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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공간(住居空間)

한국고고학사전
Admin (토론 | 기여)님의 2026년 1월 20일 (화) 13:09 판 (dkamaster 800-0200 자동 업로드 (entry_type=개념))


주거 공간
기본 정보
시대 신석기 시대
관련 정보
유적 옥천 대천리 유적
키워드 신석기 시대 집자리, 대천리식 집자리, 화덕 자리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24
집필자 구자진



설명

신석기 시대 집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내부 공간은 취사와 난방, 조명 등의 다목적으로 쓰인 화덕 시설이었다. 화재의 위험성을 줄이고, 내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자 주로 집자리 중앙에 화덕을 설치하였다. 집자리 내부에서는 수면이나 취사 이외에도 작업, 의례 등 여러 활동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졌다. 기본적으로 집자리는 1칸이며, 그 내부에서 구성원의 역할에 따라 공간 분할이 이루어졌다. 또한 집자리 규모에 따라서도 기능의 차이가 있었으리라고 추정된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 화덕 시설의 위치, 기둥 구멍의 배치, 저장 구덩이, 단 시설 등을 통해 집자리 내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였는지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유물이 출토된 양상을 통해 당시 사람들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였는지를 유추해 낼 수도 있다.

한반도의 신석기 시대 집자리 중 내부 공간 활용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사례는 ‘대천리식 집자리’이다. 옥천 대천리 유적의 집자리는 크게 생활 공간과 부속 공간으로 나누어지며, 생활 공간은 다시 취사, 난방 기능을 중심으로 하는 작업 공간과 휴식처, 잠자리 기능을 중심으로 하는 거실 공간으로 세분된다. 생활 공간은 약 35㎡, 부속 공간은 약 15㎡로 두 공간의 비율은 약 2.3:1 정도이다. 생활 공간 내에서 작업 공간과 거실 공간의 비율은 약 1:1 정도이다. 이를 통해 대천리 유적 집자리는 계획적인 설계와 측량으로 내부 공간을 분할하여 사용하도록 조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생활 공간 중 작업 공간에서는 집자리에서 출토된 유물의 약 60% 정도가 확인되었다. 특히 작업 공간의 남벽에 인접한 위치에서는 깨진 부분 없이 완형에 가까운 토기도 발견되었다. 또한 기형을 판단할 수 있는 토기들은 대부분 중심 기둥과 벽 기둥 사이에 놓여 있었다. 작업 공간에서 출토된 석기로는 돌도끼공이, 무늬 새기개[施文具]가 있는데, 모두 집자리의 동쪽 부분에서 출토되었다.

거실 공간에서 출토된 유물의 양은 다른 공간에서 출토된 것에 비해 매우 적다. 출토된 유물도 남·북벽의 가장자리에 놓여 있어 내부 공간은 어느 정도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전체 공간에서 출토된 유물의 10% 정도만이 거실 공간에서 출토되었다.

부속 공간에는 대형 갈판이 남쪽과 북쪽 벽에 인접하여 각 1개씩 놓여 있었다. 갈판은 모두 불을 맞아 쪼개진 상태로 출토되었으며, 남벽에서 출토된 갈판은 벽면에 기대어져 있었다. 또한 빗살무늬 토기 조각과 갈돌, 숫돌, 다량의 굴지구가 출토되었는데, 이는 전체 유물의 약 30%에 해당한다. 또한 집자리에서 출토된 토기 중 가장 큰 토기 2점이 부속 공간의 서벽 근처에서 출토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더불어 부속 공간에서는 저장 구덩이도 발견되었다. 출토된 유물의 성격과 저장 구덩이의 존재를 종합하여 볼 때, 부속 공간은 곡물을 가공하거나 갈무리하는 장소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민족지 사례에서는 일반적으로 집자리에서 출입구나 화덕 시설에 가까운 공간을 여성이, 집자리의 안쪽 공간을 남성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작업장은 출입구에서 가까운 부분에, 의례 장소로 추정되는 곳은 집자리의 가장 안쪽에 위치하였다. 침실과 생활 공간은 화덕 시설을 중심으로 좌우에 있었다. 유물과 관련하여서는 갈돌이나 갈판, 토기가 출토되는 곳은 여성의 생활 공간, 석기가 많이 출토되는 곳은 남성의 생활 공간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집자리 조사와 민족지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 집자리 내부 공간은 화덕 시설을 중심으로 하며 작업 공간, 취사 공간, 생활 공간, 거실 공간, 의례 공간으로 분할된 구조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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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