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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곡리 유적(高敞 芙谷里遺蹟)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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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동의어 고창 부곡리 유적
시대 청동기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수면 부곡리 산72-3 일원
관련 정보
성격 고인돌
키워드 고인돌, 돌널무덤, 돌덧널무덤, 돌뚜껑움무덤, 돌무지유구, 송국리식 무덤, 송국리 문화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진



설명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부곡리 산72-3 일원에 위치한다. 고창-장성간 고속 도로 공사 구간에 포함되어 2004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구릉의 능선부에서 모두 20기의 고인돌돌널무덤(石棺墓), 돌덧널무덤(石槨墓), 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 및 시기를 알 수 없는 돌무지유구(集石遺構) 1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부곡리 증산마을 뒷산 시루봉(해발 179m) 말단부의 가지 능선(해발 80~100m)을 따라 남북 방향으로 열을 이루어 분포하였고, 공사 범위에 포함되지 않은 같은 능선을 따라 고인돌군이 이어져 분포하고 있다. 서쪽으로 고수천이 남북 방향으로 흐르고 이를 중심으로 곡간 지대와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고인돌군은 3기에서만 덮개돌이 확인되었으며, 덮개돌이 존재하는 고인돌은 후대의 매장 행위에 의해 훼손이 이루어져 정확한 하부 구조는 알 수 없었다. 고인돌은 유적의 가장 남쪽(1·2호)과 중앙부(3호)에 위치하였다. 1호의 덮개돌은 길이 3.5m, 너비 1.76m, 두께 1.14m, 무게는 7톤 정도이다. 평면 형태는 타원형이고 단면은 기다란 장방형의 형태를 띠며, 받침돌과 닿는 부분은 편평한 면을 이루고 있다. 2호는 길이 3.6m, 너비 3.22m, 두께 1.68m, 무게 11톤 정도로 평면 형태는 오각형을 띠며, 단면 형태는 세장방형을 띤다. 3호는 길이 4.56m, 너비 3.2m, 두께 1.12m, 무게 17톤 정도로 방형의 평·단면을 이룬다.

고인돌은 모두 3개의 기둥 형태의 받침돌을 가지고 있는 지상 돌덧널형으로 추정되며, 그 외의 청동기 시대 무덤은 훼손이 심한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지하식의 형태로 뚜껑돌과 함께 그 하부 구조가 비교적 잘 남아있었는데, 돌덧널형태(石槨形), 돌널형태(石棺形), 구덩이만 있는 형태(土壙形)로 구분된다. 돌덧널형은 5기로 깬돌을 이용하여 여러 단에 걸쳐 벽석을 축조하였다. 돌널형은 6기가 확인되었다. 구덩이형은 3기가 확인되었는데 17호는 2차례에 걸쳐 뚜껑돌을 덮은 돌뚜껑움무덤이다. 모두 9기에서 뚜껑돌이 사용되었는데 뚜껑돌은 고인돌의 덮개돌(上石)이 존재하지 않는 청동기 시대 무덤을 중심으로 확인되었다. 뚜껑돌은 1차례 형성되어 있는 것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11호와 18호는 2차례, 7호는 3차례에 걸쳐 덮었다. 뚜껑돌은 장방형의 매장 주체부와 거의 같은 형태로 장방형의 평면 형태를 띠고 있으며, 장축 방향 또한 매장 주체부와 동일하다.

조사된 20기의 청동기 시대 무덤을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1그룹은 고인돌의 덮개돌과 받침돌(支石)이 확인되는 지상 돌덧널형 고인돌이고, 2그룹은 지상식의 무덤으로 추정되나 대부분 유실되어 바닥 시설 일부만이 남아 있는 무덤 형태이다. 3그룹은 매장 시설의 위치가 지하에 있는 석곽형의 무덤, 4그룹은 지하의 돌덧널형에 뚜껑돌이 설치된 형식이며, 5그룹은 송국리식 무덤인 돌널무덤과 돌뚜껑움무덤이다.

한편 부곡리 유적의 가장 큰 특징은 고인돌을 비롯한 청동기 시대 무덤 주위를 둘러싸도록 조성한 이중의 도랑(溝)이 둘러져 있다는 점이다. 조사 구역 밖으로 이어져 전체 300m 정도 범위의 고인돌군을 따라 조성되었다면 대규모의 청동기 시대 무덤 유적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의 도랑은 송국리식 무덤과 관련된 시설로 판단되는데, 안쪽의 도랑은 고인돌 이후 만들어진 6~11호 무덤 축조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며 대형의 바깥쪽의 도랑은 4호와 12~20호 무덤의 축조와 관련된 것으로 이해된다.

유적이 위치하는 시루봉 중턱에는 범바위, 농바우, 장군바우 등의 명칭으로 불리는 화강암반의 암벽이 존재하는데, 쐐기흔과 벌어진 틈으로 돌을 막아 넣은 흔적 등이 확인된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곳은 고인돌 덮개돌을 채석했던 채석장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이 1점 밖에 확인되지 않고 무덤들이 서로 중복되지 않아 선후 관계를 알 수 없어 유적의 조성 연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11호에서 출토된 토기의 아가리가 짧게 외반되며 바닥에 굽이 형성되지 않고 몸통의 최대 지름이 상부에 형성된 민무늬 토기인 점, 지상 돌덧널형의 고인돌과 송국리식 무덤들이 한 공간 내 조성되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청동기 시대 송국리 문화 단계(중심 연대 기원 전 5세기 경)로 추정된다.

부곡리 고인돌군은 발굴 조사 이후 부곡리 320-6 일원으로 이전·복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