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덕림리 백양 고인돌군[咸平 德林里白羊支石墓群]

한국고고학사전
Admin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12월 5일 (금) 19:35 판 (dkamaster 600-0668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기본 정보
동의어 함평 덕림리 백양 고인돌군
시대 청동기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라남도 함평군 나산면 덕림리 297-1 일원
관련 정보
성격 고인돌
키워드 고인돌, 돌검, 붉은 간 토기, 삼각 덧띠 토기, 쇠도끼, 홈자귀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조진선



설명

전라남도 함평군 나산면 덕림리 297-1 일원에 위치한다. 함평 덕림 지구 위험 도로 개수 공사 구간에 포함되어 2012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백양 고인돌군은 원래 6기의 덮개돌(上石)이 있었으나 2003년 지표 조사 때에는 덮개돌 1기만 남아 있었다. 발굴 당시에는 이마저도 이동되었지만 고인돌과 관련된 하부 구조 33기가 조사되었다. 유적은 천주봉(해발 377m)에서 남동쪽으로 흘러내린 구릉 말단부인 해발 15m 정도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지방도를 사이에 두고 고막원천과 접하고 있다.

조사된 고인돌의 하부 구조 33기는 전체적으로 고막원천의 흐름과 동일한 장축 방향을 보이지만 일부는 직교(直交)하기도 한다. 무덤방(墓室)은 2~5기씩 군집되어 있는데, 서로 간에 형식이 동일하다. 돌검은 북동쪽 군집에서, 삼각 덧띠 토기(粘土帶土器)쇠도끼(鑄造鐵斧)는 남서쪽 군집에서 출토되어 고인돌은 지형상 협소한 북동쪽에서 넓어지는 남서쪽으로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덮개돌은 조사 지역에서 확인되지 않았지만 100m 정도 떨어진 식당에서 조경석으로 이용되던 덮개돌 2기를 확인하였다. 따라서 덮개돌들은 거의 대부분 후대에 파괴된 것으로 생각된다. 뚜껑돌(蓋石)은 16기에서 확인되었다. 1겹으로 덮은 것과 2~6겹으로 덮은 것이 있으며, 뚜껑돌이 남아 있지 않은 것도 있다. 무덤방은 굴광 깊이에 따라 지하식, 반지하식, 지상식으로 구분되며, 벽석(壁石)의 축조 방법에 따라 돌덧널형(石槨形), 돌널형(石棺形), 혼축형(混築形)으로 구분된다. 돌덧널형은 깬돌(割石)을 눕혀 쌓은 것으로 20기이다. 돌널형은 판돌(板石)을 사용해서 축조한 것으로 8기이다. 혼축형은 4기이다. 바닥 시설은 14기에서 확인되는데, 대부분 판돌이나 깬돌으로 전면을 깔았으며 맨바닥을 그대로 이용한 것도 있다. 묘역 시설(墓域施設)은 평면 원형, 방형, 타원형, 장타원형이 있으며 구획석(區劃石)은 1단으로 세웠다. 묘역 시설은 돌무지형(積石形)부석형(敷石形)으로 구분된다. 묘역 시설에는 1기의 무덤방이 있는데, 돌덧널형이 많다.

출토 유물은 38점인데, 껴묻거리가 34점이고 주변에서 수습된 것이 2점이다. 껴묻거리는 돌검, 돌살촉(石鏃)), 돌도끼(石斧), 미완성 석기, 민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삼각 덧띠 토기, 둥근옥(丸玉), 쇠도끼 등이 출토되었다. 돌검은 자루의 형태에 따라 슴베식(有莖式)자루식(有柄式)으로 분류된다. 돌살촉은 모두 통슴베식(一段莖式)이다. 돌도끼는 구멍 도끼(有孔石斧)홈자귀(有溝石斧)이다. 토기는 대부분 무덤방 주위에서 확인되었다. 민무늬 토기는 대부분 파편들이어서 기형은 알 수 없다. 붉은 간 토기 편은 무덤방 주위에서 출토되었다. 덧띠 토기는 24호 돌널에서 출토되었는데, 아가리 끝을 약간 외반시키면서 끝부분에 덧띠(粘土帶)를 외반되게 부착하였다. 둥근옥은 천하석제이다. 쇠도끼는 33호 무덤방에서 출토되었다. 무덤방 내부에서 민무늬 토기 편과 함께 출토되어 고인돌군 가운데 가장 늦은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덕림리 고인돌군은 분포 상태에 따라 무덤방의 구조와 출토 유물이 달라지는 양상을 보인다. 가장 늦은 시기로 추정되는 돌널에서 삼각 덧띠 토기와 쇠도끼가 출토되어 고인돌의 조영 과정과 하한 연대(下限年代)를 파악해 볼 수 있다. 고인돌군의 연대는 출토 유물로 보아 청동기 시대 송국리 단계부터 초기 철기 시대까지 지속된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19호 무덤방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는 3170±20 BP(보정 연대 기원전 1496~1455년)로 측정되어 고고학적인 편년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