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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1일 (수) 12:03 기준 최신판


동아시아의 고토기 문화
기본 정보
시대 신석기 시대
관련 정보
유적 카바롭스크 가샤 유적, 하바롭스크 곤차르카 유적, 자바이칼 우스티카렌가 Ⅶ 유적, 길림 허우타오무가 유적, 아오모리 오다이야마모토 유적, 연해주 우스티노브카-3 유적, 카바롭스크 훔미 유적
키워드 중국의 신석기 문화, 러시아 아무르강 하류의 신석기 문화, 일본의 신석기 문화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24
집필자 김재윤



설명

유라시아 전체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가 출토되는 유적이 위치한 곳은 중국, 러시아, 일본이다. 중국에서는 창장강(長江) 유역, 러시아에서는 아무르강 하류, 동시베리아, 일본에서는 혼슈(本州) 북부 지역 등에 위치한다. 그중에서도 러시아 아무르강 하류에서 가장 많은 유적이 확인되었다. 지역마다 세부적인 연대 차이가 있지만, 늦어도 16,000 BP 무렵에는 각지에서 토기가 출현하였다. 현재의 자료를 기준으로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는 플라이스토세 말에 해당하는 창장강 이남에서 확인된다.

1980년대 초 시베리아, 아무르강 하류에서 유적이 발굴되면서 러시아 내에서 고토기가 처음 출토되었다. 1994년에는 연해주 우스티놉카(Устиновка)-3 유적에서 고토기가 확인되었고, 이듬해인 1995년 일본에서 동아시아 토기의 기원에 대한 국제 심포지엄이 열려 한국, 러시아, 중국, 미국 등 다양한 국가의 연구자들이 참가하였다. 이후 여러 연구에서 위의 세 지점에서 각기 다른 형태의 토기가 발생했다고 지적하였다.

아무르강 하류에서는 구석기 시대 돌날 제작 기법이 이어지는데, 이를 고려하면 구석기 시대의 연속선상에서 신석기 시대가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최후 빙하 극성기에 토기가 출현했지만 새로운 기술이 수렵 채집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는 불분명하다는 의견이 많다. 이와는 달리 일본 북부에서 확인되는 오다이 야마모토(大平山元) I 유적 토기는 대형 찌르개와 함께 인접한 지역으로 들어왔다는 견해가 있으나 논란이 존재한다.

토기의 제작 원인 혹은 발생 배경은 자연환경 변화에 따른 인간의 적응이라는 의견이 많다. 자연환경 변화의 과도기에 얻을 수 있는 자원의 활용 과정에서 요리 방법이 변화해 토기가 개발되었다거나, 환경과 식량 자원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토기가 제작되었다는 주장 등이 있다. 또 토기 출현이 정주 생활의 시작을 의미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와 일치하지 않는 자료가 동시베리아와 중국 쑹넌(松嫩) 평원 등에서 확인된다.

고토기의 제작 방법 및 혼입물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져 왔다. 러시아의 오클라드니코프(Окладников А. П.)는 시베리아 소수 민족의 자료를 참고해 짚으로 된 바구니 안에 진흙을 붙여서 고토기를 제작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아무르강 하류의 훔미(Хумми) 유적에서는 토기 성형 과정에서 토기에 십자(十字) 혹은 격자무늬를 새긴 흔적이 발견되었고, 바구니를 거푸집으로 삼았음이 확인되었다. 또 우스티놉카-3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에 기벽을 두 개의 별도 층으로 붙인 흔적도 같은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유기 물질 용기를 모방해서 토기를 제작했다는 의견도 있다. 일본의 조몬(繩文) 토기는 바구니, 동물 가죽 주머니, 나무껍질로 만든 용기와 유사하다. 또 중국 난좡터우(南莊頭) 유적둥후린(東胡林) 유적의 토기에도 편직물의 테두리를 모방한 흔적이 남아 있다.

아무르강 하류, 동시베리아, 쑹넌 평원 등지에서는 10,000 BP 이상 플라이스토세~홀로세 기간의 유적에서 고토기의 바탕흙[胎土]에 유기 물질이 혼입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또 홀로세 기간의 유적이지만 연해주의 우스티놉카-3 유적, 제주도 고산리 유적의 토기에도 유기 물질이 혼입되었다. 반면에 중국 창장강 유역의 위찬옌(玉蟾巖) 유적의 토기에는 바탕흙에 숯과 굵은 모래가 첨가물로 사용되었다. 한편, 일본의 오다이 야마모토 I 유적 토기에서는 유기 물질이 확인되지 않는다. 이처럼 초창기 토기라도 바탕흙 혼입물은 지역마다 차이를 보인다.

