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리 유적(羅州 良川里遺蹟)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나주 양천리 유적, 나주 영천 유적, 나주 장등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 46-3(영천)·46-9(장등)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구덩이, 돌널무덤, 송국리 유형, 송국리식 집자리, 집자리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조진선 |
설명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 46-3(영천)·46-9(장등) 일원에 위치한다. 무안-광주 간 고속 도로 건설 공사 구간에 포함되어 2005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 지역은 옥산(해발 384.9m)에서 내려오는 가지 능선의 끝자락 평탄면에 위치하는데, 해발 40m 정도의 구릉 말단부에 해당한다. 동쪽으로는 영산강의 지류인 장성천이 흐른다. 양천리 유적은 영천 유적과 장등 유적으로 구분되지만 서로 인접해 있다.
영천 유적(양천리 46-3 일원)에서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 18기와 돌널무덤(石棺墓) 21기, 구덩이 3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대체로 조사 범위의 서쪽에서, 돌널무덤은 동쪽에서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조사 범위의 서쪽 지역에 치우쳐 16기가 밀집 분포하며, 2기는 동쪽 지역에 있는 돌널무덤군 가까이에서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는 원형과 방형이 있는데, 원형이 더 많다. 모두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된 송국리식이다. 규모는 가장 작은 9호 집자리는 지름 3.36m이고, 가장 큰 12호 집자리는 지름 6.46m이다. 집자리는 기반토를 굴착하여 만들었으며, 타원형 구덩이의 장축 방향은 동-서인 것과 남-북인 것으로 구분된다. 내부 시설로는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 구멍(柱孔), 벽 도랑(壁溝), 내부 구덩이, 외부 배수구 등이 있다. 타원형 구덩이 안에서는 숫돌과 함께 돌살촉(石鏃), 미완성 석기 등 석기 제작과 관련된 유물들이 집중적으로 출토되어서 작업 구덩이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집자리들은 중복 관계로 보아 소형의 방형·원형 집자리에서 대형의 원형 집자리로 변화되며, 규모가 커지면서 4개의 외부 기둥 구멍을 갖추어 가는 양상으로 변화된다. 출토 유물은 민무늬 토기 편, 돌살촉(石鏃), 돌끌(石鑿), 돌칼(石刀) 편, 곱은옥(曲玉), 숫돌(砥石)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석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대부분 타원형 구덩이와 그 주변에서 출토되었다. 이로 보아 집자리들에서는 석기 제작과 관련된 생산 활동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구덩이는 집자리와 인접해서 3기가 조사되었다. 평면 형태는 방형과 원형이다. 내부에서는 민무늬 토기 바닥 편과 숫돌 등이 출토되었다. 구덩이 내부에 토기 편 등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저장 시설일 가능성이 크다.
돌널무덤은 조사 범위의 동쪽 지역인 구릉 말단부 평탄면에 밀집 분포한다. 장축 방향은 남-북이나 북서-남동으로 열을 이루고 있으나 일부는 동서 방향으로 열을 달리하기도 한다. 돌널무덤은 대부분 짧은 벽은 1매의 판돌을, 긴 벽은 2~4매의 판돌을 이용해서 축조하였다. 바닥은 대부분 굴착면을 그대로 이용하였으나 일부는 잡석이나 판돌을 깔기도 하였다. 돌널을 축조하기 위해 판 토광은 모두 1단이다. 돌널무덤 가운데 가장 큰 5호 돌널의 크기는 길이 2.05m, 너비 0.47m, 깊이 0.47m이고, 가장 작은 18호 돌널은 길이 0.67m, 너비 0.24m, 깊이 0.33m이다. 길이 1.5m 이상을 대형, 1~1.5m를 중형, 1m 미만을 소형으로 구분하면, 대형이 절반에 가깝고, 중형이 1/3 정도이다. 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은 20호 돌널무덤의 벽석 위에서 확인된 돌살촉뿐이다. 돌널무덤 내부에 부장된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돌널무덤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5호와 20호 돌널에서 민무늬 토기 바닥 편과 돌도끼, 숫돌 등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로 보아 돌널무덤은 서쪽 지역에서 조사된 송국리식 집자리와 같은 시기로 추정된다.
장등 유적(양천리 46-9 일원)에서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 8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해발 31~42m 정도의 구릉 정상부에 위치하며, 모두 바닥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있는 송국리식이다. 평면 방형인 7호 집자리를 제외한 나머지 7기의 집자리는 모두 원형이다. 6호를 제외한 나머지 7기는 타원형 구덩이의 양 끝에 기둥 구멍柱孔이 각각 하나씩 파져 있다. 서쪽 구릉 상단부에서 조사된 1호와 3호 집자리에서는 4개의 중심 기둥 구멍이 확인되었는데, 이 집자리들은 바닥 면적이 20㎡ 이상으로 가장 크다.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민무늬 토기, 돌살촉, 돌도끼(石斧), 삼각 돌칼, 숫돌, 갈돌(碾石), 미완성 석기, 용도 미상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7호 집자리에서 구멍무늬 토기 아가리 편 1점이 출토되었다. 남아 있는 형태로 보아 안쪽에서 바깥쪽을 향해 뚫은 것으로 관통하지 않은 상태이다. 돌살촉은 대부분 슴베식(有莖式)이며, 미완성품과 재가공품이 함께 출토되었다. 돌칼은 평면 삼각형으로 집자리 바닥에서 출토되었다.
양천리 영천과 장등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와 돌널무덤이 공간을 달리해서 조성되었다. 연대는 방사성 탄소 연대를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는데, 영천 6호 집자리는 245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730년 혹은 540년)로 측정되었고, 영천 4호 돌널무덤은 266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870년)로 측정되었다. 이러한 자료만으로 유적의 중심 연대를 설정하기는 어렵지만 청동기 시대 송국리 유형의 일반적인 시간적 범위에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