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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구석기 문화(韓國의 舊石器文化)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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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구석기 문화
기본 정보
시대 구석기 시대
관련 정보
유적 공주 석장리 유적, 단양 수양개 유적, 연천 전곡리 유적
키워드 아슐리안, 르발루아 기법, 주먹 도끼, 대형 석기, 돌날 석기, 좀돌날 석기, 돌날 석기, 격지 석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구석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23
집필자 배기동



설명

한반도에는 구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들어와서 살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살면서 남긴 도구들이 주로 돌로 만든 석기다. 한반도의 구석기 시대는 전기 갱신세에 시작되었다고 보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흔적은 중기 갱신세에 나타난 이후 계속해서 발견된다. 1만 2천 년 전 무렵에 신석기 시대로 이행한다. 수심이 낮은 서해는 추운 기후에서 육지화 되어 한반도 일대는 갱신세에 상당히 역동적인 인류 이동과 문화 변동을 겪었다. 한반도의 구석기 문화는 만주 지역과 함께 동아시아 지역 인류사의 일부로서 이해되어야 하며, 동아시아 구석기 문화의 일반적 양상과 지역적 특성이 모두 나타난다는 점에서 유라시아 대륙의 남북 지역에서 인류가 동서 이동을 했다는 중요한 증거로 볼 수 있다.

한반도에서는 공주 석장리나선 굴포리에서 구석기 유물이 발굴되면서 196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구석기 시대 유물이 연구되기 시작되었다. 이어서 상원 검은모루 동굴 유적은 동물상으로 미루어 볼 때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또한 북한의 석회암 지대의 동굴 유적에서 고인류 화석과 석기들이 연이어 발굴되었다.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는 아슐리안형의 주먹 도끼 공작이 발견되면서 한국의 구석기 연구가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 후 남한 지역에서는 많은 지점에서 이루어진 발굴 조사를 통해서 한반도 지역 구석기 문화의 시간적인 변화와 다양성이 알려지게 되었다.

한반도 내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적은 이미 300곳이 넘는다. 이 중 가장 많은 수의 유적들은 사면 붕적 기원의 퇴적물 속에서 발견되었으며, 크고 작은 강의 단구면 상부층에서 발견된 것들도 다수 있다. 시기가 오래된 유적층에서는 흔히 석기들이 불규칙한 면을 이루고 석기의 수도 적으며 대형 석기의 비율이 높은 등 퇴적 이후의 변형으로 보이는 것이 많다. 그러나 후기 구석기 시대에는 생활면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 경우가 많고 불 땐 자리의 흔적이나 석기 제작 과정을 보여 주는 등의 유구들이 남아 있어서 당시의 행위의 흔적을 유추할 수 있게 해 준다. 북한의 평안도 지역과 남한의 단양·영월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동굴에서 구석기 유물과 동물 화석들이 확인되었다. 또한, 중국 북부 지역에서 불어온 황토퇴적 속에서 구석기 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한탄-임진강 유역의 구석기 유적들이다. 이 지역은 중기 갱신세 동안 일어난 화산 분류로 지형이 바뀌어 오래된 유적들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 지질 환경이다. 한탄-임진강 유역에는 중국 화북에서 날아온 황토가 평탄한 지형에 잘 남아 있다. 황토를 비롯한 미세한 입자들로 구성된 퇴적물에는 흔히 퇴적과 토양화의 과정을 보여 주는 층위가 교대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토양화 과정에서 수직으로 된 토양 쐐기가 보이는데, 특히 황토 퇴적물의 경우에는 건조한 단계에서 퇴적이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덥고 습윤한 시기에 토양화가 일어난 것으로 해석된다.

초기에 속하는 구석기 유물의 연대적인 범위는 호모 에렉투스 단계에 속하지만, 인류 화석이 발견된 적은 없다. 역포사람이나 덕천사람으로 명명된 고인류 화석은 고인으로 분류되는데, 만달사람, 용곡사람, 승리산사람 등의 고인류 화석들은 현생 인류로 판명되었다. 현생 인류 화석들은 한반도 원주민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이며 동아시아 지역에서 호모 에렉투스에서 현생 인류로 진화하는 과정의 한 갈래로 이해된다.