동아시아의 고토기 문화를 지역별로 자세히 살펴보면, 먼저 아무르강 하류 지역의 경우 오시포프카(Осиповка) 문화의 유적 중 토기가 출토되는 유적은 14개 이상이다. 이 문화의 절대 연대는 14,000~16,000¹⁴C BP로 가샤(Гася), 훔미, 곤차르카(Гончарка)-1 유적 등이 조사되었다. 토기의 주요 성형 방법은 테쌓기지만 훔미 유적의 일부 토기에서는 바구니를 일종의 거푸집으로 사용한 것이 관찰되었다. 이 토기에 혼입된 유기 물질은 소량의 섬유질이다. 토기에는 대부분 무늬가 없으나 일부 유물에 회전식 무늬 새기개[施文具]를 굴려서 찍은 무늬, 덧띠 무늬 등이 있다. 훔미 유적에서는 집자리, 곤차르카-1 유적에서는 무덤 등이 확인되어 정주 생활이 이루어졌다고 보기도 한다. 석기는 찌르개, 긁개, 굴지구, 의례품 외에 좀돌날몸돌좀돌날 등 후기 구석기 시대 특징을 보이는 것도 남아 있다. 연해주에서는 10,000¹⁴C BP보다 시기가 늦은 우스티놉카-3, 리소보예(Рисовое)-4 유적 등에서 유기 물질이 혼입된 토기가 출토된다.

동시베리아에서는 자바이칼(Забайка́лье) 지역 비팀(Витим)강 유역의 우스티카렌가(Усть-Каренга) XII 유적이 대표적이다. 우스티카렌가 유적은 후기 구석기 시대 문화층과 연동되어 형성되었으며, 별다른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우스티카렌가 XII 유적의 연대는 약 14,150–12,450¹⁴C BP이다. 우스티카렌가 및 스튜됴노예(Студёное) I 유적, 크라스나야 고르카(Красная Горка) 유적 출토 고토기의 바탕흙에서는 식물성·동물성 유기 물질이 모두 확인되었다. 토기의 무늬는 회전식 무늬 새기개로 굴려서 찍은 것과 여러 날 무늬 새기개[多齒具]로 찍은 것, 무늬가 없는 것(민무늬 토기) 등 유적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한편, 석기로는 좀돌날과 쐐기 모양의 좀돌날 몸돌, 긁개 등 돌날 기법이 그대로 사용된 것이 출토되었다.

중국 쑹넌 평원의 허우타오무가(後套木嘎) 유적 I기와 창퉈쯔(長坨子) III호 유적은 연대가 10,000 BP 이상인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허우타오무가 I기 문화라고 명명되었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편평한 바닥 토기에는 테쌓기의 흔적이 표면에 명확하게 남아 있고, 외면에 유기 물질이 부착된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토기의 바탕흙에는 볏과 식물인 큰뚝새풀(Alopecurus pratensis)의 섬유질 유기 물질과 조개껍데기도 혼입되었다. 석기로는 화살촉, 좀돌날 등이 출토되었으나 허우타오무가 II기층에 비해 그 수가 훨씬 적다. 한편, 쑹넌 평원에서 정주 생활이 이루어졌는지를 판단하기에는 자료가 부족하다.

중국의 창장강 유역에서는 18,300~14,000 BP 기간에 존재한 위찬옌 유적과 셴런(仙人) 동굴 유적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가 확인되었다. 이는 플라이스토세-홀로세 전환기 이전에 토기가 출현한 것을 보여 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위찬옌 유적에서는 뾰족 바닥[尖底]바리 토기가 출토되었다. 이 토기는 바탕흙에 숯과 굵은 모래가 첨가되었고, 재질이 무르고 투박하며 두께는 2cm에 달한다. 또 토기의 표면에는 꼰무늬[繩文]가 남아 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는 약 16,500 BP경의 북부 오다이 야마모토 I 유적과 규슈(九州) 남부 후쿠이(福井) 동굴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그중 기형을 알 수 있는 토기는 많지 않으나 바닥이 편평한 것이 복원되었다. 초기 토기는 미코시바(神子柴) 유형의 석기인 대형 찌르개, 날 간 돌도끼와 함께 나오는데, 일부 연구자는 시베리아와 그 인접 지역을 기원지로 추정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먼저 토기가 발생하였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는 동유럽과 발칸반도 등에서 확인되며, 그 연대는 기원전 7,000~6,000년경이다. 유럽의 경우 토기 문화의 본격적인 확산이 약 8,000~7,500 BP 무렵에 이루어지는데, 이는 발칸반도에서 시작된 농경 문화인 스타르체보(Starčevo) 문화에서 리니어반트케라믹 문화(Linearbandkeramik, LBK)와 함께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른 시기 동아시아에서의 고토기 발생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첫째, 동아시아의 여러 지점에서 동시에 고토기가 출현한 것은 기술적 교류 혹은 환경적 조건 속에서 고토기의 독자적 발명이 이뤄졌음을 시사한다. 둘째, 정주 생활로의 전환 여부에 대한 논의를 촉발하였다. 셋째, 토기 제작 기술의 다양성과 지역성을 확인할 수 있다. 다섯째,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로 이어지는 문화적 연속성의 증거를 제시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무르강 하류의 토기 문화이다. 이는 구석기 시대 돌날 기법과 토기가 함께 나타난다는 점에서 문화의 점진적인 발전 과정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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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