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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리 유적(長城 月汀里遺蹟)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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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동의어 장성 월정리 유적
시대 청동기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라남도 장성군 남면 월정리 산70(가지구)·1-58(다지구)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송국리식 집자리, 민무늬 토기, 가락바퀴, 슴베 간 돌살촉, 돌칼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천선행



설명

전라남도 장성군 남면 월정리 산70(가지구)·1-58(다지구) 일원에 위치한다. 광주 진곡산단 진입 도로 개설 공사에 앞서 2013~2014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북쪽의 불태산에서 뻗어내린 구릉의 가지 능선상에 위치한다. 동쪽으로 4㎞ 거리에 영산강 본류가 흐르고 서쪽으로는 영산강의 지류인 풍영정천이 흘러 주변으로 넓은 충적지가 형성되며, 해발 40~50m의 나지막한 구릉이 발달해 있다. 유적은 4개 지구(가·나·다·라)로 나뉘는데, 청동기 시대 유구는 가지구에서 집중적으로 확인되며 다지구에서 구덩이 2기가 확인되었다. 가지구에서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 구덩이, 도랑(溝), 초기 철기 시대 움무덤(土壙墓)을 비롯하여 구석기 시대, 삼국 시대, 통일 신라 시대, 조선 시대에 해당하는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가지구 집자리는 모두 5기이다. 1호는 길이 15.56m에 이르는 세장방형의 대형 집자리이고, 나머지는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되고 그 내부에 기둥 구멍이 있는 송국리식이다. 대형의 세장방형 집자리는 사면 하단부가 유실된 탓에 현재 화덕 자리가 2곳만 남아 있으나,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벽 도랑(壁溝)이 둘러져 있다. 내부에서 민무늬 토기편, 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고, 인근의 장성 장산리2 유적에서도 비슷한 집자리가 확인되었다. 집자리의 형태와 유물로 보아 시기는 기원전 11~10세기로 추정된다.

송국리식 집자리는 원형(2호)과 방형(3·4호)으로 구분되는데, 2호는 정상부쪽에서 단독으로 조성되고 3호와 4호는 중복되었다. 내부에서 민무늬 토기 편을 비롯하여 슴베 간 돌살촉(一段莖式磨製石鏃), 돌칼(石刀)이 출토되었다.

집자리의 양쪽으로 일정거리 떨어진 곳에서 초기 철기 시대 움무덤이 3기 확인되었다. 모두 말각 세장방형으로 길이 1.94~2.54m, 너비 0.74~0.9m이다. 1호에서는 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 슴베 없는 간 돌살촉(無莖式磨製石鏃)이 출토되었고, 2호와 3호에서는 검은 간 긴 목 항아리(黑陶長頸壺), 덧띠 토기(粘土帶土器), 소형 검은 간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이 가운데 1호 출토 소형 슴베 간 돌검은 광주 평동 유적에서 덧띠 토기와 함께 송국리식 집자리에서 출토된 바 있어, 청동기 시대에서 초기 철기 시대로의 전환기에 해당한다고 판단된다. 덧띠 토기의 단면이 삼각형이므로 움무덤의 시기는 기원전 2세기말~기원후 1세기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