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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동북 지역의 신석기 마을[韓半島東北地域의 新石器聚落]

한국고고학사전
Admin (토론 | 기여)님의 2026년 1월 20일 (화) 12:38 판 (dkamaster 800-0228 자동 업로드 (entry_type=개념))


한반도 동북 지역의 신석기 마을[韓半島東北地域의 新石器聚落]
기본 정보
동의어 한반도 동북 지역의 신석기 취락
시대 신석기 시대
지역 한반도 동북 지역
관련 정보
유적 나선 서포항 유적, 무산 범의구석 유적
키워드 신석기 시대 마을, 한반도 동북 지역의 신석기 토기, 한반도 동북 지역의 신석기 문화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24
집필자 구자진



설명

한반도의 동북 지역은 두만강 유역과 북부 동해안 일대로 행정구역상 함경도와 양강도 지역에 연해주와 지린(吉林) 지역도 일부 포함한다. 동북 지역을 흐르는 두만강은 백두산과 함경산맥을 기점으로 흐르는데, 하류는 동해와 접한다. 장백산맥과 함경산맥을 흐르는 두만강 상류는 폭이 좁고 계곡이 깊지만, 중류 아래로는 하안(河岸)이 평탄하게 펼쳐진다. 이러한 자연환경의 영향으로 동북 지역의 고고학적 문화는 오랜 기간 독특하게 전개되었다. 현재는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지린, 한반도 동북의 국경 지역으로 나뉘었지만, 신석기 시대에는 하나의 문화 권역으로 묶였을 것이다. 동북 지역의 토기는 서북 지역과 마찬가지로 편평한 바닥 토기가 주류를 이룬다.

동북 지역의 신석기 유적은 주로 북부 동해안 지역과 두만강 유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며, 내륙 산간 지역에서 발견된 예는 매우 드물다. 해안 지역은 두만강 하류 유역에서 동해안을 따라 원산시가 위치한 영흥만 일대에 이르는 광범위한 영역으로, 함경산맥에서 동해로 뻗어 내린 험준한 능선 사이로 크고 작은 하천이 발달하여 있다. 또한 섬은 적지만 해안가로 사구(砂丘)와 석호(潟湖)가 발달하였는데, 유적은 대부분 석호 주변에 발달한 사구에 형성되었다.

대표적인 마을 유적은 나선 서포항 유적무산 범의구석 유적, 중강 토성리 유적, 신포 강상리 유적 등이 있다.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크로우놉카(Кроуновка), 올레니(Олений)-1, 보이스만(Бойсман), 자이사놉카(Зайсановка)-3, 그보즈제보(Гвоздево)-4 유적과 중국 지린 지역의 진구(金谷), 싱청(興城) 유적에서도 집자리가 조사되었다. 마을 내 집자리의 평면은 전기에는 대부분 원형이며 중기에는 방형이다가 후기에는 방형과 함께 장방형이 등장한다. 규모는 전기에는 대부분 지름 4∼5m 내외로 중소형에 해당하나, 규모가 점차 커지며 대형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중기의 싱청 유적에서는 8∼10m 내외, 후기의 서포항 유적에서는 5∼7m 내외, 진구 유적에서는 6m 내외의 집자리가 발견되었다.

전기와 중기의 유적에서는 기둥 구멍이 대부분 벽 가장자리를 따라 배열되거나 원형 배열을 이루다가, 후기의 범의구석 유적에서는 집자리 내부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되는 정형성을 보인다. 일정한 간격의 기둥 구멍 배치는 한반도 서북 지역인 허우와(後窪) 상층 유적의 F10·F40호 집자리에서도 확인된다. 기둥 구멍의 배치는 지붕의 가구(架構) 방식과도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며, 발전된 형태의 지붕구조였으리라고 판단된다.

출입구와 관련된 구조는 확인되지 않아 일반화하기 어렵지만, 밖으로 출입구 시설을 내었다면 계단식으로, 그렇지 않다면 내부에 경사진 구조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밖에도 나선 서포항 유적의 8·18호 집자리에서 기둥을 받쳤으리라고 추정되는 주춧돌(礎石)이 조사되었으며, 싱청 유적의 87AF16호 집자리에서는 기둥 구멍 안에 주춧돌 역할의 돌을 넣은 구조가 확인되었다. 진구 유적에서는 집자리 내부에 불씨를 저장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구덩이가 조사되었으나, 그 용도는 정확하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마을인 나선 서포항 유적은 해안가 석호인 동번포(東藩浦), 서번포(西藩浦)의 초입에 위치하여 풍부한 어류 자원을 확보하고 있다. 게다가 높은 산악이 배후를 둘러싸고 있어 수렵과 채집도 용이하여 마을 형성에 매우 양호한 입지를 점하고 있다. 현재까지 5개의 문화층에서 총 21기의 집자리가 확인되었다. 조성 시기는 신석기 시대의 전기에서 후기 사이에 해당하여 문화의 연속성을 잘 보여 준다. 특히 길이 100m, 너비 40m 정도로 면적이 방대한 조개더미 유적과 집자리가 중첩되는데, 내부에서는 다양한 토기와 함께 채집구·수렵구·어로구·농경구가 출토되어 전형적인 정주 마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동북 지역에서는 해안을 따라 많은 조개더미 유적과 유물 산포지가 확인되고 있으며, 각 신석기 마을은 유적의 입지나 출토 유물이 비슷하다. 즉, 동해안 지역을 따라 서포항 유적과 유사한 규모와 구조의 마을이 조성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더불어 동해안을 따라 한반도의 동해안과 남부 지역, 러시아 연해주 등과 교류하고 내륙으로는 한반도 서북 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