연구가 증가하면서 송국리 문화가 한반도 남부 지역 전체에 분포 하지 않고, 비송국리 문화권에는 지역적 특징을 갖춘 문화 유형이 곳곳에 분포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강원 영서 지역의 특징적인 문화 유형을 천전리 유형(북한강 유형)이라 하고 한강 하류 지역을 당동리 유형(역삼동 Ⅱ유형)이라고 하였으나 당동리 유형이라는 용어는 학계에서 많이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검단리 유형의 집자리는 방형, 장방형의 평면 형태에 한 개의 무시설식 화덕 자리가 설치된 검단리식 집자리(울산식 집자리)이다. 유적은 대부분이 구릉에 분포하는데 배수를 위해 집 안에는 벽 도랑(壁溝)이, 집 밖한쪽 모서리에 벽 도랑과 연결되는 배수구가 설치된다. 무덤은 화장(火葬)이나 세골장(洗骨葬)이 이루어진것으로 추정 되는 작은 돌널무덤(石棺墓)위석형(圍石形)의 고인돌이 축조되며 무덤의 숫자가 다른 지역에 비해 적은 것이 특징이다. 구성원이 사망했을 때 그 집에 바로 매장한 가옥장(家屋葬)이 유행했다는 견해가 있다. 충적지가 발달하지 않은 지형적인 특징으로 인해 계곡부를 이용하여 소규모의 계단식, 바둑판식 논을 조성하였다.

토기는 아가리 부분 아래에 낟알무늬를 시문한 깊은 바리인 검단리식 토기이다. 외에도 사냥한 짐승을 해체하는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ᄀ’자 돌칼과 큰 물고기를 잡는데 이용한 대형의 원통형 그물추(漁網錘)가 많이 출토된다.

검단리 유형 분포권은 앞선 단계의 흔암리 유형의 전통이 강하게 이어지며 충적지가 발달하지 않은 지형적인 특징으로 인해, 수렵과 어로의 비중이 송국리 문화 분포권에 비해 높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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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