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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리 유적(高敞 山亭里遺蹟)

한국고고학사전


산정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고창 산정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대산면 산정리 산57-10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움무덤, 송국리식 집자리, 민무늬 토기, 슴베 간 돌살촉, 숫돌, 가락바퀴, 돌살촉, 덧띠 토기, 갈판, 홈자귀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진



설명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대산면 산정리 산57-10 일원에 위치한다. 서해안 고속 도로 건설 공사에 앞서 발굴 조사하였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 8기, 구덩이 30기, 기둥 건물터(堀立柱建物址) 3기, 기둥 구멍 60여 개와 고려 시대 움무덤(土壙墓)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북동-남서 방향으로 저평하게 이어지는 구릉의 끝 자락에 위치한다. 구릉 동쪽은 농로가 개설되었으며 남쪽 하단은 소발산마을과 연결되고 있다. 구릉의 서쪽으로는 송림(松林)과 민묘가 조성되었고 말단부와 면하여 곡간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집자리는 구릉 능선에서 남사면이 시작되는 지점에 80m 정도 거리를 두고 2개 군으로 나눌 수 있다. 가군(1호~6호)은 북동쪽의 가장 평탄한 능선부에 위치하고, 나군(7·8호)은 남서쪽 일대에 위치한다.

집자리는 중앙부에 타원형 구덩이와 그 내부 양쪽으로 기둥 구멍이 있는 송국리식이다. 평면 형태는 타원형 구덩이만 남아 있는 3기(4~6호)를 제외하고, 원형 1기(1호)와 방형 3기(2·3·7·8호)로 구분되며, 방형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집자리의 크기는 최대 길이 가 3.20~3.56m 내외이고, 면적은 7호가 12.2㎡로 가장 큰 편이나, 전체적으로 10㎡ 내외로 집자리 사이의 차이는 거의 없었다. 1호는 다른 집자리와는 달리 화재로 폐기되어 기둥, 벽체, 서까래와 함께 다량의 민무늬 토기 편 등이 잘 남아 있으며 벽 가장자리에는 너비 0.06~0.14m, 깊이 0.03~0.05m 정도의 도랑(壁溝)이 돌아가고 있다. 이 외 다른 집자리 내부에서는 별다른 시설은 확인되지 않고, 바닥면은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유물은 민무늬 토기슴베 간 돌살촉(一段莖式磨製石鏃), 숫돌(砥石) 등이 출토되었다.

구덩이는 구릉 정상부(능선)에서 사면부의 아랫 부분까지 30기가 넓게 분포한다. 대체로 개별적으로 거리를 두고 자리하고 있어 정형성이 파악되지 않으나, 1호와 2호와 같이 2기가 연접되었거나 14~18호 또는 25~28호처럼 4~5기가 군집된 예도 있다. 축조 방법은 생토층인 풍화 암반층을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굴광하였고 바닥면은 고르지 못하였다. 평면 형태는 원형과 타원형이며, 길이는 대부분 2m 내외이고, 깊이는 0.09~0.36m 내외이다. 작은 것은 0.54m(25호), 가장 큰 것은 3.1m(29호)로, 평면 형태에 따른 크기의 차이가 있다. 특히 1·2·5호 구덩이는 긴 지름 2.85~3m, 짧은 지름 2.25~2.43m, 깊이 0.1~0.15m로 다른 구덩이에 비해 큰 편이다. 구덩이의 성격은 내부에서 불탄 흙(燒土)과 다량의 목탄(木炭)이 확인되어 유구의 성격은 명확하지 않으나, 폐기(廢棄) 또는 토기 소성(燒成)과 관련된 시설 등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2호 내부에서 민무늬 토기 편, 가락바퀴, 돌살촉(石鏃) 등이 출토되었으며 29호에서는 다량의 민무늬 토기 편과 단면 원형과 삼각형의 덧띠 토기(粘土帶土器) 아가리 편이 출토되었다. 이외에도 뚜껑 편, 돌살촉, 갈판, 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다.

기둥 건물터는 구릉 능선에서 4기가 확인되었다. 1호는 북쪽 구릉 정상부에 위치하고, 서쪽 구릉 정상부에 2호와 3호가 위치한다. 1호는 기둥 구멍 10개가 원형에 가깝게 배치된 형태로 일반적인 건물 구조와는 다르며, 2호와 3호는 평면 형태가 방형으로, 전면 1칸, 측면 1칸으로 건물 구조와 크기가 거의 동일하다. 특히 4호는 전면 4칸, 측면 4칸이고 면적은 40㎡ 정도로 특수 목적으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도 기둥 구멍은 북쪽 구릉 능선부에 밀집되었는데, 배치 형태는 정형성을 찾기 어려웠다. 기둥 구멍의 크기는 지름 0.3~0.6m, 깊이 0.1~0.6m 정도이다. 기둥 구멍은 크게 3개 군집 양상을 보였는데, 가군은 8호 동쪽에, 나군은 가군 동쪽의 1호 집자리 북쪽에, 다군은 조사 지역 가장 북동쪽인 1호 기둥 건물터 동쪽에 각각 위치한다. 기둥 구멍의 상면에서 홈자귀(有溝石斧)와 가락바퀴가 출토되어 주변의 집자리와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지만 명확하지 않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2호 구덩이가 2350±40 BP로 기원전 3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산정리 유적은 고창 지역에서 처음으로 송국리식 집자리와 함께 삼각 덧띠 토기가 출토된 유적으로, 송국리 문화덧띠 토기 문화 사이의 결합과 변화를 종합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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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지표조사 1997년 서해안고속도로(군산-고창 간)건설 구간 내 문화유적지표조사 보고서 1997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발굴조사 2004년~2005년 고창의 주거지Ⅰ 2006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참고문헌

  •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1997). 서해안고속도로(군산-고창 간)건설 구간 내 문화유적지표조사 보고서.
  •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2006). 고창의 주거지Ⅰ. https://www.riss.kr/link?id=M13253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