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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거동 유적(晋州 平居洞遺蹟)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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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동의어 진주 평거동 유적
시대 청동기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상남도 진주시 평거동 797·897·1056·1073-5·1120-1·1130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도랑, 단 시설, 돌널무덤, 묘역식 고인돌, 기둥 건물터, 송국리 단계, 함정, 경작 유구, 제사 유구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송영진



설명

경상남도 진주시 평거동 797·897·1056·1073-5·1120-1·1130 일원에 위치한다. 택지 개발 사업으로 3지구는 2005~2009년, 4지구는 2009~2010·2012년 구역을 나누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집자리 74기, 기둥 건물터(高床式建物址) 9기, 구덩이(竪穴) 456기, 고인돌 26기, 돌널무덤(石棺墓) 10기, 움무덤(土壙墓)3기, 도랑(溝) 179기, 함정 133기, 기둥 구멍군(柱穴群) 2개소, 토기군(土器群) 6개소, 돌더미(集石) 7기, 제사 유구 2기, 제단 1기, 경작 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이 중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유구는 집자리 37기, 구덩이 9기, 도랑 4기, 무덤 2기이다. 유적은 남강의 지류인 경호강과 덕천강이 만나서 크게 굽이쳐 흐르는 남강의 충적 대지에 입지한다.

3-1지구의 동쪽 낮은 구릉지에서는 동서 방향으로 13기의 집자리가 확인되었다. 자연 제방의 가장자리를 따라 2~3기씩 나란하게 배치되었다. 형태는 장방형이 대부분이며, 면적에 따라 25㎡ 내외의 소형, 38~51㎡의 중형, 92~165㎡의 대형으로 구분된다. 7호는 길이 17.6m, 너비 9.4m로 가장 크다. 내부 시설로는 화덕 자리, 주춧돌(礎石), 기둥 구멍, 저장 구덩이, 단 시설(段施設) 등이 확인된다. 화덕은 한쪽으로 치우쳐 1기가 확인되며, 돌 깐 돌 두름식(石床圍石式)돌 두름식(圍石式)으로 구분된다. 주춧돌은 6·7·11·12호에서 확인되었는데, 모두 돌 깐 돌 두름식 화덕 자리가 설치되었다. 주춧돌 주변에는 기둥 구멍이나 불탄 흙(燒土)이 확인되어 보조 기둥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단 시설은 2~5호에서 확인되는데, 양쪽 긴 벽을 따라 설치되거나, 네 벽면 전체에 설치되었다. 높이는 바닥보다 0.05~0.1m 정도 높다. 저장 구덩이는 4호에서 확인되며, 대형 항아리가 묻혀있다. 이외에 3·12호에는 출입 시설이 확인되었다.

3-2-1지구에서는 북서쪽 낮은 구릉을 따라 동서방향으로 이른 시기인 집자리 4기, 구덩이 9기, 대상 유구 4기 등이 확인되었다. 4-1지구와 연결되며, 평거동 조사 지역 전체의 중앙부에 해당한다. 집자리는 1·2호 대형 장방형, 3호 작은 방형, 4호 작은 장방형으로 구분된다. 1호에서는 무시설식 화덕 자리 2기와 단 시설, 저장 구덩이, 기둥 구멍 등의 내부 시설이 조사되었다. 2호에서는 돌 깐 돌 두름식 화덕 자리와 저장 구덩이, 출입 시설과 2열 4개의 주춧돌, 벽 기둥 구멍 등이 확인되었다. 3호에서는 무시설식 화덕 자리, 4호에서는 돌 두름식 화덕 자리가 조사되었다. 기둥 구멍은 발견되지 않았다.

3-2-1지구에 연속하는 4-1지구에서는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집자리 5기가 확인되었다. 2호는 1호를 파괴하고 축조되었다. 화덕 자리는 집자리 중앙에서 한쪽으로 치우쳐 설치되었다. 1호를 제외하고 모두 돌 깐 돌두름식 화덕 자리가 1기씩 설치되었다. 4호의 화덕 자리는 타원형에 가깝다. 1호에서는 불탄 흙으로 다진 기둥 구멍이 확인되었고, 4호에서는 화덕 주변에 중심 기둥으로 판단되는 기둥 구멍이 조사되었다. 3·5호에서는 벽을 따라 일정하게 돌아가는 벽 기둥 구멍이 확인되었다. 단 시설은 벽면을 따라 설치되어 있는데, 높이나 폭이 일정하지 않다. 저장 구덩이는 3·5호의 남동쪽 모서리에서 확인되었다.

