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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하구리 유적(慶州 下邱里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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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하구리 977-1, 979-12, 1154-2, 1166-9, 1285, 금장리 15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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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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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하구리 977-1, 979-12, 1154-2, 1166-9, 1285, 금장리 156-13에 위치한다. 유적은 어림산(해발 510.2m)에서 발원하여 동류하는 소현천의 두 지류가 만나는 곡간 충적지 일대에 위치한다. 유적은 도로 및 공동 주택 건설 등의 공사에 앞서 2005~2016년까지 7차례 조사되어 [[집자리|집자리]] 35기, [[기둥건물터|기둥 건물터(掘立柱建物址)]] 1기, [[구덩이|구덩이]] 4기, [[환구|환구(環溝)]] 1기, [[구|도랑(溝)]] 11기를 비롯해 [[초기철기시대|초기 철기 시대]] [[독무덤|독무덤(甕棺墓)]] 13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반경 1㎞ 거리에 분포한다.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하구리 977-1, 979-12, 1154-2, 1166-9, 1285, 금장리 156-13에 위치한다. 유적은 어림산(해발 510.2m)에서 발원하여 동류하는 소현천의 두 지류가 만나는 곡간 충적지 일대에 위치한다. 유적은 도로 및 공동 주택 건설 등의 공사에 앞서 2005~2016년까지 7차례 조사되어 [[집자리|집자리]] 35기, [[기둥건물터|기둥 건물터(掘立柱建物址)]] 1기, [[구덩이|구덩이]] 4기, [[환구|환구(環溝)]] 1기, [[구|도랑(溝)]] 11기를 비롯해 [[초기철기시대|초기 철기 시대]] [[독무덤|독무덤(甕棺墓)]] 13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반경 1㎞ 거리에 분포한다.


집자리는 방형, 장방형이며, 면적이 25㎡ 이상인 하구리 1166-9 유적 A-8호와 취락 유적(하구리 1285) 2호를 제외하고는 10㎡ 내외이다. 화덕 자리는 (타)원형의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竪穴式)]] 으로 대부분 한쪽으로 치우쳐 1개가 설치되었다. A-3호와 취락 유적 3호는 중앙 1개, A-10호와 취락 유적 2호는 중앙부에 2개가 배치된 것도 있다. 기둥 구멍은 4·6·8·10주식(柱式)이 확인되며, 집자리의 크기와 비례한다. [[벽도랑|벽 도랑(壁溝)]] 내에서도 다수의 [[벽기둥|벽 기둥(壁柱)]]이 확인된다. 배수용으로 추정되는 [[외부돌출구|외부 돌출구(外部突出溝)]]는 대부분 벽의 한쪽 모서리를 굴착하여 바깥으로 길게 연결하였다. 다만 자연 배수에 용이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능선 끝자락 일대의 집자리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취락 유적 2호에서는 지름 0.5m의 저장 구덩이 2개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방형, 장방형이며, 면적이 25㎡ 이상인 하구리 1166-9 유적 A-8호와 취락 유적(하구리 1285) 2호를 제외하고는 10㎡ 내외이다. 화덕 자리는 (타)원형의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竪穴式)]] 으로 대부분 한쪽으로 치우쳐 1개가 설치되었다. A-3호와 취락 유적 3호는 중앙 1개, A-10호와 취락 유적 2호는 중앙부에 2개가 배치된 것도 있다. 기둥 구멍은 4·6·8·10주식(柱式)이 확인되며, 집자리의 크기와 비례한다. [[벽도랑|벽 도랑(壁溝)]] 내에서도 다수의 [[벽기둥|벽 기둥(壁柱)]]이 확인된다. 배수용으로 추정되는 외부 돌출구(外部突出溝)는 대부분 벽의 한쪽 모서리를 굴착하여 바깥으로 길게 연결하였다. 다만 자연 배수에 용이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능선 끝자락 일대의 집자리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취락 유적 2호에서는 지름 0.5m의 저장 구덩이 2개가 확인되었다.


