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전동 유적(大邱 太田洞遺蹟)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대구 태전동 유적 |
| 시대 | 청동기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대구광역시 북구 태전동 1112 일대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구덩이, 도랑, 깊은 바리 토기, 박편, 항아리 모양 토기, 가락바퀴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이석범 |
설명
대구광역시 북구 태전동 1112 일대에 위치한다. 대구 매천 택지 개발 사업에 앞서 2007~2008년 조사하여 집자리 13기, 구덩이 1기, 도랑(溝) 3기, 물길(河道) 1기를 확인하였다. 칠곡 분지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팔거천(八筥川) 하류 충적지에 입지한다. 전체적으로 북서편(해발 28.8m)에서 자연하천이 흐르는 남동쪽(해발 28.1m)으로 약간 낮아지는 지형이다.
집자리는 방형 1기, 말각 방형 2기, 장방형 6기, 세장방형 1기로, 일부는 파괴되어 정확한 형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벽 도랑(壁溝), 기둥 구멍, 저장 구덩이, 작업 시설 등이 있다. 가장 큰 집자리는 6호로, 길이 13.74m, 너비 4.1m, 깊이 0.1m의 세장방형이며, 바닥 면적은 56.9㎡이다. 집자리 가운데에 3개의 화덕 자리와 중심 기둥 구멍을 일렬로 설치하였고, 벽 가장자리에는 작은 기둥 구멍이 확인된다. 남쪽과 북쪽의 짧은 벽 모서리에 저장 구덩이가 위치하며, 북쪽 짧은 벽에는 석재 2점을 깔고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를 두었다. 말각 방형인 8·9호는 중앙 구덩이를 갖춘 송국리식 집자리로, 구덩이 안에 숯과 소토(燒土)가 확인되어 화덕 자리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작업 시설이 설치된 집자리는 1·6·10호로 큰 모룻돌(臺石) 주위로 다수의 박편, 숫돌(砥石)이 확인되어 석기 제작 공간으로 판단된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붉은 간 토기가 확인되었다. 무늬는 구멍무늬(孔列文), 골아가리(口脣刻目文), 짧은 빗금 구멍무늬(短斜線孔列文), 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가 확인되었다. 석기류는 간 돌검, 슴베 없는 간 돌살촉(無莖式磨製石鏃), 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부리 모양 석기, 반달 돌칼,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기둥 모양 돌자귀(柱狀片刃石斧), 달도끼(環狀石斧), 찰절석기(擦切石器), 모룻돌, 갈돌(碾石), 숫돌, 미완성 석기가 출토되었으며, 이외에 가락바퀴, 그물추 등이 확인되었다.
물길은 유적 가운데를 ‘S’자 모양으로 가로질러 북에서 남으로 흐르며, 조사 구역 밖으로 이어진다. 길이 218m, 너비 3.6~21m, 깊이 0.5~1.2m로, 도랑 가운데를 기준으로 북쪽은 넓고 얕으며 바닥에서 돌무지(集石)와 나무 기둥(木柱)이 확인되며, 남쪽은 좁고 깊은 형태이다. 유물은 매몰층에서 다량의 석기와 토기가 출토되었으며, 유물 구성은 집자리 출토품과 동일하다. 바닥층에서는 목기, 초본류, 복숭아씨, 도토리 등이 확인되었다. 목기(木器)는 도끼자루 3점, 절굿공이 2점, 고무래 1점을 비롯하여 다량의 가공목(加工木)과 자연목(自然木)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농공구는 인근의 대구 서변동 유적과 안동 저전리 유적의 것과 유사하다.
유적은 장방형 집자리와 물길이 조성된 뒤 방형 집자리가 축조되면서 생계 활동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모룻돌, 숫돌, 박편, 미완성 석기 등의 석기 제작과 관련된 공구류가 전체 석기의 70%이며 도끼 자루, 절굿공이, 고무래와 다량의 가공목이 물길 내에서 출토되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 매천동 마을은 석기와 목기를 전문적으로 제작하였던 집단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