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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리 유적(麗水 龍珠里遺蹟)

한국고고학사전
Admin (토론 | 기여)님의 2026년 1월 20일 (화) 05:37 판 (dkamaster 600-2208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용주리 유적(麗水 龍珠里遺蹟)
기본 정보
동의어 여수 용주리 유적, 여수 용주리 웅동 고인돌군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용주리 산240-6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고인돌, 무지석식 고인돌, 바둑판식 고인돌, 송국리 문화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오세미



설명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용주리 산240-6 일원에 위치한다. 여수 나진-소라간 국지도 확포장 공사 구간에 포함되어 2014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 고인돌 15기, 고인돌 덮개돌 8기, 덮개돌이 없이 발견된 무덤방(石槨) 8기, 도랑(溝) 1기 등 32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비봉산 줄기에서 흘러내린 해발 17m 정도의 편평한 구릉에 위치한다.

고인돌은 구릉 방향으로 2열을 이루고 있으며, 무덤방(墓室)의 장축 방향 역시 북동-남서로 등고선과 나란하게 분포한다. 무덤방은 깬돌(割石)이나 자연석을 이용해서 1~3단으로 축조한 돌덧널형(石槨形)이 대부분이다. 8호 고인돌은 혼축형(混築形)이고, 9호 고인돌은 돌돌림형(圍石形)이다. 고인돌 가운데 덮개돌과 하부 구조(下部構造)가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은 총 15기인데, 무지석식(無支石式) 고인돌 11기, 바둑판식(碁盤式) 고인돌 4기이다. 덮개돌은 총 23기가 확인되었는데, 평면 형태가 다양해서 방형 8기, 제형 5기, 장방형 4기, 괴석형 3기, 오각형 2기, 삼각형 1기이다. 단면 형태는 장방형 19기, 방형 2기, 괴석형 1기, 오각형 1기이다. 덮개돌은 크기가 다양하기 때문에 무게도 0.5톤에서 13톤까지 확인된다. 받침돌(支石)은 3·4·9·18호에서 확인되었다. 묘역(墓域)이 구획된 고인돌은 3·5·7·11·15·17·18호로 총 7기이다. 묘역 시설은 방형, 타원형, 원형 등인데 방형이 가장 많다. 그중 17호와 18호는 하나의 묘역 안에 2기의 고인돌이 있다. 고인돌에서는 대부분 뚜껑돌(蓋石)이 확인되지만, 덮개돌 없이 발견된 무덤방에서는 뚜껑돌도 확인되지 않는 양상을 보인다. 7호와 15호 고인돌의 뚜껑돌은 이중으로 덮여 있었다. 이러한 이중 뚜껑돌은 전남 남해안 지역에서 주로 확인된다. 바닥 시설은 전면에 돌을 깐 것, 바닥의 두 부분에만 깐 것, 바닥 일부분에만 깐 것, 아무런 시설이 없이 맨바닥인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 바닥 전면에 돌을 깐 것은 7기이며, 두 부분에만 깐 것은 4기, 일부분에만 깐 것은 4기, 맨바닥인 것은 8기이다. 그래서 바닥 시설은 전체적으로 고른 양상을 보인다. 출토 유물로는 간 돌살촉, 간 돌검, 민무늬 토기 등이 있다.

도랑은 해발 10~18m의 조사 지역 북쪽편 구릉에 위치하는데, 고인돌이나 덮개돌이 없이 확인된 무덤방보다 나중에 만들어졌다. 평면 형태는 ‘Y’자 모양이며 장축 방향은 북동-남서로 등고선과 직교한다. 규모는 남은 길이 64.5m, 너비 1.55~5.93m, 깊이 0.34~0.83m이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방사성 탄소 연대는 2호 고인돌이 2670±53 BP, 2665±49 BP, 6호 고인돌이 2465±57 BP, 8호 고인돌이 2481±48 BP로 측정되었다. 이로 보아 용주리 웅동 고인돌군의 연대는 송국리 문화 단계로 판단된다. 웅동 고인돌에서는 묘역 시설과 이중 뚜껑돌이 확인되었는데, 여수반도를 비롯한 남해안에서 주로 확인되는 구조여서 남해안 고인돌 문화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