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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리 유적(加平 大成里遺蹟)

한국고고학사전
(가평 대성리 유적에서 넘어옴)


대성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가평 대성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대성리 393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미사리식 집자리, 역삼동식 집자리, 천전리식 집자리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권중



설명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대성리 393 일원에 위치한다. 2004~2006년 경춘선 복선 전철 사업으로 조사하여 청동기 시대 집자리 27기와 구덩이 6기, 경작 유구 1개소를 비롯하여 원삼국 시대 집자리와 구덩이, 삼국 시대 돌방무덤(石室墓), 조선 시대 집자리 등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운두산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과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북한강사이에 형성된 좁고 긴 자연 제방(해발 36~37m)에 해당한다. 주변에 분포하는 유적은 없지만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가평 달전리 유적가평 연하리 유적이 있다.

집자리는 남쪽 B지구에 밀집되며 장축(長軸)은 대부분 강의 흐름과 나란하고, 원삼국 시대 집자리 조성으로 훼손된 것이 많다. 구조와 형태에 따라 몇 가지 형식으로 나뉘는데 미사리식, 역삼동식, 천전리식으로 구분된다.

미사리식 집자리는 A지구의 25호와 26호 2기로 약 40m 간격으로 서로 엇갈리게 배치되어 있다. 25호는 긴 벽(長壁)쪽이 훼손되고 부분만 조사되어 정확한 크기는 알 수 없지만 길이 10m 정도의 대형이고 평면 방형으로 추정된다. 26호는 평면 장방형으로 크기는 길이 6.54m, 너비 4.92m의 중형이다. 내부 시설은 모두 돌 깐 돌 두름식 화덕 자리(石床圍石式爐址)가 중앙에서 짧은 벽 쪽으로 치우쳐 각각 1기씩 설치되어 있고, 26호에는 저장 구덩이도 확인된다. 유물은 겹아가리 토기(二重口緣土器), 외반 구연 항아리(外反口緣壺), 붉은 간 토기, 돌살촉(石鏃), 돌도끼(石斧), 숫돌(砥石), 가락바퀴, 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역삼동식 집자리는 5기(9·11·13·16·17호)로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 많고 13호는 세장방형이다. 크기는 대체로 길이 5.8~9.8m, 너비 3.2~4.1m 정도의 중·대형이다. 13호는 길이 1,028㎝, 깊이 94㎝에 이른다. 내부 시설은 주로 화덕 자리와 저장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무시설식(無施設式)으로 짧은 벽 쪽에 치우쳐 1~3기가 설치되었다. 저장 구덩이는 주로 모서리에 집중되고 일부는 긴 벽 쪽에도 설치된다. 유물은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대형 항아리(大形壺), 슴베없는간돌살촉(無莖式磨製石鏃), 턱 슴베 간 돌살촉(二段莖式磨製石鏃), 반달돌칼, 가락바퀴 등이 대표적이다.

천전리식 집자리는 모두 18기로 짧은 벽 부근에 이색 점토 구역(異色粘土區域)과 작업 구덩이가 설치된 것이 특징이다. 평면 형태는 방형이나 장방형이고 길이 3.5~8.5m, 너비 2.6~4.5m 정도의 중·소형이다. 내부 시설은 이색 점토 구역과 작업공을 비롯하여 기둥 구멍, 화덕 자리, 저장 구덩이가 확인된다. 이색 점토 구역은 짧은 벽 쪽에 1/3~1/2 정도의 범위에 포장되어 있고, 내부에서 작업 구덩이는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기둥 구멍은 중심 기둥이 장축 중앙에서 짧은 벽 쪽으로 치우쳐 1~2개가 설치되며, 벽 기둥은 20호를 제외하면 불규칙하게 확인된다. 화덕 자리는 1~2개가 장축 중앙이나 짧은 벽 쪽으로 치우쳐 설치된다. 저장 구덩이는 전체적으로 소수이고 확인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유물은 구멍무늬 토기, 민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간 돌살촉, 돌도끼, 숫돌, 반달 돌칼, 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다.

구덩이는 방형인 6호를 제외하면 평면 원형이거나 이와 유사한 형태이다. 크기는 대체로 지름 1.6m 이하지만 1호는 3.76m, 6호는 길이 2.22m로 큰 편이다. 내부에는 별다른 시설이 확인되지 않고 유물도 거의 출토되지 않았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값은 일부만 확인되었지만, 기존 북한강 유역의 유적과 비교하면 이른 시기에서 늦은 시기까지 세 단계에 걸쳐 지속적으로 마을이 형성된 것을 알 수 있다. 대성리 유적은 일부만 조사되었지만 북한강 하류에서 조사된 대규모 마을로 판단되고, 시기별 집자리의 변천 과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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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