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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리 유적(西歸浦 和順里遺蹟)

한국고고학사전


화순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서귀포 화순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610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도랑, 독무덤, 송국리식 집자리, 고인돌, 돌무지 무덤, 경질 무문 토기, 구멍무늬 토기, 골아가리 토기, 덧띠 토기, 민무늬 토기, 갈돌, 간 돌검, 돌도끼, 돌끌, 곱은옥, 어망추, 쇠손칼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박경민



설명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610 일원에 위치한다. 유적의 동쪽에는 월라봉(月羅峰)(해발 204m)이 위치하며 그 아래로는 창고천 지류인 황개천이 해안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처럼 화순리 유적은 해안과 인접한 해발 10m 내외의 완만한 경사면에 자리한다. 2005년 남제주화력 3·4호기 증설 부지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시작으로 화순리 일대에 대한 조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조사 결과, 집자리 208기, 기둥 건물터(掘立柱建物址) 4기, 구덩이 791기, 소성 유구 4기, 야외 화덕 자리 21기, 도랑 7기, 매납 유구(埋納遺構)7기, 독무덤(甕棺墓) 3기 등이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장방형과 원형이 확인된다. 장방형은 잔존 상태가 불량하여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반면 원형 집터는 내부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두 개의 기둥 구멍이 확인되는 점으로 미루어 송국리식 집자리의 영향으로 추정된다. 원형 집자리는 면적 6~15㎡가 대부분이며 특히 9~12㎡에 밀집 분포한다. 제주도 북부 지역의 용담동과 삼양동 유적에 비해 다소 좁은 면적을 보인다.

집자리의 벽체 축조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구덩이를 굴착한 후 벽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고, 두 번째는 중복된 벽체에 자연석이나 강돌(川石)을 쌓아 보강한 사례가 해당된다. 세 번째는 구덩이를 판 후 벽체를 돌아가면서 자연석 혹은 강돌 등을 쌓아 올린 경우이다. 전자가 가장 일반적이며 후자의 두 사례는 집자리의 벽체나 중복된 부분을 보강하기 위한 방식으로 추정된다. 특히 Ⅱ구역 31호 집자리와 같이 규모가 비교적 우월하고 다량의 의례성 유물이 집중되는 점을 고려하면 특수 목적의 집자리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내부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 구멍의 배치 관계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타원형 구덩이 내부 양 끝에 각각 기둥 구멍이 배치된 형태와 양 끝에 걸쳐있는 형식이 주로 확인되며, 이러한 형식적 차이가 시간성을 반영한다는 주장과 그 반대의 견해가 있다.

기둥 건물터는 현재까지 4동이 조사되었는데 대체로 1×1칸 혹은 1×2칸 규모가 일반적이다. 기둥 건물터의 규모와 배치 관계를 살피면 취락 내 공동 창고 시설이나 망루와 같은 기능을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구덩이는 평면 형태가 원형이거나 타원형이다. 소성 유구는 얕은 구덩이를 굴착하여 바닥에 불 다짐 처리하여 사용하였다. 주로 북부 지역의 용담동과 삼양동에서 많이 확인되는데 그 바닥에서는 토기, 석기, 동물뼈, 탄화 곡물 등이 주로 확인된다. 유구의 축조 상태와 출토 유물을 살펴보면 작업장의 기능과 함께 동물의 해체와 조리 그리고 토기 가마와 관련된 시설임을 짐작게 한다.

야외 화덕 자리는 모두 21기가 조사되었는데 집자리 내부에서 화덕 자리가 확인되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마을 내 취사 및 불과 관련된 행위는 주로 야외에서 이루어졌다고 판단된다. 화순리 취락 내 무덤은 고인돌돌무지 무덤 영역 안에 딸린 무덤 형태의 독무덤이 조영되어 있다. 먼저 고인돌은 판돌형 석재를 받침돌로 사용하였는데 비교적 늦은 시기에 해당한다. 또한 독무덤은 무덤 영역의 외곽에 잇대어 축조되었는데 이음식 2기와 홑 독널 1기가 확인된다.

한편 출토 유물을 살펴보면 대부분 경질 무문 토기(硬質無文土器)이다. 이외에도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덧띠 토기(粘土帶土器)민무늬 토기가 일부 확인된다. 민무늬와 경질 무문 토기는 바리와 항아리 형태가 대부분이다. 특징적인 토기로는 손잡이 달린 토기(把手附土器), 원뿔 모양 토기, 굽다리 접시 모양 토기(高杯形土器), 반형 토기(盤形土器), 배 모양 토기(船形土器)가 수습된 바 있다. 석기는 공이돌(敲石), 갈돌(碾石), 오목돌(凹石) 등 식량 처리구의 점유율이 매우 높다. 반면 간 돌검, 돌도끼, 돌끌(石鑿), 곱은옥(曲玉), 어망추 등이 소량 확인된다. 금속기는 쇠손칼(鐵刀子)과 철제품이 일부 출토되고 재활용된 청동 제품도 출토된다. 화순리에서는 유리 구슬과 함께 흙으로 빚은 모방품, 돼지 모양 흙 인형, 본뜬 흙거울 등 의례와 관련된 유물이 다량 출토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2420~1580 BP에 이르는 비교적 폭넓은 연대 폭이 검출되었다. 하지만 유적에서 집중되는 주거 구조와 출토 유물을 살피면 대체로 기원전 2세기~기원후 1세기대가 중심 연대에 해당한다.

화순리 유적은 제주 서남부 지역에 조성된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의 대표적인 대규모 취락으로, 서북부 지역의 전형적인 송국리식 집자리 양식에서 벗어나 지역화되는 과도기적 유적이다. 특히 의례와 관련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는 점으로 미루어 동 시기 제의 행위의 중요성과 그 성격을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이전 시기와는 달리 마을 안에 주거·생산·폐기·무덤·제의 공간이 분리되는 단계의 취락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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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7년~2008년 제주 화순리유적 2009 제주문화예술재단
발굴조사 2013년 제주 화순리 창고천유적 2014 제주고고학연구소
발굴조사 2014년 제주 화순리 도시계획도로 유적 2015 제주고고학연구소

한국고고학저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