구석기 시대는 일반적으로 전기·중기·후기의 세 단계로 구분된다. 다만, 기술적 진화 과정으로 본다면 한반도에서는 초기와 후기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서구의 중기 구석기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인 사전 조정 박리 기법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후기 구석기 시대층 아래에 전기적인 특성을 가진 석기 공작을 중기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 한반도 구석기 공작들은 지역적으로 흔한 돌감을 사용하고 있는데 유적 부근 지역의 강돌을 채집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석영맥암이나 규암이 가장 많이 출현하며 후기로 가면서 석재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초기 구석기 문화에서는 가로날 도끼를 포함하는 주먹 도끼, 찍개 그리고 여러 면 석기를 포함하는 대형 석기들이 출현하고 많은 가공을 하지 않은 격지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석기 공작 제작상의 특징을 흔히 즉흥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가장 경제적인 방식으로 석기를 제작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이 단계에 속하는 유적들에서는 유물의 집중도가 높지 않고 일부 유적의 경우에는 강의 물길 바닥으로 보이는 층에 다른 모난 자갈들과 함께 섞여서 드러나고 있다. 원래의 층들이 퇴적 후의 변형 과정에서 혼합되어 새로운 층을 구성한 사례로 보인다.

초기의 석기는 연천 전곡리 유적을 비롯한 한탄강 하류와 임진강 일대의 유적에서 출토되었는데 주먹 도끼들이 다수 포함된다. 연천 전곡리 유적은 절대 연대의 범위와 일본 기원 화산재의 존재, 화산 분류 이후의 지형 발달 과정, 황토 퇴적의 구조 등의 지질적인 자료를 종합하여 판단할 때 그 퇴적의 시작이 중기 갱신세의 후반, 즉 30만 년 전 전후의 시기로 보인다. 주먹 도끼는 중부 지역, 특히 한탄강, 임진강 그리고 한강 하류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지만, 동해안이나 남부 지역에서도 나타나 전국적인 분포를 보인다. 한반도에서 나타나는 주먹 도끼는 첨두형이 많은데 타원형도 많이 보이며 특히 거칠게 다듬은 가로날 도끼가 포함되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주먹 도끼들은 아슐리안형으로서 모비우스 학설을 와해시키는 증거가 되며, 중국 지역의 주먹 도끼들과 함께 동아시아적인 독특한 주먹 도끼 문화 전통을 형성한다.

후기 구석기 문화에 해당하는 단양 수양개 유적에서는 4만 년 전 이전에 이미 돌날 석기의 제작이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돌날 석기는 이 시기 이후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된다. 후기 구석기 석기 제작의 특성으로 정교한 떼기 작업을 위해서 치밀한 돌감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며, 소형 석기 중에서도 특정한 기능을 위한 가공이 많이 보인다. 돌감 중에서는 백두산이나 일본 규슈(九州) 지역의 흑요석으로 제작되는 석기들이 나타나는데 장흥 신북 유적이나 순천 월평 유적에서는 거의 800km를 이동해 온 백두산 흑요석 석기가 출토되었다. 이것은 이 시기에 자원을 구하기 위해서 장거리 이동을 했음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몸돌은 쐐기형이 많은데 양 끝에서 마주 보는 방향으로 뗀 것들도 다수 보인다. 한편, 석기 중에는 슴베찌르개가 이른 시기부터 나타난다. 이 슴베찌르개는 한반도 지역에서 널리 분포하여 지역적 특성을 보여 주며, 일본 열도의 박편 첨두기(剝片尖頭器)의 원형으로 보인다.

단양 수양개 유적에서는 이른 단계에서 좀돌날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MIS 2 단계 초기 즉 후기 구석기 후반이 되는 2만 5천 년 전 무렵부터 다양한 기술로 만들어진 좀돌날 석기들이 등장한다. 이 시기에는 돌날 석기들과 격지 석기들이 혼재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 좀돌날 석기들은 장착용 도구에 부착하여 사용했던 것으로서 한반도 내에서도 당시의 사냥 기술이 획기적으로 진화하였음을 보여 준다. 돌날이나 좀돌날의 경우에는 시베리아, 몽골 그리고 중국 북부 지역을 거쳐서 한반도 이어지는데 연대적인 범위로 미루어 보아 대단히 빠른 속도로 퍼진 것으로 짐작된다. 후기 구석기 시대 공작에서도 돌날이 없는 격지 석기 문화가 여전히 많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오래된 기술들이 전승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드러난 대륙붕(continental shelf)을 따라서 이동하여 동북쪽으로 올라가는 남방계 주민들의 전통적인 석기 제작 기술이 계속해서 유입되면서 혼재하는 양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한반도 구석기 유적에서 현생 인류 단계의 예술적 표현은 대단히 제한적으로 나타나서 그 정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나 단양 수양개 유적에서 발견된 눈금자는 선의 규칙성과 수학에 대한 이해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당시 한반도 현생 인류의 인지 능력을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