4-2지구는 평거동 조사 구역에서 가장 서쪽에 해당하며, 15기의 집자리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낮은 구릉지를 따라 동서 방향으로 분포한다. 형태는 장방형과 방형으로 구분되며 장방형에는 화덕 자리, 불탄 흔적, 기둥 구멍, 주춧돌, 단 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모두 무시설식이고 중앙 축을 따라 1~3기가 배치되었다. 기둥 구조는 주춧돌, 불 다짐 처리한 흙, 기둥 구멍 등으로 구분되는데, 서로 혼합하여 사용되었다. 3호의 기둥 받침돌은 열을 이루고, 벽 기둥 구멍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었다. 9~14호 집자리는 작은 방형이며, 중앙에 화덕 자리가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 집자리의 출토 유물은 돋을띠 골무늬 토기(刻目突帶文土器), 돋을띠 마디 토기(節狀突帶文土器),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손잡이 달린 토기(把手附土器), 가로 구획무늬 토기(橫帶區劃文土器), 대형 항아리, 붉은 간 토기, 턱슴베 간 돌살촉(二段莖式石鏃), 슴베 없는 간 돌살촉, 반달돌칼, 물고기 모양 돌칼,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부리 모양 석기(猪形石器), 원반 모양 석기(環狀石器), 숫돌(砥石), 옥(玉) 등이다. 3-1지구의 3·4호 집자리에서는 채색 토기가 출토되어, 서북 지역의 신암리 유적과 유사하고, 부리 모양 석기는 동북 지역 출토품과 유사하다. 3-2-1지구에서는 피 홈(血溝)이 있는 간 돌검 편이 출토되었는데, 초기 형태의 간 돌검으로 추정된다. 또한 다양한 형태의 옥과 홈이 있는 숫돌, 석영제 가공구 등이 출토되어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부터 옥 가공이 이루어졌다. 4-2지구의 9~14호의 집자리에서는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가 주로 출토되는데,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에서 송국리 단계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양상을 나타낸다.

무덤 가운데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것은 4-1지구에서 확인되었다. 7호 돌널무덤은 6매의 판돌로 벽을 쌓고, 1매의 판돌로 바닥을 깔았으며, 3겹으로 뚜껑돌을 덮었다. 유물은 동쪽 벽에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여, 붉은 간 토기와 가지무늬 토기(彩文土器)를 부장하였다. 8호 돌널무덤은 소형 구덩이를 파서 긴 벽을 설치하고, 그 사이에 판돌을 끼워 ‘ᄑ’자 모양으로 축조하였다. 유물은 동쪽 벽과 무덤 구덩이 사이에 껴묻었는데, 아가리가 넓게 벌어지고 몸통이 둥근 붉은 간 토기로 이른 시기에서 송국리 단계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해당한다.

송국리 단계는 유구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수량도 증가한다. 집자리는 3-1지구에서 22기, 3-2-1지구에서 11기, 4-2지구에서 4기가 확인되었다. 형태는 방형 19기, 원형 15기로,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구덩이 양쪽 가장자리에 기둥 구멍이 설치되었다. 타원형 구덩이 내부에는 대형 숫돌과 석기 부스러기, 돌가루 흔적 등이 확인되어 석기 제작과 옥 가공 등을 위한 작업장으로 추정된다. 구덩이에는 바깥으로 이어지는 도랑이 설치된 예도 있다. 기둥 구멍은 대부분 타원형 구덩이 바깥에 배치되었다. 기둥 구멍에는 바닥에 구멍이 뚫린 토기가 엎어진 경우도 있어 축조 과정에서 의례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유물은 구멍무늬 토기, 골아가리 토기가 일부 확인되며 대부분 민무늬 토기이다. 이외에 아가리가 직립 또는 내경하는 토기, 외반하는 토기, 뚜껑, 손잡이 달린 토기(把手附土器), 붉은 간 토기, 돌칼, 간 돌살촉, 홈자귀(有溝石斧), 간 돌검, 가락바퀴, 그물추, 숫돌 등이 출토되었다.

무덤은 3-1지구에서 묘역식 고인돌 4기, 돌널무덤 3기, 3-2-1지구에서 고인돌 13기, 돌널무덤 9기, 움무덤 7기, 4-1지구에서 고인돌 1기가 조사되었다. 고인돌은 상부 구조에 따라 덮개돌(上石)이 있는 것, 묘역이 있는 것, 흙을 쌓아 올리거나 표시석이 설치된 것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묘역을 만든 경우는 다시 규모에 따라 대형, 중형, 소형, 형태에 따라 장방형, 방형, 타원형 등으로 구분된다. 하부 구조인 매장 주체부와 나머지 무덤은 돌널, 나무널, 혼합형, 무시설 등으로 구분된다. 유물은 토기 중에는 붉은 간 토기가 주로 부장되며, 묘역과 주구에서는 붉은 간 토기와 함께 민무늬 토기도 출토되었다. 석기는 통자루 돌검(一段柄式石劍), 슴베 돌살촉(一段莖式石鏃), 둥근옥(丸玉), 곱은옥(曲玉), 대롱옥(管玉) 등이 출토되었다.

