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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畓]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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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동의어 수전, 답
시대 청동기
관련 정보
유적 울산 무거동 옥현 유적, 울산 선암동·신정동 유적, 진주 평거동 유적, 창원 망곡리 유적, 논산 마전리 유적, 부여 노화리 유적, 보령 관창리 유적
키워드 송국리 문화, 농경, 계단식 논, 소구획 논, 도랑, 수로,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윤호필



설명

논은 청동기 시대 이래로 주로 중·남부 지역에서 조사되며 본격적인 논 경작은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로서 사회·문화 전반을 바꾼 중요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곧 논의 등장은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에서 송국리 문화 단계로 전환시킨 중요한 원인인데, 기존의 밭 재배 방식과는 달리 여러 지식과 경험, 기술적 요인을 구비해야하는 여러 이유를 근거로 하고 있다.

논의 지형적 입지는 구릉 사면 말단부, 개석 곡저(開析谷底), 곡간 평야, 중소하천 범람원 배후 습지에 주로 입지하며, 논둑이나 단차로 구획된 논면·용수로·보 등이 조사되었다. 논의 형태는 계단식소구획으로 이른 시기 후반에 등장하여 늦은 시기에 본격화·다양화된다. 또한, 관개 시설도 다양화하고 발전하며 이러한 농경 양상의 변화는 식량 생산 체계에도 변화를 가져와 식량 생산 수단의 다변화와 더불어 잉여 곡물의 생산을 더욱 가속화하는 역할을 한다. 논경작은 집약적 경제 활동으로 면적대비 많은 곡물을 생산할 수 있어서 잉여 생산이 가능한 농경 방법이다. 따라서 경작지의 증가는 생산량의 증가를 의미하며, 이와 더불어 토양, 논의 구조, 곡물 재배 기술 등의 발달은 생산량을 증대시키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토양은 유기물을 많이 포함하고 배수가 불량한 토질이 선호되며, 지형에 따라 물을 원활하게 공급하고, 물을 가두거나 흘려보내기 위한 시설로 만들어진다. 또한, 곡물 재배 기술은 작물의 파종부터 관리, 수확, 잔여물 처리까지 일련의 과정을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작 활동은 청동기 시대 송국리 문화 단계에 더욱 활발하게 전개 된다.

대표적인 유적은 울산 무거동 옥현, 울산 야음동, 진주 평거 3-1지구, 평거동 4-1지구, 창원 망곡리, 논산 마전, 부여 노화리, 보령 관창리에서 확인되었다. 무거동에서 확인된 논은 완만한 경사를 따라 단을 이루며 소구획된 논이 조성되어 있는데 평면 형태는 방형, 장방형, 부정형 등 다양하다. 논바닥에는 발자국이나 경작구 흔적, 논둑을 끊어 만든 수구(水口)도 곳곳에서 확인되었다. 기둥 구멍, 수로, 보, 집수지 등의 수리 시설을 포함한다.

무거동 옥현 유적에서는 구릉지에서 청동기 시대 집자리와 이 조사되었으며 충적 저지에서는 논이 확인되었다. 선암동·신정동(야음동)에서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와 함께 논이 확인되었다.

평거동 유적 3-1지구 논은 A지구 충적지의 자연 제방과 구릉 말단부 사이 저지대에 입지하며 크게 가지역과 나지역의 2개 지역으로 구분된다, 평면 형태는 지형에 따라 계단식 논과 소구획 논으로 구분된다. 가지역은 미지형의 경사를 따라 동서 방향으로 길게 조성된 계단식 논과 소구획 논으로 일부는 단(段)을 이루며 다시 소구획되어 있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 세장방형, 부정형 등이다. 논면은 대체로 폭이 좁고 형태가 부정형이거나 호상(弧狀)인데 반해 완만한 곡의 중앙부 쪽에는 방형이나 장방형을 띤다. 논의 서남쪽과 동북쪽 가장자리에는 도랑이 위치한다. 나지역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완만하게 경사져 있는데 거의 평탄면에 가깝다. 논면은 평면 형태가 장방형과 방형을 띠고 길이 3~5m, 너비 2~2.5m로 소구획되어 있다. 논둑은 폭 0.2~0.3m, 높이 0.03~0.07m 내외이다. 평거동 4-1지구 논은 3-1지구 논과 같은 입지 형태이다. 창원 망곡리 유적의 논은 자연 제방과 배후 습지에 입지하나 정확한 형태나 구조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주변에 논과 관련된 수로와 암거 시설이 확인되어 논으로 물을 공급하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논산 마전리 유적에서는 구릉의 사면 말단부의 개석 곡저에서 논이 조사되었는데 논은 구릉 부분에서 수로 시설과 저지대에 논이 분포한다. 구릉에서 자연적으로 흘러내렸던 물을 막아 두었던 웅덩이에서 다시 인공적으로 수로를 파서 논에 물을 대던 시설이 확인되었다. 저지대 평탄면에는 둑으로 구획된 논과 그 사이를 흐르던 소형의 수로들이 확인되었다. 논의 경우 경사가 급한 곳은 계단식으로 만들어서 윗논에 물이 아랫논으로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도록 고저차를 두었고, 경사져 급하지 않은 곳은 논과 논사이에 작은 도랑(溝)을 경계로 둑을 설치하여 구획하였다. 논의 크기는 자연적인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방형이나 장방형으로 소구획된 논이다.

보령 관창리에서는 논이 약 2,000평 정도 확인되었는데 중앙부에 도랑을 설치하고 양쪽 둑에 나무를 박아 하천이 범람하지 못하게 한 인위적인 시설이 확인되었다. 논은 모두 4개 층으로 구분되는 것으로 보아 오랜 기간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부여 노화리에서는 하천 배후의 저지에서 논이 확인되었는데 구릉 경계지의 용수를 이용했던 저습지에 논이 위치한다.

각지에서 확인된 논은 형태는 서로 다르지만, 지형의 경사와 관개 체계를 잘 이용하였다. 즉 수로와 도랑이 갖추어진 방형의 소구면 논이 나타나는데 구릉 말단부 혹은 곡저 사면부에 계단식 논이 조성되었고 구릉 사면부나 강안 충적지에서는 전통적인 밭 경작이 활발하였다.

논농사에는 물의 공급이 필수적이므로 보(洑)의 축조는 일반적이며, 특히 청동기 시대 송국리 문화와 관련된 유적들이 주로 저지대에 분포하는 것은 논농사를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