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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리 유적(完州 九岩里遺蹟)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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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동의어 완주 구암리 유적
시대 청동기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봉동읍 구암리 산115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제의 유구, 환호, 집자리, 무시설식 화덕 자리, 가락동식 토기,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 겹아가리골아가리 토기, 간 돌검, 돌살촉, 돌칼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천선행



설명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구암리 산115 일원에 위치한다. 금강(Ⅱ)지구 익산 2-1공구 토목 공사에 앞서 발굴 조사하였다. 유적이 위치하는 봉동읍 일원은 만경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소하천이 발달해 있으며, 주변으로 충적 대지와 해발 100m 미만의 나지막한 구릉 지대가 펼쳐져 있다. 구암리 유적도 북동쪽의 수봉산(해발 420m), 봉실산(해발 327m)에서 흘러내려 오는 능선을 따라 형성된 구릉 정상부와 사면부(해발 72~78m)에 입지한다. 유적 남쪽으로는 금남정맥의 율치에서 발원한 고산천이 서남류하여 만경강으로 합류하는데, 주변으로 충적지와 낮은 구릉이 펼쳐져 있다. 발굴 조사는 농업용수로의 배수지와 관로 매설 구역에 한정되어 구릉 정상부와 사면 일부에만 이루어졌으나 유적은 구릉 전체에 걸쳐 분포한다.

청동기 시대 유구로는 제의 유구(祭儀遺構) 1기, 환호(環濠) 1기, 집자리 10기가 확인되었다. 환호는 정상부에 입지하는 제의 유구를 감싸는 형태이고, 집자리는 환호의 서쪽 외곽에 분포한다. 제의 유구와 환호의 간격은 북쪽 10m, 동쪽과 서쪽은 7m 내외로 일정한 편이다. 제의 유구는 남북 길이 4.66m 동서 너비 3.16m 내외로 삼각형에 가깝다. 바닥면은 별다른 시설 없이 풍화 암반층을 정지하여 사용하였다. 내부는 깬돌(割石)과 불탄 흙층이 반복적으로 퇴적되고, 깬돌에 그을은 흔적이 확인되어, 불과 관련된 제의 행위가 이루어졌던 공간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환호는 전라북도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환호의 남쪽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형태가 분명하지 않지만, 남북으로 긴 타원형일 것으로 추정된다. 환호 규모는 너비 20m 내외이고, 북쪽에 너비 2.6m 내외로 환호의 도랑을 굴착하지 않은 부분(開口部)이 있어 출입구로 추정된다. 환호의 도랑 단면 형태는 대체로 ‘U’자 모양인데, 일부 구간은 바닥에 턱이 형성되어 ‘W’자 형태이다. 환호의 도랑 너비은 0.7~2.1m 내외, 잔존 깊이 0.4~0.8m 내외이다. 완주 구암리 유적의 환호는 청원 대율리 유적(가락동 유형), 구리 토평동 유적(역삼동-흔암리 유형)과 비견된다. 특히 구리 토평동 유적의 경우, 환호 내부에 아무런 시설이 없이 원형의 환호만 두르고, 바깥에 집자리가 열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어, 취락 내 구성이 구암리 유적과 매우 유사하다.

집자리 10기는 환호 밖 서쪽에 해발 74~75m 선상에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4호, 4-1호, 4-2호는 상호 간에 중복되어 있고, 나머지는 중복없이 단독으로 배치되어 있다. 1~4호는 직선상으로 열을 이루고, 5~7호는 열에서 벗어나 구릉 상부와 하부에 분포한다. 특히 6호는 환호의 북쪽 도랑을 파괴하고 중복 설치되어 있다. 따라서 보고자는 환호와 중복없이 배치된 1~4호 집자리와 제의 유구 및 환호 유구를 동일 시기로 보고, 4-1·5~7호 집자리는 환호 폐기 후 조성된 것으로 본다.

집자리는 구릉 하단부에 해당하는 서벽 또는 남벽이 유실되어 정확한 형태와 규모를 알 수 없다. 잔존 길이 2~7.5m, 너비 0.9~4m로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으로 추정된다. 화덕 자리의 존재가 확실하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무시설식 화덕 자리(無施設式爐址)가 1기 내지 2기 설치되어 있다. 기둥 구멍은 불규칙한 것, 벽가를 따라 마련한 것, 중앙에 2열로 배치한 것이 있다. 그리고 4호와 7호에는 집자리 내부 벽가를 따라 도랑(壁溝)이 마련되어 있다.

완주 구암리 유적에서는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 편,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골아가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口脣刻目土器), 겹아가리골아가리 토기(二重口緣口脣刻目土器), 민무늬 토기 편, 숫돌(砥石), 가락바퀴, 토제 그물추(土製魚網錘) 등이 출토되었다. 토기 문양은 모두 가락동식 토기(可樂洞式土器) 범주에 포함되는 것이다. 다만, 제의 유구 및 환호, 1·4·4-1·7호 집자리에서는 겹아가리가 짧은 빗금무늬와 결합되거나 골아가리무늬와 결합되어 출토되는데, 3·5·6호 집자리에서는 골아가리무늬만 출토된다. 그밖에 4-1호 집자리에서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와 함께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가 출토된다. 유사한 토기무늬 구성은 동일한 만경강 유역권에 해당하는 익산 영등동 유적에서 출토된바 있다.

석기로는 간 돌검돌살촉(石鏃), 돌칼(石刀)이 대표적이다. 간 돌검은 6호 집자리에서만 3점이 출토되었다. 모두 파손품이지만, 피 홈(血溝)이 남아 있는데, 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으로 추정된다. 간 돌살촉은 4호 집자리에서 2점 출토되었다. 하나는 슴베 없는 간 돌살촉(無莖式磨製石鏃)이고, 하나는 턱 슴베 간 돌살촉(二段莖式磨製石鏃)이다. 유물의 특징과 더불어 절대 연대 측정치를 통해 볼 때, 완주 구암리 유적 청동기 시대 집자리의 조성 시기는 기원전 11~9세기경으로 추정된다.

구암리 유적의 집자리가 구릉 정상부와 능선을 따라 입지하고, 1·2호, 3·4호가 매우 인접하여 병렬로 배치되어 있는 점은 가락동 유형의 집자리 배치와 유사하다. 뿐만 아니라,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를 비롯해, 겹아가리가 골아가리무늬와 결합되는 문양은 가락동식 토기와 매우 유사하다. 유적이 만경강 유역권에 위치하고 만경강 유역 하류는 금강 유역과 매우 가까우며 호서 지역의 금산과 지리적으로 연결되는 점을 감안할 때, 호서 지역 가락동 유형의 문화가 만경강 유역으로 영향을 미친 사실을 고고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아울러 호남 지역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의 취락 유적은 대체로 집자리 수가 1~3기인데 비해, 구암리 유적에서 집자리가 10기나 확인되었다. 이는 구암리 유적이 전주 동산동 유적과 더불어 만경강 유역권의 청동기 시대 취락의 중심지 중 하나였음을 말해준다.