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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암동 유적(仁川 黔岩洞遺蹟)

한국고고학사전


검암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인천 검암동 유적, 인천 검암동 움무덤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인천광역시 서구 검암동 산120-1 일원
관련 정보
성격 고분
키워드 움무덤, 널무덤, 한국식 동검, 주조 철 도끼, 삼각 덧띠 토기, 긴 목 항아리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구준모



설명

인천광역시 서구 검암동 산120-1 일원에 위치한다. 2011~2012년 인천 국제 공항 고속 도로 검암 IC 건설 사업의 일환으로 발굴 조사하여 초기 철기 시대 움무덤(土壙墓) 1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계양산의 서편 가지 능선 끝 자락에 위치하며 북·동·남쪽으로 해발 50m 내외의 낮은 구릉에 둘러싸여 있다. 서쪽으로는 약 5km 거리에 서해가 위치하며, 북동쪽으로 약 10km 거리에 한강 본류가 흐른다. 유적은 하동말 유물 산포지에 속해 있으며, 남쪽으로 1km 지점에 인천 경서동 유적이 있다.

움무덤은 구릉의 남사면 끝 자락(해발 15.2m)에서 확인되었으며 장축(長軸)은 등고선과 직교하는 남북 방향이다. 구조는 널무덤(木棺墓)으로 구덩이 경사면 하단부인 남쪽 짧은 벽이 삭평으로 인해 유실되었고, 토층과 바닥면의 형태, 남아 있는 목관의 흔적을 고려하였을 때 판재(板材)로 조립한 널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구덩이의 크기는 길이 1.7m, 너비 0.63m, 깊이 0.23m이며 목관흔은 길이 1.34m, 너비 0.31m이다.

출토 유물은 금속류와 토기류로 구분된다. 금속류는 한국식 동검(韓國式銅劍) 1점, 주조 철 도끼(鑄造鐵斧) 편, 용도 미상의 단조 철기(鍛造鐵器) 편 1점, 철 편 1점이 확인되었다. 토기류는 삼각형의 덧띠 토기(粘土帶土器) 아가리 편과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가 산발적으로 출토되었다.

한국식 동검은 구덩이에서 시신의 머리 부분에 해당되는 북쪽 짧은 벽 서쪽 모서리 움벽에 연접하여 검의 끝부분(鋒部)이 바닥에 1.9cm 정도 박혀 세워진 상태로 출토되었다. 이는 매납(埋納) 당시 의도적인 의례 행위로 판단된다. 유사한 사례로 함평 장년리 당하산 유적의 움무덤에서 검의 끝 부분이 박혀있는 상태로 출토된 것이 있다. 철기 3점은 한국식 동검 주변의 보강토(補强土)에서 출토되었다. 부식에 의해 편만 확인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수습한 동검 편들이 완전한 형태로 복원되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파쇄한 후 널 상부에 뿌린 것으로 판단된다. 형태가 명확하지 않은 단조 철기는 동 시기 출토사례로 볼 때 쇠끌(鐵鑿)일 가능성이 있다.

토기류는 삼각 덧띠 토기 편이 구덩이에서 시신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북벽 동쪽 모서리에서 확인되고, 긴 목 항아리(長頸壺) 편이 구덩이 중앙 부근에서 출토되었다. 대부분의 토기들이 깨져 부서진 상태로 구덩이 퇴적토 내에서 산발적으로 확인되는데 이 역시 의도적으로 파쇄한 후 시신의 안치 과정에서 뿌린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식 동검은 전체적인 형태로 보았을 때 이른 시기의 동검으로 판단된다. 특히 공반 유물인 삼각형의 덧띠 토기는 인천과 경기도 무덤 유적에서 한국식 동검과 함께 출토된 예가 없었다. 또한 무덤 출토 주조 철부와 단조 철기는 기존 출토 사례로 보았을 때 전국계(戰國系) 철기가 유입된 이후인 대략 기원전 2세기에 한국식 동검과 덧띠 토기와 함께 확인되는 경향이 강하였다. 이러한 경향들을 종합하여 볼 때, 검암동 유적 움무덤은 한국식 동검 문화가 발전·확산되고 삼각형의 덧띠 토기가 출현하며, 중국 전국계 철기 문화가 유입된 이후인 기원전 2세기경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11년 07월 18일~2012년 05월 24일 인천 검암동 유적 2014 중부고고학연구소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