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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산동 유적(大邱 角山洞遺蹟)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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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산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대구 각산동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대구광역시 동구 각산동 425·909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도랑, 화덕자리, 붉은 간 토기, 가지무늬 토기,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 골아가리 토기, 간 돌살촉, 돌칼, 돌도끼, 돌창, 기둥 모양 외날 돌자귀, 부리 모양 석기, 숫돌, 가락바퀴, 그물추, 송국리식 집자리, 둥근 덧띠 토기, 굽다리 토기, 쇠뿔 손잡이, 슴베 없는 간 돌살촉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유병록



설명

대구광역시 동구 각산동 425·909 일원에 위치한다. 공동 주택 건설에 앞서 2006년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각산동 유적)과 영남문화재연구원(각산동 912-6유적)이 조사하였다. 각산동 유적(각산동 425)에서는 집자리 24기, 구덩이 3기, 도랑(溝) 3기, 각산동 912-6 유적(각산동 909)에서는 Ⅰ구역에서 초기 철기 시대 집자리 12기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금호강에서 오른쪽으로 약 1㎞ 떨어진 충적지대에 입지하며, 두 유적은 300m 거리에 분포한다.

각산동 유적(경북연)의 집자리는 북서쪽에서 남동쪽 방향으로 이어지며 자리잡고 있는데 부분적으로 밀집되어 있기도 하고, 서로 겹친(重複) 사례도 3차례 있다. 형태는 원형인 7호를 제외하면 모두 장방형 또는 방형이다. 장방형, 방형 집자리 7기에서 목탄이 확인되는 등 화재가 발생된 흔적이 확인되었다. 또한, 집자리의 바닥에는 특별한 보강을 하거나 시설을 한 흔적은 없었다. 장방형 집자리는 12기로, 규모가 가장 큰 6호는 길이 약 8.9m, 너비 약 4.3m이다. 주축 방향은 북서-남동 방향과 북동-남서 방향이 혼재한다. 집자리 내부에는 대부분 화덕 자리 1~2개가 확인되며, 일부는 벽 도랑(壁溝)과 밖으로 외부 돌출구(外部突出溝) 를 가진 것도 있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붉은 간 토기, 가지무늬 토기(彩文土器),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등 무늬가 있는 토기가 포함되어 있다. 석기류는 간 돌살촉, 돌칼(石刀), 돌도끼(石斧), 돌창(石槍), 기둥 모양 외날 돌자귀(柱狀片刃石斧), 부리 모양 석기, 숫돌(砥石), 가락바퀴 및 흙으로 만든 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집자리의 조성과 출토 유물을 통해 시기적으로 가장 앞서는 것으로 판단된다.

원형 집자리인 7호는 장방형 집자리를 파괴하고 조성되었다. 집자리의 가운데 타원형의 구덩이 안에 기둥 구멍 2개가 위치하고, 그 벽면에는 납작한 돌을 돌렸다. 평면 형태와 구조를 통해 송국리식 집자리로 판단되며, 유물은 토기 바닥과 숫돌이 출토되었다.

방형 집자리는 모두 11기이다. 11호는 길이 약 5.9m, 너비 약 3.7m로 가장 크며, 대부분 길이가 4m 전후로 작아진다. 내부 시설은 2기에서 화덕 자리가 확인될 뿐 다른 시설은 확인되지 않는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모두 민무늬이며, 석기류도 돌살촉 1점을 제외하면 숫돌, 갈판, 미완성품이 대부분이다. 2·11호에서 둥근 덧띠 토기(圓形粘土帶土器), 굽다리 토기(豆形土器), 쇠뿔 손잡이(牛角形把手) 등이 출토되어 시기적으로는 가장 늦은 집자리에 해당한다.

각산동 912-6 유적은 구릉 사면부에 입지하여, 집자리 아래쪽 대부분이 삭평되어 원래의 형태를 확인할 수 없으나, 원형과 방형으로 추정된다. 경사면 위쪽의 동쪽 편에 원형 8기, 서쪽에 방형이 4기 위치한다. 이는 시간적 차이를 반영한 것일 가능성도 있다. 원형의 5호 집자리는 길이 7.8m, 방형인 1호는 길이 6.5m이다. 벽면의 깊이는 4호가 0.42m로 가장 깊다. 집자리의 경사면 위쪽에 벽 도랑(壁溝)이 공통적으로 확인되었다. 내부에는 불탄 흙과 목탄(木炭)과 숯이 다량 채워져 있어 화재가 발생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벽 도랑은 경사면 위쪽에 집중되어 있는 점에서 배수 시설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은 둥근 덧띠 토기, 굽다리 토기, 쇠뿔 손잡이, 뚜껑(蓋), 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다.

구덩이는 각산동 유적(경북연)에서 확인된 3기가 원형이며, 2호가 길이 3.1m로 가장 크다. 내부에서 슴베 없는 간 돌살촉(無莖式磨製石鏃) 1점과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3호는 내부에서 화덕 자리가 확인되었다. 이외에 도랑은 집자리 있는 북동-남서 방향에 위치하며,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출토 유물은 토기류, 숫돌 등의 간석기가 있다.

유적의 연대는 장방형 집자리가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에 해당하며, 방형과 7호는 후기에 해당한다. 2·11호는 둥근 덧띠 토기가 출토되어 늦은 시기로 추정된다. 유적은 금호강 하류 초입에 해당하는 곳으로 경산 지역과 대구 지역을 연결하는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또한, 청동기 시대의 전 시기가 확인되어 지역의 청동기 시대 전반에 관한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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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