집자리 주변에서 확인된 다수의 도랑은 인접한 소현천의 유로 방향과 동일하며, 하구리 생활 유적의 일부 구간에서는 자연면 사이에서 뻘 층이 확인되고 있어 자연적으로 생성된 도랑에 인위적으로 굴착해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집자리 주변에서 확인된 다수의 도랑은 인접한 소현천의 유로 방향과 동일하며, 하구리 생활 유적의 일부 구간에서는 자연면 사이에서 뻘 층이 확인되고 있어 자연적으로 생성된 도랑에 인위적으로 굴착해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민무늬항아리|민무늬 항아리(壺)]], [[바리모양토기|바리(鉢)]], [[얕은바리토기|얕은 바리 토기(淺鉢形土器)]], 흙으로 만든 [[가락바퀴|가락바퀴]] 등이 확인되었다. 이 중 집자리 출토 토기는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口脣刻目文)]]와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孔列文)]]가 확인되었으며, 도랑 출토 토기는 [[혹무늬를눌러찍은바리|혹무늬를 눌러 찍은(押印) 바리]]도 확인되었다. 석기류는 [[돌살촉|돌살촉]], [[돌낫|돌낫(石鎌)]], [[반달돌칼|반달 돌칼]], [[부리모양석기|부리 모양 석기]], 미완성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격지|격지(剝片)]]와 미완성 석기 등의 석재 분석 결과,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암|사암]], [[이암|이암]], [[셰일|셰일]], [[실트암|실트암]] 등을 이용하여 석기를 가공하였다. 또한 하구리 취락 유적에서 출토된 목탄의 수종 분석 결과, 1호는 굴피나무, 2호는 상수리 나무류의 활엽재로 경주 지역 집자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종임이 밝혀졌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민무늬 항아리(壺), [[바리모양토기|바리(鉢)]], [[얕은바리토기|얕은 바리 토기(淺鉢形土器)]], 흙으로 만든 [[가락바퀴|가락바퀴]] 등이 확인되었다. 이 중 집자리 출토 토기는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口脣刻目文)]]와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孔列文)]]가 확인되었으며, 도랑 출토 토기는 [[혹무늬를눌러찍은바리|혹무늬를 눌러 찍은(押印) 바리]]도 확인되었다. 석기류는 [[돌살촉|돌살촉]], [[돌낫|돌낫(石鎌)]], [[반달돌칼|반달 돌칼]], [[부리모양석기|부리 모양 석기]], 미완성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격지|격지(剝片)]]와 미완성 석기 등의 석재 분석 결과,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암|사암]], [[이암|이암]], [[셰일|셰일]], [[실트암|실트암]] 등을 이용하여 석기를 가공하였다. 또한 하구리 취락 유적에서 출토된 목탄의 수종 분석 결과, 1호는 굴피나무, 2호는 상수리 나무류의 활엽재로 경주 지역 집자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종임이 밝혀졌다.


유적의 연대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본 결과, 경주 하구리 집자리 A-1호 275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900년), A-5호 2630±50 BP(기원전 800년), A-10호 2690±50 BP(기원전 850년)로 확인되었다. 그 밖의 집자리들은 평면 형태와 [[기둥구멍|기둥 구멍]]의 배치, [[화덕자리|화덕 자리]]와 벽 도랑 및 외부 돌출구 등을 통해 볼 때 동남해안의 지역 문화 가운데 하나인 [[검단리식집자리|검단리식 집자리]]에 해당한다. 따라서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부터 마을이 조성되기 시작하여 늦은 시기까지 지속적으로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적의 연대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본 결과, 경주 하구리 집자리 A-1호 275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900년), A-5호 2630±50 BP(기원전 800년), A-10호 2690±50 BP(기원전 850년)로 확인되었다. 그 밖의 집자리들은 평면 형태와 [[기둥구멍|기둥 구멍]]의 배치, [[화덕자리|화덕 자리]]와 벽 도랑 및 외부 돌출구 등을 통해 볼 때 동남해안의 지역 문화 가운데 하나인 [[검단리식집자리|검단리식 집자리]]에 해당한다. 따라서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부터 마을이 조성되기 시작하여 늦은 시기까지 지속적으로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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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일대는 경주 현곡 지역의 소현천을 중심으로 다수의 청동기 시대 마을이 유존하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특히 주변 하천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였으며, 좁은 범위에 걸쳐 다수의 집자리가 중복 관계를 보이고 있어 일정한 규모 이상의 마을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경주를 비롯한 남동해안 일대의 검단리 문화인들의 구체적인 생활상을 연구하는데 있어 중요한 기초 자료를 제공한다.
유적 일대는 경주 현곡 지역의 소현천을 중심으로 다수의 청동기 시대 마을이 유존하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특히 주변 하천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였으며, 좁은 범위에 걸쳐 다수의 집자리가 중복 관계를 보이고 있어 일정한 규모 이상의 마을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경주를 비롯한 남동해안 일대의 검단리 문화인들의 구체적인 생활상을 연구하는데 있어 중요한 기초 자료를 제공한다.


