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동 유적(光州 龍頭洞遺蹟)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광주 용두동 유적, 광주 용두동 거상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광주광역시 북구 용두동 1089(용두동)·1111(용두동 거상)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집자리 |
| 키워드 | 집자리, 송국리식 집자리, 송국리 문화, 덧띠 토기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김수민 |
설명
광주광역시 북구 용두동 1089(용두동)·1111(용두동 거상) 일원에 위치한다. 유적은 용두동과 용두동 거상으로 구분되며 서로 200m 정도 떨어져 있다. 용두동 유적은 광주 용두(2) 주택 건설 사업 지구에 포함되어 2005년에 발굴 조사되었으며, 용두동 거상 유적은 용두동 아파트 신축 부지에 포함되어 2014~2015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이 일대에는 해발 30~70m의 구릉이 발달해 있으며, 서쪽으로는 영산강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고 그 주변으로는 넓은 충적지가 펼쳐져 있어 사람들이 생활하기에 적합한 자연 환경을 갖추고 있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모두 21기가 조사되었는데, 용두동 유적에서 15기, 용두동 거상 유적에서 6기가 발굴되었다.
용두동 유적에서 조사된 집자리는 15기로,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된다.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의 방형·장방형 집자리는 구릉의 북쪽과 남쪽에 분포하며, 송국리 문화 단계의 집자리들은 남쪽에 있는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 집자리들의 근처에 분포한다.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의 집자리는 모두 9기가 확인되었다. 2호와 4호 집자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일부 파괴된 상태로 조사되었다.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 삼각 오목 돌살촉(三角灣入石鏃), 돌칼(石刀), 흙구슬(土珠),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갈돌(碾石) 등이 출토되었다. 송국리식 집자리는 6기가 조사되었는데, 13호와 14호를 제외한 나머지 집자리들은 일부 파괴된 상태였다. 평면 형태는 원형 3기, 방형 3기이다. 민무늬 토기 편, 슴베 간 돌살촉, 갈돌, 가락바퀴, 구멍 도끼(有孔石斧), 삼각 돌칼이 출토되었다. 이밖에 지표에서 덧띠 토기(粘土帶土器), 슴베 간 돌살촉, 외날 돌도끼(片刃石斧)가 수습되었다.
용두동 거상 유적에서는 집자리 6기가 구릉 정상부에서 조사되었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원형과 타원형이며 내부에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된 송국리식 집자리이다. 3호와 5호를 제외한 나머지는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민무늬 토기 편, 돌검 편, 버들잎 모양 간 돌살촉(柳葉式磨制石鏃), 슴베 간 돌살촉(有頸式磨制石鏃), 갈돌(碾石), 삼각 돌칼이 출토되었다.
용두동 유적은 두 유적이 서로 인접한 구릉에서 확인되었고, 유구와 유물의 양상도 유사하다. 다만, 용두동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의 집자리들과 송국리 문화 단계의 집자리들이 모두 확인된 반면에 용두동 거상 유적에서는 송국리식 집자리만 확인되었다. 따라서 이 일대에는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해서 송국리 문화 단계까지 이어지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조사 구역에서 덧띠 토기 등이 수습되는 것으로 보아 초기 철기 시대까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거주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