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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Скифская культура)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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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시대 초기철기
지역 러시아 흑해 북안의 초원 지역
관련 정보
유적 멜구노프 유적, 체르토믈리크 쿠르간
키워드 청동 무기, 말갖춤, 동물 장식, 쿠르간, 스루브나야 문화, 사르마트 문화, 돌방무덤, 돌무지덧널무덤, 순장, 동복, 스키토-시베리아 유형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강인욱



설명

기원전 7~3세기경까지 흑해 북안의 초원 지역에서 유목 민족인 스키타이족에 의해 형성된 초기 철기 문화이다. 스키타이인은 사르마트인(Сарматы)에 의해 멸망하였으며, 사르마트인도 유목 민족으로 한동안 초원을 지배하다가 훈족에 의해 멸망한다. 이란 계통으로 알려진 스키타이인에 대한 기록은 헤로도토스의 『역사(歷史)』를 비롯한 여러 그리스 기록에 남아 있다. 그리스인은 스키타이 동쪽 초원 지대에 거주하는 유목 민족을 통칭하여 사카인(Саки)이라고 했는데, 이는 중국 기록의 색인(塞人)에 해당한다.

스키타이는 아시리아의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676~652년에 등장한다. 스키타이인 이전에 살았던 킴메르인(Cimmerians)이 스키타이에 의해 밀려났다는 기록이 기원전 722~715년에 나오는 것으로 볼 때 스키타이 문화는 기원전 8세기경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스키타이족의 전성기인 기원전 6~4세기에는 흑해 연안 돈(Дон)강에서 다뉴브 강에 이르는 지역에 풍부한 유적을 남겼다.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스키타이는 분포 지역과 경제 행위 등의 차이에 따라 왕 스키타이, 농경 스키타이, 경작 스키타이, 유목 스키타이의 4개 집단 등이 있었다고 한다.

스키타이의 유물로는 소위 ‘스키타이 3요소’라고 불리는 청동 무기, 말갖춤(馬具), 동물 장식(禽獸裝飾)이 대표적이다. 무덤은 구덩이(墓壙)에 통나무로 만든 나무방(木室)을 짜고 그 안에 덧널(木槨)을 넣고, 돌을 쌓은(積石)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墓)이 주를 이룬다. 스키타이 3요소는 스키타이 문화 뿐 아니라 동쪽으로는 중국 오르도스 지역에 이르는 넓은 유라시아 초원 지대에서 거의 동시에 나타난다. 그래서 유라시아 전역에 확산된 스키타이 문화와 유사한 유목민의 기마문화를 통칭하여 “스키토-시베리아 문화(Скифо-сибирская культура)”, “스키토-시베리아 유형(Скифо-сибирский тип)” 또는 “스키토-시베리아의 세계”라고 부른다. 이러한 명칭은 20세기 중엽까지는 스키타이의 청동기 문화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전파된 것으로 보았지만, 지금은 시베리아 자체에서 기원하였다는 설이 더 유력하기 때문이다. 그밖에 유라시아의 동쪽과 서쪽에서 동시에 기원하였다는 설도 제시되었다. 스키타이 문화는 기원전 7세기 말엽에 확인된다. 하지만 대형 나무방 무덤(木室墳)과 같은 일부 요소를 제외하면, 이 지역의 토착 청동기 문화인 스루브나야 문화(Срубная культура)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스키타이의 역사와 문화는 기원전 7~6세기의 전기와 기원전 5~4세기의 중기, 그리고 기원전 3~2세기의 후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전기는 스키타이족이 흑해 북안의 초원 지역으로 진입하여 자신의 문화를 성립시키던 시기이다. 이 시기에 해당하는 유적은 많지 않다. 기원전 6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키로보그라드(Кировоград)의 멜구노프 유적(Памятник Мельгунов)이 대표적이다. 유적과 유물 전반에서 나타나는 양상으로 보아 유목적, 군사적 성향이 매우 강하게 나타나며 중기에 출현하는 정착된 형태의 촌락이나 농경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중기는 스키타이 문화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며 대형 쿠르간(Курган)이 쓰인 전성기이다. 체르토믈리크 쿠르간(Курган Чертомлык)은 높이 약 20m이며, 매장 주체부를 포함한 총 4개의 무덤방이 발견되었다. 왕을 묻은 무덤방 주위에는 왕비, 시위병, 노예, 말을 순장(旬蔣)한 무덤방들이 배치되어 있다. 또한, 다양한 그리스계 유물이 확인되어 귀족을 중심으로 급격한 그리스화가 이루어졌다는 기록을 뒷받침한다. 한편, 중기의 각 성지에는 농업과 수공업터가 발견되어 다양한 산업이 지역별로 분화·발전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중기에는 전통적인 통나무 무덤방 대신 계단식의 아치를 가진 돌방무덤(石室墓)이 나타난다. 역동적이고 과장되게 표현한 맹수나 사슴과 같은 우제류(牛蹄類) 동물이 장식의 주요 모티브로 사용되었다. 이 시기의 동물 장식은 전 유라시아 초원 지대에서 널리 쓰였지만, 그리스적인 예술 표현 기법도 널리 사용되었다.

중기부터 스키타이는 사르마티의 지속적인 공격으로, 그 영역이 크림반도로 축소되기 시작하였다. 후기인 기원전 3~2세기 스키타이 문화는 거의 사라지고 사르마트의 문화가 번성하는 흉노-사르마트기가 성립된다. 그러나 사르마트의 문화 역시 스키타이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문화적인 전통은 지속된다고 볼 수 있다. 단검은 원형 고리가 달린 것이 주류를 이루며, 장검(長劍)도 출현한다. 또한, 동복(銅辯)이나 유공식(有孔式) 살촉, 토기 등에서 스키타이의 문화적 전통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