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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푸 유적(北京 白浮遺蹟)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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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동의어 베이징 바이푸 유적, 북경 백부 유적(北京 白浮遺蹟)
시대 청동기
국가 중국
소재지 중국 베이징시(北京市) 창핑구(昌平區) 마츠커우진(馬池口鎭) 바이푸촌(白浮村)의 룽산산(龍山) 자락
관련 정보
성격 고분
키워드 덧널무덤, 요갱, 영수도, 북방계 청동기, 중위안계 청동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정열



설명

중국 베이징시(北京市) 창핑구(昌平區) 마츠커우진(馬池口鎭) 바이푸촌(白浮村)의 룽산산(龍山) 자락에 위치한다. 1975년 도굴되지 않은 덧널무덤(木槨墓) 3기(M1~3)를 조사하였다. 무덤은 장방형이며, 덧널 내부에 널(棺)이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M2는 무덤 구덩이를 판 후 백색 점토질의 흙(白膏泥)을 바닥에 깔았다. 덧널 설치 후 무덤 구덩이와 덧널 사이를 채운 예도 있다. 매장 방식은 바로 펴묻기(仰臥伸展葬)(M1·2)와 엎어묻기(俯身葬)(M3)하였으며, 피장자의 머리 방향은 모두 북쪽이다. M2·3에는 요갱(腰坑)이 설치되었다.

출토 유물은 토기, 청동기, 석기, 옥기, 골각기, 아기(牙器)복갑(卜甲), 복골(卜骨) 그리고 패식(貝飾) 등 모두 600여 점이 확인되었으나, 각 무덤별로 구분하여 보고되지는 않았다. 토기류는 연당력(聯襠鬲) 2점과 방동정(仿銅鼎) 1점이 확인되었다. 껴묻거리 대부분은 청동기로, 과(戈), 비모(柲冒), 극(戟), 도(刀), 단검(短劍), 비수(匕首), 부(斧), 월(鉞), 모(矛), 회(盔), 궁형기(弓形器) 등의 무기(兵器), 부, 분(錛), 착(鑿) 등의 공구, 관이호(貫耳壺), 궤(簋), 정(鼎) 등의 예기(禮器) 그리고 관(輨), 세(軎), 할(轄), 표(鑣), 함(銜), 란(鑾), 당로(當盧), 절약(節約), 각종 동식(銅飾)차마기(車馬器)가 확인되었다. 이밖에 지석(礪石), 추(錘) 등의 석기와 과, 병형식(柄形飾), 휴(觽)와 각종 널 장식(棺飾) 등의 옥기 등도 소량 출토되었다.

바이푸 유적은 무덤을 만든 사람이 중위안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인지 현지인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 무덤 구덩이의 형태와 널방의 구조, 널방 외측 백색 점토의 충전, 널장식의 존재 등은 중위안 지역의 묘제를 충실하게 따른 것으로 보인다. 요갱 역시 은허(殷墟)에서 발견된 상대(商代) 무덤에서 빈번하게 확인된다. 력, 정 등의 토기 역시 산시성 시안 장자포(張家坡), 허난성 쥔현 신춘(辛村), 베이징시 팡산 류리허 등에서 발견된 서주 시대 무덤 출토품과 유사한 양식이다. 호, 궤, 정 등의 청동 예기와 과, 월 등의 무기 및 분, 착 등 각종 공구 및 차마기도 중위안계이다. 하지만 전형적인 북방계 청동기인 각종 단검, 영수도(鈴首刀), 장조형도(長條形刀), 관공과(管銎戈), 관공부(管銎斧), 투구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단검과 도의 자루에 장식된 각종 동물 조상과 방울(鈴) 등은 북방 문화의 전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묘제, 장제 및 중위안계 청동기에 주목하는 연구자는 이 무덤이 중위안에서 이주한 사람의 무덤으로 판단한다. 반면 북방계 청동기에 주목하는 연구자는 현지 토착민의 무덤으로 간주한다.

두 번째 논쟁은 무덤의 조영 시기에 대한 것이다. 조사자는 껴묻거리의 상당수가 상나라 말기의 것과 잘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유사한 점, 덧널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수치가 3070±90 BP(보정 연대 기원전 1120±90년)인 것에 근거하여 무덤의 연대를 서주 전기(기원전 11세기경)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출토 청동 예기와 연당력의 형태가 서주 전기까지 소급되기 어려워 서주 중기경(기원전 10~9세기)에 조영된 것이라 주장하는 연구자도 있다. 연당력의 형태만으로 연대 귀속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또한, 호, 정, 궤 등 청동 예기 양식은 서주 중기 이후에도 볼 수 있어 무덤들의 연대를 서주 전기로 특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 때문에 현재에는 무덤의 연대를 서주 중기인 기원전 10~9세기라는 견해가 받아들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