독무덤은 모두 가로로 눕혀(橫置) 묻었다. 5·9호는 1개의 독을 사용한 [[단옹식|단옹식(單甕式)]]이며, 나머지는 [[주옹|주옹]]과 [[막음옹|막음옹]]으로 이루어진 [[합구식|합구식(合口式)]]이다. [[묘광|무덤 구덩이(墓壙)]]는 대부분 길이 1m 내외이며, 13호는 길이 1.55m, 너비 0.7m로 가장 크다. 주옹과 막음옹은 [[민무늬의손잡이달린항아리|민무늬의 손잡이 달린 항아리(把手附壺)]]와 [[덧띠토기|덧띠 토기(粘土帶土器)]]의 독을 사용하였다. 1·3·5·8·12·13호의 주옹은 길이 0.8m 이상이며, 나머지는 길이 0.5m 내외이다. 아가리는 타원형과 삼각형의 덧띠를 붙여 만든 것이 모두 확인되며, 굽은 뚜렷한 높이를 가진 것과 편평한 바닥(平底)이다.
독무덤은 모두 가로로 눕혀(橫置) 묻었다. 5·9호는 1개의 독을 사용한 단옹식(單甕式)이며, 나머지는 주옹과 막음옹으로 이루어진 합구식(合口式)이다. [[묘광|무덤 구덩이(墓壙)]]는 대부분 길이 1m 내외이며, 13호는 길이 1.55m, 너비 0.7m로 가장 크다. 주옹과 막음옹은 민무늬의 손잡이 달린 항아리(把手附壺)와 [[덧띠토기|덧띠 토기(粘土帶土器)]]의 독을 사용하였다. 1·3·5·8·12·13호의 주옹은 길이 0.8m 이상이며, 나머지는 길이 0.5m 내외이다. 아가리는 타원형과 삼각형의 덧띠를 붙여 만든 것이 모두 확인되며, 굽은 뚜렷한 높이를 가진 것과 편평한 바닥(平底)이다.


