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암리 서당 유적(完州 九巖里서당遺蹟)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완주 구암리 서당 유적, 완주 둔산리 서당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봉동읍 구암리 86-72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구덩이, 움무덤, 의례 시설, 집자리, 회곽묘, 검은 간 긴 목 항아리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천선행 |
설명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봉동읍 구암리 86-72 일원에 위치한다. 완주 테크노밸리 산업 단지 진입 도로 개설에 앞서 2014~2015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초기 철기 시대 움무덤(土壙墓)과 구덩이가 확인되었고, 그밖에 원삼국 시대 집자리, 구덩이, 고려~조선 시대 움무덤과 회곽묘(灰郭墓), 구덩이, 도랑(溝)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북동쪽의 수봉산(해발 420m), 봉실산(해발 327m)에서 흘러내려오는 능선을 따라 형성된 배매산(해발 123m)으로부터 남서쪽으로 뻗은 구릉의 말단부에 위치한다. 유적 남쪽은 만경강과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고, 서쪽에는 만경강으로 합류하는 석탑천과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다. 유적 남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곳에 완주 수계리 청등 유적이 위치한다.
유적은 동일 구릉의 가지 능선 상에 2개 지점으로 나누어진다. 두 지점 간 거리는 약 60m이다. 1지점에서 초기 철기 시대 움무덤 6기, 2지점에서 초기 철기 시대 움무덤 19기, 구덩이 16기가 확인되었다. 1지점 초기 철기 시대 움무덤은 구릉 서사면 말단부(해발 27~30m)에 나란히 분포하고, 장축 방향이 등고선과 직교한다. 2지점 움무덤은 구릉 정상부와 서사면에 분포하고, 단독으로 조성된 1호와 17호를 제외하고 크게 2개 군집을 이루며, 장축 방향이 등고선과 직교한다.
움무덤은 타원형을 띠는 것도 있지만, 대체로 장방형 또는 원형이고 길이는 1.76~2.56m로 편차가 있으나 주로 1.8~2.2m에 분포한다. 너비도 0.48~1.2m에 분포하고 대체로 0.6~0.9m이다. 장단비는 대체로 2.5에서 3사이이며, 잔존 깊이는 0.14~1.5m이다. 토층의 함몰 양상으로 보아 나무널, 통나무널, 나무널 뚜껑 흔적이 확인되나, 관의 구조와 규모 간의 상관성은 없다. 다만 나무 뚜껑 흔이 남아 있는 2지점 11·13·17호가 모두 중대형인 점이 특이하다. 통나무관은 판재관에 비해 사용 빈도가 낮은데, 완주 갈동 유적 4호, 덕동 유적 D-3호·F-1호, 전주 원장동 G유적 2·3·5호 무덤 등에서 확인된바 있다. 2지점 17호 움무덤 내부에서는 동쪽 짧은 벽 하단부에 벽면을 따라 3점의 석재가 놓여 있는데, 나무널을 고정시키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사한 사례가 완주 신풍 유적 가-2호에서도 확인되었다.
구덩이는 2지점에서만 확인된다. 움무덤 사이에도 있지만, 대부분 움무덤 군집과 조금 떨어진 곳에 모여 있어, 무덤과 관련된 의례 시설일 것으로 추정된다. 평면 형태는 타원형이 가장 많고, 말각 장방형, 말각 방형 등이 있으며, 지름은 0.96~3.56m이다. 초기 철기 시대 구덩이는 완주 갈동 유적 2기, 갈산리 유적 3기, 덕동 유적 11기, 상운리 유적 등에서도 확인된바 있다. 전라북도 지역 초기 철기 시대 구덩이는 단독 또는 집자리, 도랑과 함께 분포하나, 이와 달리 둔산리 서당 유적은 동 시기의 무덤 유적과 함께 분포하는 점이 특징이다.
움무덤에서는 청동기를 비롯하여 덧띠 토기(粘土帶土器), 검은 간 긴 목 항아리(黑陶長頸壺) 등이 출토되고, 구덩이에서는 유물이 출토되지 않거나 있더라도 민무늬 토기 편, 덧띠 토기 편, 굽다리 토기(豆形土器) 편 등이 출토되었다. 움무덤과 구덩이 간에 출토 유물 종류에 차이는 있지만, 시간차는 거의 없다. 검은 간 긴 목 항아리와 덧띠 토기의 형태, 청동 동사(2지점 4호·14호)와 유견(有肩) 청동 도끼(銅斧)(1지점 3호, 2지점 17호)의 출현, 좁은 청동 검(細形銅劍)의 형태, 껴묻거리 양상을 통해, 유적은 대체로 기원전 3세기 초~2세기 후엽에 조성되었다고 추정된다. 즉 완주 둔산리 서당 유적은 전라북도 지역 초기 철기 시대 문화가 황방산 일대의 원천천 유역으로 중심지를 이동하여 전라북도 각지로 확산되는 시기에 조성되었다.
한편, 청동기 종류는 다양하지 않고, 청동기를 한데 모아 껴묻기보다 개별 무덤에 하나씩 껴묻으려는 의도가 보이고, 덧띠 토기 보다 검은 간 긴 목 항아리를 선호하는 양상이 특징적이다. 철기가 없고, 청동제 거울이나 옥제 장신구 등도 출토되지 않는다. 움무덤 껴묻거리의 수는 유물이 없는 경우가 가장 많고, 유물이 있더라도 1점 또는 2점만 있어, 이 무덤을 조성한 집단들의 사회적 위계가 전주나 완주 지역의 중심지 집단들보다 낮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청동기의 성분분석 결과, 주석 함량이 비교적 높은데, 이는 철기 등장으로 인해 청동기의 비실용화가 진행된 상황을 반영한다. 납동위원소비의 경우, 유물마다 각각 다른 곳에서 채취된 납이 이용된 점이 밝혀졌으며, 유물 가운데 순창 동촌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의 납 동위원소와 유사한 수치를 나타내는 것도 있다. 따라서 청동기가 이 지역 일대에서 제작되어 유통되었다기보다 다른 지역으로부터 유통(유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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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전라문화유산연구원. (2017). 완주 둔산리2·둔산리 서당수계리 청등 유적. https://www.riss.kr/link?id=M148430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