구덩이는 원형, 타원형, 방형, 부정형 등이며 안에 특별한 시설은 없다. 필요에 따라 저장 구덩이, 야외 화덕 자리, 취사장, 폐기장, 의례 유구, 제작장, 토기 가마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짐작된다.

도랑 대부분은 띠 모양(帶狀)이며, 3-2-1지구에 집중되었다. 대상 유구는 성격이 불명확하지만, 내부에 불탄 흙과 불탄 나무가 다량으로 혼입되어 있어 토기 가마 또는 취사용도 등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일정한 경계를 이루고, 가운데 화덕이 있는 경우 화덕을 보호하는 구조물로 보거나, 건물지로 추정된다. 이외에 도로와 관련된 도랑도 확인되었다. 도랑과 대상 유구도 한 가지 성격의 유구가 아니라 형태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둥 건물은 주변 유구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배치되었다. 형태는 대부분 장방형이며, 2×1칸, 2×2칸, 3×2칸, 4×2칸, 6×2칸, 9×3칸 등 다양하다. 용도는 창고, 주거용일 가능성이 있다. 이 중 3-2-1지구의 가2호는 탁월한 규모를 보여 마을 공공시설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함정은 3~12m 간격으로 줄지어 배치되었다. 형태는 타원형과 원형이 대부분이며, 단면 형태에 따라 ‘Y’, ‘U’, ‘V’자 모양으로 구분되는데, 상단을 넓게 파고 좁아지다가 수직으로 떨어지는 ‘Y’자 모양이 중심을 이룬다. 함정에는 대부분 나무 창(木槍)을 박은 기둥 구멍 흔적이 확인되지만, 평거동 함정에는 대부분 나무 창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살상용보다는 생포용 함정으로 추정된다. 함정은 3-2지구에서 4지구까지 열을 지어 길게 이어진다. 평거동 유적 함정의 축조 시기는 송국리 단계로 보기도 하지만, 늦은 시기의 집자리를 파괴하고 설치되거나 내부에서 굽다리 토기(豆形土器)가 출토된 경우도 있어 원삼국 시대로 보기도 한다.

유적에는 대규모의 경작 유구가 조사되었는데, 은 3-1지구와 4-1지구에서만 확인되었다. 자연 제방과 구릉 말단부 사이의 배후 습지에 조성되었는데, 계단식을 이루며 소규모로 구획되었다. 1·2층을 포함한 전체 면적은 9,000㎡를 넘으며, 400면 이상으로 구획되었다. 논둑과 수로, 수구 등이 나타나며, 구덩이와 도랑, 돌더미 등이 함께 확인되었다. 논 면(畓面)의 단차는 0.02~0.1m이다. 밭은 3·4지구 전체에 폭넓게 조성되어 있는데, 조사된 면적은 82,773㎡이며, 46면으로 구분된다. 경사면의 이랑 방향은 등고선과 직교하지만, 평탄면의 이랑 방향은 다양하게 나타나 대평리 옥방 유적의 밭 이랑과 구성이 같다. 구조는 두둑과 고랑, 경계구로 구성된다. 내부에서 구덩이, 고인돌, 함정 등과 중복되었다. 경작 유구는 비교적 저지대에 위치하며, 생활 유구와는 공간이 구분되어 있다.

유적은 동서 방향으로 길게 뻗은 미고지(微高地)를 따라 취락이 분포하며, 지형에 따라 집자리의 장축, 주축 방향이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른 시기에는 세 군데의 미고지 위에 중·대형의 장방형 집자리가 중심을 이루며 마을을 형성하였다. 출토 유물을 통해 집자리의 시기는 차이를 보이며 동쪽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조성 시기가 늦어진다.

송국리 단계가 되면 취락 구성 요소가 다양해지지만, 유적은 동서 방향으로 길게 분포하며, 미고지를 따라 3군으로 구분된다. 각 취락마다 미고지에는 생활 유구가 배치되고, 주변으로 매장 유구와 의례 유구, 사면부에는 , 배후 습지에는 논이 분포한다. 유구의 성격과 지형에 따라 공간 구분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시·발굴조사 2008년 10월 07일~2008년 01월 23일 진주 평거 4도시 개발사업지구 내 유적(Ⅱ) 발굴(시굴)조사 2012 동서문물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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