독무덤은 인접한 [[경주하구리979-2유적|하구리 979-2 유적 4호]] [[널무덤|널무덤(木棺墓)]] 보다는 이른 시기이고, [[대구팔달동유적|대구 팔달동 유적]]과는 비슷하거나 약간 늦은 단계로 판단되며, 연대는 기원전 1세기대로 추정된다. 2006년 한국 소아 표준치를 통한 피장자의 연령을 추정하였을 때, 독무덤은 유아무덤으로 판단되며 성인의 무덤과 달리 별도의 매장 공간을 마련한 것으로 판단된다.
독무덤은 인접한 [[경주하구리979-2유적|하구리 979-2 유적 4호]] [[널무덤|널무덤(木棺墓)]] 보다는 이른 시기이고, [[대구팔달동유적|대구 팔달동 유적]]과는 비슷하거나 약간 늦은 단계로 판단되며, 연대는 기원전 1세기대로 추정된다. 2006년 한국 소아 표준치를 통한 피장자의 연령을 추정하였을 때, 독무덤은 유아무덤으로 판단되며 성인의 무덤과 달리 별도의 매장 공간을 마련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heights=200px>
File:경주_하구리_유적(하구리_1154-2_유적)_1_2호_독널무덤.jpg
File:경주_하구리_유적(하구리_1166-9_유적)_A구역_1호_집자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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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경주_하구리_유적(하구리_1285_유적)_2호_집자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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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지표조사 || None || 울산~포항 복선전철 건설구간 내 문화재지표조사 보고서1 || 2007 || 영남문화재연구원
|-
| 시굴조사 || 2011년 5월 25일 ~ 2011년 8월 25일 || 울산~포항 복선전철 문화재 제6공구(경주 하구리구역) 제7공구(경주 나원리 ‘나’구역) 내 유적 발(시)굴조사 약보고 || 2011 || 해동문화재연구원
|-
| 발굴조사 || 2012년 1월 18일 ~2012년 6월 7일 || 경주 하구리유적 - 울산~포항 복선전철 제6공구 경주 하구리 구역내 - || 2013 || 신라문화유산연구원
|}
==참고문헌==
* 대학소아과학회. (2006). <i>아기의 영양-출생시부터 유아기-</i>. 한동출판사.  https://www.riss.kr/link?id=M10030951
* 성림문화재연구원. (2013). <i>경주 하구리 초기철기시대 옹관묘 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3526566
* 성림문화재연구원. (2015). <i>경주 금장리 생활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3799761
* 성림문화재연구원. (2017). <i>경주 하구리 청동기시대 취락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4533293
* 성림문화재연구원. (2018). <i>경주 하구리 청동기시대 생활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5036042
* 신라문화유산연구원. (2010). <i>경주의 문화유적Ⅶ-경주 현곡면 하구리축사신축부지 내 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4570198
* 신라문화유산연구원. (2013). <i>경주 하구리 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3349564
* 중앙문화재연구원. (2006). <i>경주 하구리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0836789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7 기준 최신판


하구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경주 하구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하구리 977-1, 979-12, 1154-2, 1166-9, 1285, 금장리 156-13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도랑, 독무덤, 벽 도랑, 바리, 가락바퀴, 돌살촉, 돌낫, 반달 돌칼, 부리 모양 석기, 격지, 검단리식 집자리, 덧띠 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윤형규



설명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하구리 977-1, 979-12, 1154-2, 1166-9, 1285, 금장리 156-13에 위치한다. 유적은 어림산(해발 510.2m)에서 발원하여 동류하는 소현천의 두 지류가 만나는 곡간 충적지 일대에 위치한다. 유적은 도로 및 공동 주택 건설 등의 공사에 앞서 2005~2016년까지 7차례 조사되어 집자리 35기, 기둥 건물터(掘立柱建物址) 1기, 구덩이 4기, 환구(環溝) 1기, 도랑(溝) 11기를 비롯해 초기 철기 시대 독무덤(甕棺墓) 13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반경 1㎞ 거리에 분포한다.

집자리는 방형, 장방형이며, 면적이 25㎡ 이상인 하구리 1166-9 유적 A-8호와 취락 유적(하구리 1285) 2호를 제외하고는 10㎡ 내외이다. 화덕 자리는 (타)원형의 구덩식(竪穴式) 으로 대부분 한쪽으로 치우쳐 1개가 설치되었다. A-3호와 취락 유적 3호는 중앙 1개, A-10호와 취락 유적 2호는 중앙부에 2개가 배치된 것도 있다. 기둥 구멍은 4·6·8·10주식(柱式)이 확인되며, 집자리의 크기와 비례한다. 벽 도랑(壁溝) 내에서도 다수의 벽 기둥(壁柱)이 확인된다. 배수용으로 추정되는 외부 돌출구(外部突出溝)는 대부분 벽의 한쪽 모서리를 굴착하여 바깥으로 길게 연결하였다. 다만 자연 배수에 용이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능선 끝자락 일대의 집자리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취락 유적 2호에서는 지름 0.5m의 저장 구덩이 2개가 확인되었다.

