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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리 유적(密陽 安仁里遺蹟)

한국고고학사전


안인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밀양 안인리 유적, 밀양 신안 선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 안인리 1214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돌무지, 고인돌, 돌무지 제단 유구, 돌더미, 호안 석축, 구덩이, 도랑, 손잡이 달린 바리 토기, 민무늬 토기, 바위그림, 간 돌도끼, 삼각 덧띠 토기, 붉은 간 토기, 그물추, 돌칼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고민정



설명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 안인리 1214 일원에 위치한다. 밀양-상동 간 철도 전철화 사업에 앞서 2002~2003·2004년 2차례 구역을 나누어 조사하였다. Ⅰ지구에서는 집자리, 돌무지(積石), Ⅱ지구에는 고인돌 4기, 돌무지 제단 유구(積石祭壇遺構), 돌더미(集石) 2기, 호안 석축(護岸石築), 밭, Ⅲ지구에서는 돌무지와 구덩이, 도랑(溝)이 확인되었다. 이외에 신석기·삼국·고려 시대 유구가 다수 조사되었다. 유적은 서북쪽의 옥교산(해발 538.4m)에서 남쪽으로 뻗은 구릉 사이에 형성된 선상지에 위치하며, 밀양강 중류 서안의 하안단구와 연결된다.

집자리는 장방형으로 추정되며, 손잡이 달린 바리 토기(把手附鉢形土器)가 출토되었다. 돌무지는 다양한 크기의 깬돌(割石)과 강돌(川石)을 무질서하게 한 두벌 깐 장방형이며, 5m, 너비 2.8m, 높이 0.2m이다. 돌무지 사이에서 민무늬 토기 편이 소량 출토되었다.

고인돌 1·2·4호는 장방형으로 추정되는 묘역 시설이 있으며, 3호의 덮개돌(上石)은 매몰되어 있었다. 1호의 묘역은 길이 10m, 너비 6.6m, 높이 0.4m이며, 크고 작은 깬돌을 2~3단 쌓아 축조하였다. 묘역 위에는 중앙에서 서쪽으로 치우쳐 장방형의 덮개돌이 놓여 있는데, 길이 3.1m, 너비 1.9m, 두께 2m이다. 덮개돌의 남쪽 면에는 바위그림(巖刻畫)이 전면에 새겨져 있다. 유물은 깬돌 사이에서 간 돌도끼 1점이 출토되었으며, 묘역 상부 퇴적토에서 삼각 덧띠 토기(三角形粘土帶土器) 편, 붉은 간 토기, 손잡이 편, 그물추, 돌칼(石刀) 등이 출토되었다.

돌무지 제단 유구는 원형의 돌무지와 양쪽에 방형의 돌무지를 연결한 것으로 길이 7.9m이고, 장축 방향은 남북이다. 가장자리에 판돌을 이용하여 원형으로 기단석(基壇石)을 놓고, 그 위에 2단 정도 대형의 깬돌을 이용하여 가장자리를 먼저 축조한 후 내부에 소형의 깬돌을 1단 정도 채워 넣었다. 방형의 돌무지는 원형 돌무지 시설에 잇대어 대형 깬돌로 가장자리에 방형으로 쌓고 내부에 깬돌을 채웠다. 인근 밀양 살내 1호 고인돌과 대구 진천동 입석 유적과 같이 내부에서 매장 시설이나 다른 시설이 확인되지 않아 제의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구 진천동 유적, 밀양 살내 유적의 제단 고인돌은 동일한 층위에 조성된 밭 유구에서 둥근 덧띠 토기(圓形粘土帶土器)가 출토되었다. 이를 통해 유적의 돌무지 제단 유구도 청동기 시대에서 초기 철기 시대로의 전환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호안 석축은 고인돌이 조성된 지역의 북쪽 가장자리로 배후 산지의 협곡에서 내려오는 하도의 남쪽 단애면에 조성되어 있다. 석축은 하도의 중앙부를 향해 경사지게 다량의 크고 작은 깬돌들이 쌓여 있다. 깬돌은 묘역 시설 축조에 사용된 것과 같은 것으로 고인돌 축조와 관련하여 홍수 등에 의한 강물의 범람을 막고 고인돌 영역의 경계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밭은 고인돌 1·4호를 덮고 있는 암갈색 사질점토층에 조성되어 있으며, 확인된 면적은 길이 7m, 너비 5m로 확인된다. 고랑과 두둑의 너비는 0.6m, 깊이 0.07m이다.

유적의 고인돌에는 바위그림이 확인되어 편년이 불분명하던 다른 바위그림 유적들의 시대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게 되었다. 1호 고인돌의 덮개돌에서는 음문(陰門)과 인물상의 바위그림, 4호 고인돌 묘역 서쪽 중앙부 면석(面石)에서는 동심원문 바위그림이 확인되었다. 음문은 울산 천전리, 포항 칠포리, 경주 석장리, 안동 수곡리 등에 유사한 그림이 있다. 4호 고인돌의 동심원은 울산 천전리, 고령 양전리, 함안 도항리, 대구 진천동 입석에서도 확인되며, 동심원은 일반적으로 태양 또는 물로 해석되는 농경 사회의 중요한 상징으로써 안인리 유적에서 확인되는 바위그림은 당시 사람들의 제의 또는 신앙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적의 시기는 송국리 단계에 해당한다. 살내 유적, 진천동 유적과 같은 묘역식 고인돌(墓域式支石墓)이지만, 매장 시설이 없고 바위그림이 확인되는 특징을 통해 이러한 제단 고인돌은 사회적 갈등을 풀어나가기 위한 집단 결속과 관련된 신앙 및 집단 의례 행위의 상징물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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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2년~2003년 밀양 신안 선사유적 2007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발굴조사 2003년~2004년 밀양 신안 선사유적 2007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참고문헌

  •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2007). 밀양 신안 선사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