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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변동 유적(大邱 西邊洞遺蹟)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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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동의어 대구 서변동 유적
시대 청동기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 1766 일대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청동 도끼, 집자리, 기둥 구멍, 돌널무덤, 구덩이, 돌무지, 도랑, 붉은 간 토기, 단사선문, 겹아가리, 골아가리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유병록



설명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 1766 일대에 위치한다. 서변동 유적은 1964년 청동 도끼(銅斧) 출토지로 알려졌으며, 동·서변 택지 개발 과정에서 1998~2000년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집자리 48기, 기둥 구멍 3기, 돌널무덤(石棺墓) 6기, 구덩이 21기, 돌무지 8기, 도랑(溝) 2기, 옛 하천 등 총 92기가 확인되었으며, 이외에 신석기 시대, 원삼국 시대, 삼국 시대, 조선 시대 유구도 일부 조사되었다. 유적은 금호강의 지류인 동화천(桐華川)이 합류하는 지점의 서편의 충적 평야에 입지한다.

집자리는 장방형 18기, 방형 16기, 원형 1기로 구분된다.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인 장방형은 유적의 남쪽에 분포하고, 송국리식 집자리에 해당하는 방형 일부와 원형은 200m 떨어져 위치한다. 즉, 시기에 따라 영역의 차이가 확인되어 특징적이다. 장방형, 방형 집자리는 총 37기로, 대부분 내부에 화덕 자리가 있다. 방형 집자리는 장방형 주변에 위치하는 경향으로 보아 부속 시설일 가능성이 높다. 장방형 집자리는 길이 방향에 따라 북서-남동 방향 11기, 북동-남서 방향 19기로 구분된다. 집자리의 한쪽 짧은 벽에 길이 1.5m의 돌출된 출입구가 있는 8호와 계단식 출입구가 있는 27호가 있다. 특히 27호는 인접한 18·25호와 함께 집자리 바닥을 처음 사용 후 0.05m 두께로 흙을 깔아 두 번 이상 사용하였다. 이외에 집자리 벽면이나 모서리쪽에 저장 구덩이가 확인되는 예도 있다. 송국리식 집자리는 총 6기로, 타원형 구덩이과 바깥쪽에 기둥 구멍이 나란한 것이 2기, 기둥 구멍만 두 개 있는 것이 4기로 원형 집자리는 기둥 구멍만 있다.

기둥 건물은 3기로, 집자리 18호 동쪽에 같은 길이 방향으로 2기, 북쪽의 송국리식 집자리군 주변에 동서 방향으로 1기가 있어 이른 시기와 늦은 시기의 시설로 추정된다. 돌널무덤은 방형 집자리 지역에 5기가 확인되며, 모두 당시 하천 근처에 위치한다. 돌널 내부의 길이는 대부분 0.48~0.75m로 소형이며, 송국리식 집자리와 가까운 돌널무덤 6호는 길이 1.02m이다. 돌무지는 송국리식 집자리의 동쪽에 구획된 도랑과 ‘T’자 모양으로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며, 토기와 석기가 섞여 있다. 장방형이며,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하천은 동화천에서 갈라져 들어온 것과 서쪽 산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합류하여 남쪽으로 흘른다. 일부는 배후 습지(背後濕地)화 되어 내부에 나무 도끼 자루를 비롯한 목기(木器)와 씨앗 및 토기와 석기가 양호한 상태로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 중 이른 시기의 토기는 다양한 무늬가 확인되지만, 후기에는 무늬가 있는 토기가 확인되지 않았다. 이른 시기의 토기는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二重口緣短斜線文), 골아가리 구멍무늬(口脣刻目孔列文), 짧은 빗금무늬 골아가리(短斜線口脣刻目) 등의 2개 이상의 무늬가 같이 새겨진 토기와 겹아가리(二重口緣), 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 골아가리(口脣刻目), 구멍무늬(孔列文) 등 하나의 무늬만 새겨진 토기도 다수 출토되었다. 이 외에도 붉은 간 토기도 여러 점 출토되었다. 석기류 중 돌살촉은 슴베 없는 것(無莖式)슴베식(有莖式) 모두 확인되었고, 별 모양 돌도끼(多頭石斧), 돌칼(石刀), 돌도끼(石斧), 기둥 모양 돌자귀(柱狀石斧) 등도 출토되었다.

집자리의 탄소 연대 측정 결과 1호 292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1115년), 25호 2710±8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50~760년), 27호 297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1165년), 송국리식인 32호는 269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855년)라는 결과를 얻었다. 서변동 유적은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의 기둥 건물의 존재와 무덤의 시작, 다양한 집자리를 통해 대구 지역의 대표적 마을 유적 중 하나이다. 또한 늦은 시기인 6기의 송국리식 집자리가 군집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취락 단위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