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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동·행암동 유적(光州 老大洞·杏岩洞遺蹟)

한국고고학사전
Admin (토론 | 기여)님의 2026년 5월 4일 (월) 10:5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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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동·행암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광주 노대동·행암동 유적, 광주 노대동 구암 유적, 광주 노대동 신기 유적, 광주 덕남동 덕남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광주광역시 남구 행암동 568(노대동·행암동), 노대동 157-1(신기)·노대동 654-2(구암)·노대동 768(신기Ⅲ)·노대동 879(덕남)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고인돌, 구덩이, 도랑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수민



설명

광주광역시 남구 행암동 568(노대동·행암동), 노대동 157-1(신기)·노대동 654-2(구암)·노대동 768(신기Ⅲ)·노대동 879(덕남) 일원에 위치한다. 광주 효천2지구 주택 조성사업지역에 포함되어 2006~2009년에 시·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노대동·행암동 유적, 신기 유적, 구암 유적, 신기 유적Ⅲ, 덕남 유적으로 구분되고, 모두 반경 1㎞ 범위 안에 분포한다. 유적은 낮은 구릉들 사이의 저지대에 위치하고 북쪽으로는 지석강의 상류인 노대천이 동서로 흐르고, 남쪽으로는 낮은 산이 있다. 노대동·행암동 유적에서는 집자리 18기, 고인돌 5기, 구덩이 2기, 도랑(溝) 7기가 조사되었다.

노대동·행암동 유적(행암동 562)은 두 지점에서 청동기 시대 집자리 7기와 구덩이 1기, 도랑(溝) 1기가 확인 되었다.

1호 집자리를 제외한 나머지 6기는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6호 집자리는 평면 장방형이며 크기는 길이 5.3m, 너비 3.2m, 깊이 0.2m이다. 남서쪽 바닥에서 불에 그을린 흔적이 확인되었다. 가락바퀴 1점과 민무늬 토기 편이 출토되었다. 1~5호, 7호 집자리는 평면 원형이며 바닥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있다. 원형 집자리에서는 민무늬 토기 편, 돌살촉, 돌도끼, 미완성 석기가 출토되었다.

1호 구덩이는 평면 원형이고 민무늬 토기 편이 출토되었다. 1호 도랑은 남북으로 이어져 있는데, 남쪽 부분 일부가 파괴되었다. 도랑의 크기는 길이 63.4m, 너비 1.7~5.1m, 깊이 1.3m이다. 도랑 내부에서 민무늬 토기 편들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남쪽 끝부분에 있는 뻘층에서 나무 괭이가 출토되었다. 시굴 조사에서 갈돌(碾石) 3점과 숫돌(砥石) 1점이 수습되었고 자연목재도 확인되었다.

노대동 신기 유적(노대동 157-1)에서는 집자리 3기가 양호한 상태로 조사되었다. 평면 형태는 3기 모두 원형이고 바닥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되어 있다. 1호 집자리는 타원형 구덩이 양쪽에 기둥 구멍이 각각 3개씩 확인되었다. 1호와 3호 집자리의 내부에 다량의 숯이 있는 것으로 보아 화재로 폐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3호 집자리에는 타원형 구덩이가 하나 더 확인되어서 중복된 것으로 추정된다. 민무늬 토기 편, 돌검, 슴베 간 돌살촉(有頸式磨硏石鏃), 돌대팻날(扁平石斧), 삼각 돌칼이 출토되었다.

노대동 구암 유적(노대동 654-2)에서는 집자리 5기, 고인돌 5기, 구덩이 1기, 도랑(溝) 3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후대의 경작으로 인해 대부분 파괴되었다. 남아있는 상태로 보아 평면 형태는 원형과 말각 방형으로 추정되며 바닥 중앙에는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되어 있다. 민무늬 토기 편과 미완성 석기가 출토되었다. 고인돌은 동서 방향으로 열을 이루며 분포하고 있다. 3호 고인돌의 덮개돌(上石)에는 함안윤씨세장비(咸安尹氏世葬碑)가 세워져 있었다. 1호 고인돌과 3호 고인돌을 제외한 나머지에는 모두 후대에 새긴 한자가 음각되어 있다. 일부 고인돌은 덮개돌이 이동되어서 받침돌(支石)매장 주체부(埋葬主體部)가 노출되어 있었지만 대부분 하부 구조가 확인되지 않거나 파괴되어서 정확한 형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고인돌 내부에서는 민무늬 토기 편만 출토되었다. 이 외에도 덮개돌이 없는 무덤방 3기가 확인되었지만 남아있는 상태가 양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출토된 유물도 없어서 정확한 양상을 파악하기 어렵다. 구덩이는 유적의 남쪽에서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는 부정형이며, 민무늬 토기 편이 출토되었다. 도랑은 유적의 남서쪽에서 확인되었다. 3호를 제외한 2기는 심하게 삭평되었다. 내부에서 민무늬 토기 편이 출토되었다.

노대동 신기 유적Ⅲ(노대동 768)에서는 집자리로 추정되는 유구가 조사되었다. 집자리의 외곽선은 후대의 경작으로 인해 파괴되었고 송국리식 집자리의 중앙에 설치되었던 타원형 구덩이만 확인되었다. 타원형 구덩이 내부에서 망치돌과 석재편이 출토되었고 주변에서 돌도끼가 수습되었다.

덕남동 덕남 유적(노대동 879)에서는 집자리 2기와 도랑 3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 2기는 서로 250m 정도 떨어져있다. 1호 집자리는 해발 89m에 있는데, 북서벽 일부와 바닥 중앙에 설치된 타원형 구덩이만 남아있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2호 집자리는 해발 94m에 있는데, 동벽과 남벽 일부, 바닥 중앙에 설치된 타원형 구덩이가 남아있다. 내부 퇴적토에서 민무늬 토기 편이 출토되었고 타원형 구덩이 안에서 용도 미상의 석기가 출토되었다.

도랑은 유적 중앙에 위치하며 삼국 시대 도랑과 중복되어 있다. 1호 도랑은 자연 도랑에 의해서 북쪽 부분이 파괴되었고 남쪽은 삼국 시대 12호 도랑에 의해 파괴되었다. 크기는 남은 길이 9.4m, 너비 0.2~1m, 깊이 0.06m이다. 도랑 북쪽은 작은 깬돌들로 채워져 있었다. 바닥면에서 민무늬 토기 편이 출토되었고 주변에서 미완성 돌끌(石鑿)이 수습되었다. 2호 도랑은 삼국 시대의 12호 도랑에 의해 남쪽 부분이 파괴되었다. 크기는 남은 길이 2.9m, 너비 0.6m, 깊이 0.1~0.3m이다. 내부 퇴적토에서 민무늬 토기 편이 출토되었다. 3호 도랑은 교란으로 인해 남쪽 부분이 파괴되었다. 크기는 남은 길이 12.8m, 너비 3.8m, 깊이 1~1.4m이다. 도랑 바닥의 북동쪽 끝부분에는 작은 깬돌들이 깔려있었으며, 그 사이에서 민무늬 토기 편이 출토되었다. 남쪽 외곽선 밖에서 돌살촉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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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