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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정리 여의곡 유적(鎭安 慕程里如意谷遺蹟)

한국고고학사전
Admin (토론 | 기여)님의 2026년 1월 20일 (화) 05:33 판 (dkamaster 600-0983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모정리 여의곡 유적(鎭安 慕程里如意谷遺蹟)
기본 정보
동의어 진안 모정리 여의곡 유적, 진안 여의곡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정천면 모정리 827-1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고인돌, 구덩이, 독무덤, 돌널무덤, 돌뚜껑움무덤, , 송국리식 집자리, 송국리식 토기, 집자리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승옥



설명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모정리 827-1 일원에 위치한다. 용담댐 수몰 지구에 대한 조사의 일환으로 1998년과 2000년 두 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집자리 7기, 고인돌 43기, 돌널무덤(石棺墓) 12기, 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 3기, 독무덤(甕棺墓), , 덮개돌(上石) 운반로, 도랑(溝), 구덩이 등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해발 400여 m에 달하는 야산의 두 줄기가 분기하여 동서 방향으로 길게 뻗은 능선의 말단부에 자리한다. 유적 주변으로 넓은 충적 대지가 형성되어 있고 서쪽과 동쪽으로는 높은 산지가 형성되어 있다. 유적의 입지와 성격에 따라 크게 A·B·C지구로 대별되며, 다시 A지구는 고인돌을 중심으로 A-Ⅰ, A-Ⅱ, A-Ⅲ지구로 세분할 수 있다.

집자리는 A지구에서 3기, B지구에서 4기가 확인되었다. A지구에서는 평지와 야산이 접하는 지점과 평지에 집자리가 축조되었고 B지구는 상대적으로 해발 고도가 낮은 야산의 능선 정상부에 조성되어 있다. 집자리는 모두 타원형이며 A-1호는 2호를 파괴하고 형성되었는데 A-1호는 긴 지름 4.3m, 짧은 지름 3.9m, 깊이 0.3m, 2호가 긴 지름 7m, 짧은 지름 3.5m, 깊이 0.3m이다. 3호는 긴 지름 6.3m, 짧은 지름 4.6m, 깊이 0.55m이다. 내부에 타원형 구덩이를 설치하고 그 양끝에 기둥 구멍을 시설한 송국리식이다. B지구 집자리도 원형에 타원형 구덩이가 바닥 중앙에 설치되어 있는 형태이다. 바닥은 생토면을 그대로 사용한 유구도 있고 불 다짐 처리한 유구도 있다. 내부 시설은 벽 도랑(壁溝)과 벽을 따라 기둥 구멍이 확인된다.

A-Ⅰ지구에서는 고인돌 40기, 돌널무덤 10기, 돌뚜껑움무덤 3기 등 총 53기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고인돌은 기본적으로 방형이나 원형의 묘역(墓域)을 갖추고 있으면서 중앙에 매장 주체부(埋葬主體部)가 형성되어 있고 금강의 방향을 따라 열을 지어 위치한다. 또한 전체 무덤군내에서 뚜렷한 군집화를 보인다. 돌널무덤과 돌뚜껑움무덤은 모두 고인돌의 외곽에 분포하는 특징을 보여 중심 고인돌보다는 후대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A-Ⅱ지구에서는 고인돌 5기가 확인되었으며 독립된 무덤군을 이루고 있다. 3·4·5호는 금강의 방향과 평행하게 일자형으로 서로 연접되어 있는 반면 1호와 2호는 타원형의 묘역 시설을 갖춘 독립 고인돌이다. A-Ⅱ지구의 고인돌은 구체적인 형태와 구조, 출토 유물의 양상에서 A-I지구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즉 A-Ⅱ지구의 고인돌은 독립된 공간에 분포하고 덮개돌上石이나 묘역 시설의 규모가 크며 돌무지가 낮은 분구 모양(低墳丘形)을 이루고 있고, 현저하게 많은 양의 유물이 발견된다. 따라서 A-Ⅱ지구 고인돌은 다른 고인돌에 비해 사회적으로 유력한 자가 매장된 무덤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A-Ⅲ지구에서는 3기의 고인돌이 발견되었는데 장방형의 묘역을 갖춘 2기는 서로 연접되어 있고 1기가 연접부가 되어 있다.

밭 유구는 완전하게 남아 있지는 않지만 대략 길이 107m, 너비 40m로 1,300평 정도가 확인되었다. 고랑과 두둑은 야산으로부터 하천변의 방향으로 뻗어 있어 등고선의 방향과 직교하며 안에서 채집된 토양 내 식물규소체 분석 결과, 벼와 조·피·율무·기장 등이 재배되었을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밭 유구는 남강댐 수몰 지구에서 확인된 바 있으나 호남 지역에서 는 처음으로 확인되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모정리 여의곡 유적에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고인돌 덮개돌을 이동시키기 위한 시설로 추정되는 길이 확인되었다. 길은 통나무로 겹쳐서 길게 나열한 것처럼 나타나고 있으며 고인돌군 바로 앞까지 연결되어 있다. 유적에서 발견된 대부분의 토기는 외반 구연(外反口緣)의 송국리식 토기이다. 유적에서는 이른 시기의 특징적인 토기는 발견되지 않으나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는 일부 발견된다. 석기는 통슴베 돌살촉(一段莖式石鏃), 버들잎 모양 돌살촉(柳葉形石鏃), 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마디 자루 간 돌검(有節式磨製石劍), 슴베식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 삼각 돌칼, 홈자귀(有溝石斧), 돌자귀, 돌끌(石鑿),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가락바퀴, 그물추, 갈돌(碾石棒) 및 갈판(碾石)청동기 시대의 일반적인 석기들이 대부분 발견되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B-1호 집자리에서 233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375년), 2510±40BP(보정 연대 기원전 655년), A-1호 집자리에서 2400±70 BP(보정 연대 기원전 575년), A-1호 내부 구덩이에서 256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670년)로 측정되었으며, 도랑 1호 2680±90 BP(보정 연대 기원전 825년), 도랑 2호 238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465년), 25호 고인돌 244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500년), 38호 고인돌 246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585년) 등의 결과가 산출되었다.

모정리 여의곡 유적은 대규모의 주거 영역, 생산 영역, 매장 영역으로 구성된 복합 유적으로서 청동기 시대 금강 상류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복잡한 사회에 의해 건설된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유적은 청동기 시대 금강 상류의 사회 조직과 변천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과의 비교 연구를 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모정리 여의곡 유적의 고인돌 2·3~5호는 진안군 용담면 월계리 879-8 일원에 이전·복원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