집자리 주변에서 확인된 다수의 도랑은 인접한 소현천의 유로 방향과 동일하며, 하구리 생활 유적의 일부 구간에서는 자연면 사이에서 뻘 층이 확인되고 있어 자연적으로 생성된 도랑에 인위적으로 굴착해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민무늬 항아리(壺), 바리(鉢), 얕은 바리 토기(淺鉢形土器), 흙으로 만든 가락바퀴 등이 확인되었다. 이 중 집자리 출토 토기는 골아가리(口脣刻目文)구멍무늬(孔列文)가 확인되었으며, 도랑 출토 토기는 혹무늬를 눌러 찍은(押印) 바리도 확인되었다. 석기류는 돌살촉, 돌낫(石鎌), 반달 돌칼, 부리 모양 석기, 미완성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격지(剝片)와 미완성 석기 등의 석재 분석 결과,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암, 이암, 셰일, 실트암 등을 이용하여 석기를 가공하였다. 또한 하구리 취락 유적에서 출토된 목탄의 수종 분석 결과, 1호는 굴피나무, 2호는 상수리 나무류의 활엽재로 경주 지역 집자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종임이 밝혀졌다.

유적의 연대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본 결과, 경주 하구리 집자리 A-1호 275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900년), A-5호 2630±50 BP(기원전 800년), A-10호 2690±50 BP(기원전 850년)로 확인되었다. 그 밖의 집자리들은 평면 형태와 기둥 구멍의 배치, 화덕 자리와 벽 도랑 및 외부 돌출구 등을 통해 볼 때 동남해안의 지역 문화 가운데 하나인 검단리식 집자리에 해당한다. 따라서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부터 마을이 조성되기 시작하여 늦은 시기까지 지속적으로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적 일대는 경주 현곡 지역의 소현천을 중심으로 다수의 청동기 시대 마을이 유존하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특히 주변 하천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였으며, 좁은 범위에 걸쳐 다수의 집자리가 중복 관계를 보이고 있어 일정한 규모 이상의 마을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경주를 비롯한 남동해안 일대의 검단리 문화인들의 구체적인 생활상을 연구하는데 있어 중요한 기초 자료를 제공한다.

독무덤은 모두 가로로 눕혀(橫置) 묻었다. 5·9호는 1개의 독을 사용한 단옹식(單甕式)이며, 나머지는 주옹과 막음옹으로 이루어진 합구식(合口式)이다. 무덤 구덩이(墓壙)는 대부분 길이 1m 내외이며, 13호는 길이 1.55m, 너비 0.7m로 가장 크다. 주옹과 막음옹은 민무늬의 손잡이 달린 항아리(把手附壺)와 덧띠 토기(粘土帶土器)의 독을 사용하였다. 1·3·5·8·12·13호의 주옹은 길이 0.8m 이상이며, 나머지는 길이 0.5m 내외이다. 아가리는 타원형과 삼각형의 덧띠를 붙여 만든 것이 모두 확인되며, 굽은 뚜렷한 높이를 가진 것과 편평한 바닥(平底)이다.

독무덤은 인접한 하구리 979-2 유적 4호 널무덤(木棺墓) 보다는 이른 시기이고, 대구 팔달동 유적과는 비슷하거나 약간 늦은 단계로 판단되며, 연대는 기원전 1세기대로 추정된다. 2006년 한국 소아 표준치를 통한 피장자의 연령을 추정하였을 때, 독무덤은 유아무덤으로 판단되며 성인의 무덤과 달리 별도의 매장 공간을 마련한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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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지표조사 None 울산~포항 복선전철 건설구간 내 문화재지표조사 보고서1 2007 영남문화재연구원
시굴조사 2011년 5월 25일 ~ 2011년 8월 25일 울산~포항 복선전철 문화재 제6공구(경주 하구리구역) 제7공구(경주 나원리 ‘나’구역) 내 유적 발(시)굴조사 약보고 2011 해동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12년 1월 18일 ~2012년 6월 7일 경주 하구리유적 - 울산~포항 복선전철 제6공구 경주 하구리 구역내 - 2013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